인간에 대한 존엄함, 그들의 예술을 위대하게 만들어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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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 20세기초는 유럽의 황금기라 할 수 있다. 19세기초 유럽을 휩쓴 나폴레옹과의 전쟁이 종결을 맞이하고 이후 100년동안 유지되던 평화의 시기가 찾아왔다.
영국은 이 시기를 대영제국을 뜻하는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nica)’라고 불렀고 프랑스는 아름다운 시절을 뜻하는 ‘벨 에포크(Belle Epoque)’라고 하였다.
평화로운 국제관계 속에서 산업과 기술은 이전과 다르게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었고 기차와 철도, 전기와 무선통신 등의 발명은 과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지나친 낙관주의 이면에는 어둡고 비관적인 부분 또한 존재하기 마련이다.
당시 유럽의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은 거대한 부와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이어졌지만 그로 인한 식민지 제국주의와 부의 불평등은 점점 심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시기 프랑스는 상위 1퍼센트가 전체부의 50~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기도 하였으며 고된 노동과 적은 임금으로 인한 하층민의 삶은 더욱더 피폐해지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당시 유럽의 변방으로 취급 받던 러시아 제국에서도 나타났으며, 이는 사회주의 운동에 도화선이 되었다. 결국 로마노프왕가의 러시아 제국은 반정부 혁명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러시아 출신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와 우크라이나 출신 일리야 레핀(Ilya Repin)은 각기 다른 시기인 20세기초와 19세기 중반에 태어났지만 그들의 예술은 러시아 격동의 시기를 관통하고 있다. 시대가 만들어 낸 그들의 예술세계에는 어떠한 공통점들이 있을까.
◆ 사실주의
예술에서 사실주의는 현실을 존중하고, 객관적인 관찰을 통하여 그 개성적 특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고 하는 경향을 말한다.
쇼스타코비치와 레핀의 작품들은 이런 사실주의적인 특징을 많이 띠고 있는데, 특히 쇼스타코비치에게 사실주의란 당시 그가 처한 정치적 탄압과 사회적 분위기와도 연관이 깊다.
그의 사실주의는 혁명으로 수립된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에서 태동한 예술 사조로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라고 볼 수 있다.
예술은 인민을 위해 봉사해야 하고, 긍정의 힘과 낙관주의를 지녀야 한다는 보수 집권층의 논리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만들어 내었고 이는 당시 살아남아야 했던 예술가들에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과 7번은 사실주의적 요소를 작품 속에 잘 녹여낸 그의 대표작이다. 교향곡 5번은 비극적이고 우울한 1, 3악장을 지나 승리를 표현한듯한 마지막 4악장으로 구성되었으며 당시 집권수뇌부들의 취향에 잘 들어맞는 고전적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후 쇼스타코비치는 어두움이 느껴지는 교향곡 앞부분에 대하여 스탈린 체제하 국민들의 고통을 표현한 것이었다고 밝혔으며, 첼로의 거장 로스트로포비치는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쇼스타코비치는 우리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거울같이 생생하게 묘사한다. 만일 그가 말이나 언어로 이를 표현했더라면 바로 숙청을 당했을 것”이라고 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음악 속에 숨어있는 사실주의적 요소들을 당시 집권수뇌부들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7번 교향곡 레닌그라드 또한 전쟁의 참상과 시민들의 투쟁, 고통 그리고 최후의 승리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전쟁에 승리했음에도 기쁨도 함께 나누지 못하는 동시대인들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이미 스탈린이 무너뜨리고 히틀러에 의해 파괴되어 피폐해진 레닌그라드에 대한 애도를 담았다.
화가 레핀 또한 사실주의는 그의 예술세계를 표현하는 또 다른 단어라 볼 수 있다. 작품을 통해 정치적, 사회적 모순들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는 그의 사실주의는 레핀의 철학적 결과물이다.
이동파 화가답게 예술가의 사회적 책무를 중시한 그는 대표작 <볼가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과 <쿠르크스현의 십자가 행렬>을 통해 사실주의적 요소를 충실히 보여주고 있다.
작품 <볼가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은 아무런 희망 없이 거대한 배를 끌며 중노동에 시달리는 비참한 인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는 마치 거대한 사회구조 속 기득권세력과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을 통해 사회모순에 끝까지 저항하는 민중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 다른 작품 <쿠르크스현의 십자가 행렬> 역시 당시 종교의 사회적 모순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림은 중앙에 화려한 옷을 입은 귀족과 종교인을 포함한 기득권 인사를 배치하고 그림 왼편에는 지도원에게 통제 받고 있는 남루한 이들과 절름발이 소년의 모습을 배치시켜서 사회적 약자를 보듬어야 할 종교의 이중성을 대립적인 구도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가는 지팡이를 집고 있는 절름발이 소년의 모습에서 어떠한 위협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결연함과 삶을 향한 굳건한 의지가 느껴진다.
두 작품 모두 당시 사회상을 사실적이면서도 통찰력 있게 보여주며 바라보는 이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 심리묘사
위대한 예술작품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무의식 속으로 들어와 감정을 고양시켜준다. 작품이 우리의 무의식을 건드릴 수 있다는 것, 그건 아마 예술가들이 심리묘사의 달인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위대한 화가 렘브란트가 빛을 통한 심리묘사의 달인이었던 것처럼 쇼스타코비치의 음악과 레핀의 그림은 그들이 탁월한 심리묘사의 달인이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먼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중 8번은 인간에 대한 심리묘사가 탁월한 작품이다.
전작인 7번 <레닌그라드>가 전쟁의 참상과 승리를 함께 노래하였다면 8번은 전쟁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와 절망에 처한 인간의 심층적 심리묘사를 비통하게 그려내고 있다.
전체 5악장 구성의 교향곡 8번은 전원생활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베토벤 6번과 형식적 유사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내용은 정반대인 전쟁으로 피폐해진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고 있다.
‘고통에서 환희로’라는 도식을 가진 베토벤 풍을 따르지 않아 한때 자국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반동적인 작품으로 낙인 찍히기도 하였다.
또 다른 작품인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역시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탁월한 작품이다. 4막으로 이루어진 오페라인 이 작품은 초반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탁월하게 전개되며 이후 사건 위주로 발전되는 구성이다.
다만, 성공적인 초연으로 뉴욕과 런던 스톡홀름 등 여러 도시에서 청중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으나 부르주아적이며 혼돈스럽다는 스탈린의 비판으로 오랜 기간 공연금지가 되었던 사연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레핀 역시 표정과 제스처를 통한 심리묘사의 대가다. 특히 그의 초상화 작품들은 인물의 심리를 직관적이며 섬세한 감각으로 꿰뚫어 보고 있다.
레핀은 톨스토이, 이반 투르게네프 같은 문학가와 림스키 코르사코프, 안톤 루빈스타인, 글린카등 음악가들의 초상화도 많이 그렸는데, 그 중 제일 돋보이는 걸작은 단연 무소르그스키의 초상화다.
관현악 모음곡인 <전람회의 그림>으로 유명한 무소르그스키의 초상화는 그가 죽기직전에 완성되었다. 알코올중독과 발작증세로 군부대 병원에 입원한 무소르그스키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 레핀은 그를 그리기위해 병상을 방문하였다.
빨개진 코와 헝클어진 머리, 수염은 그의 육체적 상태를 보여주지만, 선연한 눈빛만큼은 육체를 넘어서 저항 정신과 광기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현재도 무소르그스키의 이미지로 통용되고 있을 만큼 대중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또 다른 걸작인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역시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돋보이고 있다. 그림에서는 다시 못볼줄 알았던 가장이 오랜 수용소생활 끝에 집으로 돌아온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피아노를 치다 놀란 아내, 낯섦과 설렘의 표정을 보여주는 아이들, 그리운 아들을 오매불망 기다렸던 어머니의 뒷모습은 하나의 그림에서 여러 심리적 상황을 동시에 보여준다.
◆ 혁명
레핀과 쇼스타코비치에게 혁명이란 삶의 수레바퀴처럼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단어다.
러시아의 혁명은 이전 유럽나라들의 혁명과는 다르게 민중이 억압되고 착취되는 방식의 결말을 맞이했다는 점에서 자국 예술가들의 저항의식을 크게 자극했다.
“이데올로기가 없는 음악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작품 속에 인물과 사상 그리고 시대정신을 담아 내려 노력하였는데, 특히 <혁명>은 그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였다.
교향곡 2번과 12번은 볼세비키 혁명을 주제로 하고 있고, 5번 역시 부제가 ‘혁명’이다.
소련 음악국 선전부는 자신들이 위촉한 교향곡2번에 베지멘스키가 쓴 사회주의를 찬양하는 시를 작품에 넣어주길 원했는데, 쇼스타코비치는 그의 시를 싫어했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상당히 고심했다고 한다.
결국 합창을 연주 뒷부분에 집어넣었고, 혁명의 상징이 될 수 있는 공장의 사이렌 역시 선전부의 제안 받아서 곡의 극적인 부분으로 활용했다. 억압 속에 작곡한 5번 역시 겉으로는 혁명의 승리를 자축하는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하지만 이후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2번에관해 3번과함께 미숙했던 작품이라고 하였으며, 교향곡 5번에서 느껴지는 해방감과 환희는 “소련 정권으로부터 강제된 것이라는 내용으로 체재를 찬양하는 의도는 처음부터 아예 없었다”고 회고록에서 말하였다.
레핀의 <볼가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과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또한 혁명과 관련 있는 작품들이다. 먼저 <볼가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은 1870년대 항구 노동자들의 처절한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혁명 이외에는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과 거대한 배를 대치시킨 작품으로 혁명직전의 사회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는 혁명가의 귀향을 그린작품으로 인물들의 심리묘사 외에 여러 상징들을 그림 속에 배치하고 있다.
벽에 붙어있는 니꼴라이 네크라소프와 타라스 셰브첸코, 알렉산드르2세의 장례식 초상화 그리고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 매달리는 그리스도의 그림은 모두 주인공인 인민의 의지당 혁명가의 사명과 연관되어있다.
네크라소프는 당시 러시아사회를 풍자한 시인이며 셰브첸코는 농노출신 화가이자 시인으로 반 체재인사로 유배당한 인물이다.
알렉산드르2세는 인민의 의지당 혁명가에 의해 살해당했고, 골고다 언덕의 그리스도는 고난과 대속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 인간
쇼스타코비치와 레핀 작품의 중심에는 항상 인간이 있었다. 그들에게 인간은 하나의 사회이자 역사였으며, 변화의 동력이었다.
인간의 존엄성을 중요시하였던 그들의 삶은 저항과 적응의 연속이었으며 시대의 파도에 현명하게 대처한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듯하다.
한때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타협한 작곡가로서 서구에 비난을 받았던 쇼스타코비치였지만 그것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그가 자신의 음악으로써 저항하였던 것은 사후에 알게 된 사실이다.
레핀 역시 진보와 보수를 넘나들며 대중적 인기를 가진 예술가로 그의 작품은 인류의 유산으로 남겨졌다. 동료화가 미하일 네스테로프는 레핀의 작품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그의 그림에는 변혁의 꿈이 내장돼 있었다. 레핀의 모든 그림은 레핀 개인만의 진보가 아니었다. 그것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미술 전체의 진보였다. 그의 모든 그림은 사건이었다”고.
만약 그들이 체재에 순응하지 못하여 살아남지 못했다면 그들의 예술적 유산은 어찌되었을지 끔찍하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철학자 장 폴 샤르트르의 말처럼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인 듯 하다.
사실 ‘B’와 ‘D’사이에 ‘A(Answer)’인 정답은 없다. 결국 위대한 예술은 위대한 영혼의 소산인 것이고 그것의 바탕은 인간인 것이다. 인간에 대한 존엄함, 그것이 그들의 예술을 위대하게 만들어준 이유이기도 하다.
☞ 추천음반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은 레닌그라드 필과 므라빈스키(Evgeny Mravinsky)연주가 대표적이며 정석적인 해석이라 할 수 있다. 키릴 콘드라신(Kirll Kondrashin)의 레코딩 또한 몰입도가 훌륭하며 최고의 연주를 보여주는 음반이다.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 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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