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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국제스포츠대회를 지속해서 유치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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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백유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성백유 언론중재위원회 위원

2027년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구 하계유니버시아드)는 충청남도, 충청북도, 대전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등 4개의 충청권 자치단체가 공동으로 개최한다.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는 2003년 대구, 2015년 광주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개최되는 것이다. 그동안 서울, 부산, 인천 등 대도시에서 아시안게임을 비롯한 여러 국제스포츠대회를 개최했지만 충청권에서 이런 국제스포츠대회를 개최하게 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스포츠에 큰 관심이 없는 이들은 국제스포츠대회 개최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지만, 지난 30여 년간 올림픽을 비롯한 각종 국제스포츠대회를 경험한 필자는 누구보다도 국제스포츠대회 유치에 찬성표를 던진다.

중국, 1990 베이징하계아시안게임을 통해 닫혔던 국제화의 문을 열다 

과거 중국은 한국전쟁에서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싸웠던 적성국가 이미지가 그대로 남아 있었기에 교류가 힘든 나라였다. 그러던 중 1970년대 동-서간 화합 분위기가형성되면서 미국과 중국은 1979년 수교를 했다. 이른바 ‘핑퐁 외교’의 결실이었다. 이후 중국은 서방세계를 향해 닫았던 문을 활짝 열기 시작했다. 1990년 9월(정확하게는 9월 22일~10월 7일)에 치렀던 1990 베이징하계아시안게임이 역할을 했다.

대한민국과 중국은 1990년까지도 수교국가가 아니었다. 만약 우리 국민이 중국에 가려면 홍콩을 경유해 중국 입국 비자를 받는 길만이 열려 있었다. 즉 비공식 절차를 통한 교류만 가능했다. 그때 필자는 대한민국 취재단의 일원으로 중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여행이 불가능한 나라를, 그것도 태극마크가 선명한 국적기를 타고 선수단과 함께 가게 되는 첫 해외 출장에 들뜬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베이징 수도공항에 도착한 후 곧바로 충격에 빠졌다. 필자뿐만 아니라 모든 한국기자들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거기에는 서울보다 낙후된 베이징이, 그야말로 시골 같은 풍경이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공항은 마치 우리나라의 버스터미널과 같은 느낌이었다. 베이징 시내로 들어서기 위해 버스를 타고 달리는 창밖을 보니 도로가 딸랑 왕복 2차선뿐이라 ‘중국이 이렇게 못사는 나라였나?’라는 충격 그 자체였다. 식당에 가도 멀쩡한 식기를 볼 수 없었다. 베이징 시내 최고급 호텔도 상황은 마찬가지였고, 물가는 아주 저렴해 우리나라 물가의 5분의 1 정도 가격으로 쇼핑이 가능했다. 큰길가는 비교적 깨끗했지만, 뒷골목은 쓰레기와 누군가가 뱉어 놓은 침이 가득했다. 택시는 ‘두 배’를 외치지 않으면 탈 수도 없는 무질서의 도시였다.

그 뒤 시간이 흐르고 2008 베이징하계올림픽 직전 사전취재를 위해 한차례,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직전 한차례, 베이징을 다시 방문했다. 그때마다 놀라고 또 놀랐다. 버스터미널 같았던 공항은 온데간데없고 엄청난 규모의 국제공항이 들어선 것이다. 시내로 들어가는 고속도로의 2차선은 사라지고 물경 16차선으로 바뀌어 차들이 오갔다. 높은 빌딩이 거의 없었던 베이징 시내는 마천루의 숲으로 변해 있었다. 기억에 남아 있던 1990 베이징하계아시안게임 때의 기자단 숙소인 오주대반점은 아주 조그만 빌딩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1986 서울하계아시안게임을 치렀던 대한민국은 과연 어땠을까? 지금부터 37년 전 김포공항을 거쳐 서울에 왔던 그 누군가가 인천공항을 통해 서울을 다시 찾는다면 나와 똑같은 충격을 받게 되지 않을까?

대한민국의 국제화는 1986 서울하계아시안게임이 시작이었다

우리나라는 중국보다 한발 앞서 국제스포츠대회를 통한 개방과 국제화를 이뤄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개발도상국이었던 대한민국은 1986 서울하계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국제화의 빗장을 열어젖혔다. 그 뒤 1988 서울하계올림픽, 2002 한·일월드컵, 2002 부산하계아시안게임, 2014 인천하계아시안게임, 그리고 2018 평창동계올림픽 등을 잇따라 개최하면서 단숨에 스포츠선진국으로 도약했다.

국제스포츠대회를 잘 치르려는 국민이 하나로 똘똘 뭉쳤고, 인프라는 대회 개최 계획에 의해 대폭 개선됐다. 대회 때마다 구성된 자원봉사자들의 활약은 이제 온 국민이 외국인을 만나도 떨지 않는 국제화의 선봉장으로 변신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수송을 위해 만든 인천공항~강릉 KTX는 동서를 반나절 권으로 완성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나고 쏟아진 ‘매우 잘 치러진 올림픽’이라는 찬사는 국제사회가 우리 국민에게 보내준 갈채였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여러 방면에서 대한민국과 비슷한 상황에 있었던 북한은 우리와 반대의 길을 걸었다.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같은 스포츠행사를 단 한 번도 개최하지 않았다. 국제사회와 적극적인 교류를 하지 않으니 경제 발전 속도는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국제사회가 용인하지 않는 핵실험을 함으로써 경제적 제재까지 받게 되면서 고립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이 나라 발전을 가로막았던 것처럼 북한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낙후된 나라로 추락해 버렸다.

반면, 대한민국은 1986 서울하계아시안게임과 1988 서울하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로 만든 잉여금을 잘 활용했다. 올림픽경기장이 다수 들어선 올림픽공원은 최고의 유산이다. 여기에서는 스포츠행사뿐만 아니라 각종 공연의 장이 되고 있다. 1년 내내 국민이 활용하는 그 시설은 오늘날 세계를 주름잡는 K-팝의 무대이며 문화체육관광부의 역할은 영화산업, 관광산업까지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쾌거를 이뤄냈다.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등 수많은 국제적인 가요스타가 탄생했으며 기생충, 미나리 등과 같은 영화는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는 등 5천 년의 역사를 지닌 대한민국의 문화를 온 세계에 알리고 있다. ‘한류’라는 엄청난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들어 낸 것이다.

지방도시의 균형 발전, 국제스포츠대회를 통해 가능하다

대한민국은 서울과 경기도를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는 점이 이를 잘 설명한다. 그래서 정부는 공공기관을 지방도시로 분산시키는 등 지방도시와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수도권 시민들이 공기 좋고 부동산 가격도 수도권보다 저렴한 지방도시로 향하지 않는 이유는 의료시설이나 문화시설 등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국제스포츠대회는 개최도시에 큰 변화를 가져다준다. 공항, 도로, 교통시설 등의 사회간접자본의 개발과 변화는 물론이며 경기를 위해 새로 짓는 경기장은 그 지역 주민의 복지 향상으로 연결이 가능하다. 물론 국제대회를 잘못 치러 개최도시가 파산하거나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는 나라도 있지만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지난해 11월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집행위원회에서 ‘2027 충청권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를 확정했다. 메가시티 설립을 꿈꾸고 있는 충청권으로서는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존재감을 고조시킬 절호의 기회다. 그동안 조용했던 충청권은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를 시작으로 더 나아가서 아시안게임까지도 치를 준비를 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대한민국은 우리의 숙원인 지방화의 결실을 얻게 될 것이다. 특히 여러 자치단체가 함께 국제스포츠대회를 개최하게 된 것도 최초의 일이어서 큰 박수를 보낸다. 단 전제 조건이 있다. 우리가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대회에 투자되는 세금이 단 한 푼도 헛되이 쓰이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이 발행하는 <스포츠 현안과 진단> 122호에 게재된 기고문 입니다.

*이번 호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과학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님을 밝힙니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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