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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연방 4개국 청년 10만 3000여 명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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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전투 기리며 두 번째 자전거 동맹길

6·25전쟁 당시 가평전투에 참전했던 유엔군 참전용사를 기리기 위해 자전거 약 100대가 경기 가평군 일대를 줄지어 달렸다. 5월 11일 가평 영연방(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참전기념비에서는 6·25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아 ‘유엔참전국 자전거 동맹로드(이하 자전거 동맹길)’ 행사가 열렸다. 이날 자전거 동맹길은 앞서 4월 11일 유엔참전국인 튀르키예를 기념하기 위해 열린 행사(경기 용인)에 이어 두 번째다.
자전거 동맹길은 정전 70주년을 맞아 유엔참전국 주요 전적지를 국가보훈처와 참전국 대사관, 지방자치단체, 자전거 동호인들이 함께 자전거로 달리는 행사다. 유엔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하기 위해 기획됐다. 이날 행사에는 윤종진 국가보훈처 차장, 주한 영연방 4개국 대사관 관계자, 서태원 가평군수, 최장식 수도기계화보병사단장, 유엔군사령부 관계자, 전국 자전거 동호인 등 100여 명이 참가했다.



행사는 ‘개막식→자전거 행진→가평전투의 길 안내판·조형물 제막식→자전거 행진’ 순으로 진행됐다. 개막식은 영연방국가 현충일의 대표 구호인 ‘우리가 잊지 않도록(Lest We Forget)’을 주제로 했다. 영연방참전기념비를 출발한 행렬은 호주·뉴질랜드 전투기념비와 캐나다 전투기념비를 반환점으로 해 22㎞를 달렸다.
캐나다 전투기념비에선 행렬을 잠시 멈추고 이번 자전거 동맹길 경로인 편도 11㎞ 자전거 도로를 ‘가평전투의 길’로 명명했다. 또 ‘가평전투의 길’ 조형물 제막식도 열었다. 조형물은 영연방 전몰용사에 대한 추모의 상징인 개양귀비꽃(poppy)을 소재로 해 밝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윤종진 보훈처 차장은 “영연방 4개국 청년 10만 3000여 명은 이 땅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며 “영연방 참전용사들의 투혼과 인류애 덕분에 대한민국은 ‘놀라운 70년’ 성공의 역사를 쓸 수 있었다”고 했다.
2001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자 이봉주 씨(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는 앞서 용인 행사에 이어 가평 자전거 동맹길에도 참가했다. 이 씨는 근육긴장이상증이라는 희귀질환으로 등이 굽어 불편을 겪고 있지만 “국가를 대표했던 한 사람으로서 정전 70주년을 맞아 유엔참전국 장병을 기리는 의미 있는 행사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레슬링 두 체급에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레슬링 신화’ 심권호 씨도 이날 행사에 함께했다.
보훈처는 오는 7월까지 서울, 인천, 부산 등지에서 자전거 동맹길 행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경훈 기자



박스기사
가평전투는? 677고지 사수!
3일간의 격전 4배 많은 중공군 격퇴




가평전투(1951년 4월 23~25일)는 경기 가평천 일대에서 유엔군의 일원인 영연방 제27여단이 중공군 118사단(6000~8000명 규모)의 공격을 격퇴한 전투다. 27여단은 ▲영국 미들섹스대대 ▲호주 왕실 3대대 ▲캐나다 프린세스 패트리샤 2대대 ▲뉴질랜드 16포병연대로 구성된 연합군(2000명 규모)이다.
1951년 4월 중공군은 유엔군을 한반도에서 철수시키겠다는 목표로 서부 전선인 경기 파주부터 동부 전선인 강원 양양·고성까지 모든 전선에 걸쳐 총공세를 폈다. 중공군은 강원 화천~가평 축선을 돌파하기 위해 화천 일대에 주둔한 국군 제6사단을 공격했다.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린 6사단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 가평 방면으로 후퇴했다. 이때 국군을 지원하기 위해 영연방 27여단이 전선에 투입됐다.
1951년 4월 24일 가평 북면 이곡리 677고지에선 캐나다 대대가 중공군에 포위되고 말았다. 캐나다 대대는 중공군이 참호로 밀고 들어오자 인근 뉴질랜드 16포병연대에 “아군 진지로 사격해달라”며 ‘진내 사격’을 요청했다. 진내 사격은 적군에게 포위돼 후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항복 대신 선택할 수 있는 최후 수단이다. 뉴질랜드 포병연대는 당황했지만 캐나다 진지를 향해 포격을 가했고 결국 677고지를 지켰다.
가평에서 벌인 3일간의 격전은 유엔군의 승리로 끝났다. 영연방 27여단은 가평전투에서 47명이 전사(호주 32명, 캐나다 10명, 뉴질랜드 5명)하고 3명이 실종됐으며 99명이 다쳤다. 중공군은 약 1000명이 사살됐다. 4배나 많은 중공군과 싸워 이긴 유엔군은 가평전투를 계기로 새로운 방어 진지를 구축하게 됐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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