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회만 하려다 1000회 넘겼다 누구나 쉽게 클래식 즐길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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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성악가’ 노희섭 스카이아트홀 관장
“처음엔 몇 회나 할 수 있을지 막막했어요. 딱 100회만 하면 좋겠다 했는데 100회를 넘기고 나니 거리공연의 맛을 알겠더라고요. 그때부터는 누가 뭐라 하든, 알아주든 말든 거리로 나갔고 어느덧 1000회가 넘도록 거리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2013년 7월 노희섭(53) 스카이아트홀 관장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성악가라면 누구나 서는 무대 대신 거리에 나가 무료 공연을 시작한 것이다. ‘성악 버스킹’에 나선 것. 화려한 조명도, 웅장한 오케스트라 연주도,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는 관객도 없는 거리에서 그는 어떤 무대보다 성실하게 노래했다. 불볕더위나 동장군이 찾아와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해온 거리공연이 벌써 11년째, 횟수는 1000회가 넘는다. 어느새 ‘거리의 성악가’라는 수식어도 생겼다.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영남대학교 성악과 출신으로 이탈리아 시에나 리날도프란치 국립음악원과 로마 국제음악아카데미 합창지휘과를 졸업한 뒤 세종문화회관 서울시오페라단에서 10년간 근무하며 굵직한 오페라 무대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본업은 따로 있다. 990석 규모의 전문 공연장인 스카이아트홀의 관장이자 사단법인 인씨엠예술단의 단장이다.
그런 그가 화려한 무대를 뒤로 하고 거리로 나간 이유는 단 하나였다.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해서다. 거리로 나가 문턱을 낮춰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이 누구나 쉽게 즐기는 음악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렇다한들 궂은 날씨도 마다하지 않고 거리로 나가는 일이 쉽지는 않을 터. 돈이 되는 일도 아니다. 무엇이 그를 계속 거리로 나가게 만드는 걸까?
오늘도 버스킹을 하고 왔다고.
매주 월·금요일은 명동(정오)에서, 수요일은 신촌(오후 4시)에서 버스킹을 한다. 오늘 명동에서 1029번째 버스킹을 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주 3회 공연하고 있다. 공연 시간은 변동이 있기도 한다. 미리 SNS(누리소통망)로 공연 공지를 하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사실 돈 받고 하는 일도 아니고 안 간다고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지만 1000회 넘게 버스킹을 하며 공연 약속은 꼭 지키는 게 원칙이 됐다.
거리공연에선 주로 어떤 노래를 부르나?
대중에게 친숙한 오페라 아리아, 칸초네를 많이 부른다.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의 ‘네순 도르마(Nessun dorma)’나 ‘오솔레미오(O Sole Mio)’, ‘돌아오라 소렌토로(Torna a Surriento)’, ‘푸니쿨리 푸니쿨라(Funiculi Funicula)’ 같은 곡이다. ‘타임 투 세이 굿바이(Time to Say Goodbye)’나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 등의 크로스오버 곡도 부른다. 가곡이나 영화 주제가를 부르기도 한다. 관객 연령층이 높을 때는 트로트도 한번씩 부른다. 한번에 20여 곡 정도,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공연한다.
공연장과 거리는 분위기가 많이 다를 것 같다.
정해진 관객이 없다. 관객이 없을 때도 있고. 연령층도, 반응도 다 다르다. 그래서 매번 색다르다. 거리공연은 극장에서 공연할 때처럼 엄숙한 분위기나 정해진 규칙 같은 게 없다. 원하면 언제든 박수 칠 수 있고 맥주를 마시며 공연을 볼 수도 있고 각자의 방식대로 즐긴다.
그게 거리공연의 매력인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할 때는 관객과 거리감이 있었다. 무대와 관객석의 높이만큼이나 서로를 다르게 바라본 것 같다. 함께 호흡할 일도 없었다. 버스킹을 하면서 관객들이 내 노래를 들으며 공감하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걸 가까이서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공연장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쾌감을 맛본다. 그 맛을 알고 나니 거리공연을 계속하게 되더라. 거리공연만의 매력이다.
기억에 남는 관객도 있겠다.
예전에는 영등포역 앞에서 공연을 많이 했다. 어느 날 4시간 공연 내내 자리를 뜨지 않고 지켜보던 노숙자가 내게 와서 ‘이런 공연해줘서 너무 고맙다. 삶의 의욕도 없고 우울했는데 노래 들으면서 참 좋았다’라며 2000원을 내밀었다. 박스를 모아서 판 돈이었고 그분의 전 재산이었다. 그러면서 이 일을 멈추지 말고 해달라고 부탁하더라. 그 돈을 한동안 들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런 분을 만날 때마다 힘이 난다. 사명감도 느껴진다.
거리공연을 계속하는 진짜 이유가 있다고 들었다.
클래식 음악을 어렵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특정층만 향유하는 예술이라는 인식도 크다. 클래식 음악의 문턱을 낮춰 더 많은 사람이 쉽게 즐겼으면 좋겠다. 거리에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지 않나. 나의 이런 노력이 대중화까지는 아니라도 저변 확대에 조금은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 같은 사람이 더 나온다면 더 좋은 일이고. 클래식도 트로트처럼 선풍적인 인기를 얻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데 힘이 되고 싶다.
클래식 대중화를 위해선 업계의 변화도 필요할 텐데.
처음 거리공연을 한다고 했을 때 말리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클래식 음악을 왜 싸구려 음악처럼 하느냐, 그러다 목 금방 간다, 돈도 안되는 일에 왜 힘을 쓰느냐고 하더라. 막상 거리에 나가 관객의 반응을 보면 그런 소리 못할 거다. 음악 하는 사람들이 공연장만 고집하지 말고 거리로 나와 관객과 호흡하고 다양한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대학에서 ‘버스킹학점제’를 도입해 학생들이 거리에 나가 노래할 수 있도록 권장했으면 좋겠다. 무대 경험도 넓히고 학생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1000회 넘는 공연을 이어오는 동안 힘든 일도 많았겠다.
거리공연이라는 게 몸만 가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 공연 전에 음향 장비를 설치하고 끝나면 철수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섭씨 40도까지 올라가는 한여름에 땀 뻘뻘 흘리며 공연하고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한겨울에 칼바람 맞으며 거리에서 공연해봤다. 쉽지 않더라. 그래서 딱 100회만 해보자, 100회만 하면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게 세상에 많이 알려지겠지 했다. 물론 100회만에 달라지는 건 없더라. 대신 자신감과 노하우가 생겼다. 그때부턴 공연 자체를 즐기게 됐다. 1주일에 한 번 하던 공연도 1주일에 두 번, 세 번으로 늘렸다. 2022년 9월 24일 1000회 공연을 했을 땐 정말 뿌듯했다.
1000회 공연 이후 달라진 게 있다고 하던데.
공연 전용 트럭이 생겼다. 음향시설도 설치돼 있고 LED(발광다이오드) 전광판도 달려 있다. 문만 열면 공연이 바로 가능해졌다. 사운드도 빵빵해졌다. 공연할 수 있는 곳도 더 많아졌고. 트럭 덕에 거리공연이 훨씬 수월해졌다. 파트너도 생겼다. 성악을 전공한 딸이 함께 버스킹에 나서고 있다. ‘타임 투 세이 굿바이’ 같은 듀엣 곡을 함께 부르곤 한다.
앞으로의 목표는?
더 많은 곳에서 거리공연을 하는 것이다. 전국 방방곡곡 음악이 필요한 곳을 찾아가 버스킹을 하고 싶다. 불러주는 곳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또 하나는 야외 클래식 공연을 더 많이 여는 것이다. 2015년부터 신촌에서 왈츠 축제를 열고 있다. 오케스트라와 왈츠를 거리에서 즐길 수 있는 행사다. 클래식을 한 번도 접하지 않은 사람도 누구나 쉽게 거리에서 이런 무대를 경험하고 즐길 수 있도록 더 많은 행사를 열고 싶다. 공연장 안에서만 즐길 수 있는 클래식 무대를 밖으로 끄집어내는 역할을 하는 게 목표다.
강정미 기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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