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직에서의 굿 거버넌스 확립,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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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우 한양대학교 교수 |
굿 거버넌스(good governance)의 당위성과 개념
대한민국 스포츠는 국민에게 많은 감동과 환희 그리고 희망을 선사했다. 그렇다면 국민이 인식하는 체육계 이미지는 어떠할까? 박재우·홍기혁(2019)의 <체육계의 사회적 표상: 국민이 인식하는 체육계의 이미지>에서 수도권에 거주하는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체육계의 사회적 표상은 비리, 폭행·폭력, 부정부패, 파벌 등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72.7%)로 연결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 결과는 체육계가 국민들로부터 신뢰 회복을 위한 자구적 노력이 필요함을 말해주고 있다. 이를 위해 필자는 스포츠조직들의 굿 거버넌스 이행을 제안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거버넌스’란 구성원들의 협력을 통해 민주적이고 투명한 방식으로 조직을 협치하는 것을 뜻한다. 굿 거버넌스는 거버넌스의 유형 중 하나로 ‘잘 관리되다’ 또는 ‘거버넌스의 바람직한 형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 거버넌스의 올바른 이행 형태를 굿 거버넌스라고 하며, 이는 조직이 추구해야 할 핵심 원칙으로 ‘책임(책무)성’, ‘투명성’, ‘공정성’, ‘민주성’ 등을 포함하고 있다. 스포츠조직이 높은 윤리적 가치를 기반으로 자율성을 유지하며 공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굿 거버넌스의 제도적 안착과 이행은 반드시 필요하다.
근대올림픽이 시작된 이래 스포츠계는 부정부패, 비리 및 인권 문제와 같은 배드 거버넌스(bad governance)가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목격해왔다(이원재·박재우, 2022). 1999년 12월, 국제올림픽 위원회의 마르크 호들러 위원의 폭로로 밝혀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유치 뇌물 사건은 스포츠 굿 거버넌스 논의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외에도 선수 인권 유린, 승부조작, 도핑 등의 사건은 스포츠계 배드 거버넌스의 주요 요인으로 인식되면서 굿 거버넌스는 더욱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배드 거버넌스는 대중들로 하여금 특정 종목 혹은 스포츠 자체를 보이콧하게 했으며, 결과적으로 스포츠조직에 대한 신뢰를 훼손시켰다. 위기감을 느낀 국제스포츠계는 쇄신을 위한 연대를 도모했으며, 그 과정에서 굿 거버넌스는 핵심 의제로 떠올랐다. 현재 굿 거버넌스는 국제올림픽위원회에 의해 올림픽 운동과 헌장을 지탱하는 핵심 가치인 ‘스포츠 무결성(sport integrity)’의 수호와 지속가능한 올림픽을 위한 제도적 도구이자 정책적 요소로 인정받고 있다. 이를 방증하듯, 국제올림픽위원회는 굿 거버넌스를 이행하지 않는 스포츠 조직은 재정 지원 제재 등의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내용을 2009년 총회 권고안에 명시하기도 했다(이원재·박재우, 2022).
굿 거버넌스 확립을 위한 국제스포츠조직의 여정
2008년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스포츠조직들에게 굿 거버넌스를 이행할 것을 권고하고 국가올림픽위원회를 위한 굿 거버넌스 평가모델을 제시하면서 굿 거버넌스를 확립하려는 움직임은 확산되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를 포함한 국가올림픽위원회, 국제경기연맹, 국제투명성기구, 하계올림픽경기연맹연합 그리고 대학 스포츠연구소 등이 다양한 스포츠조직을 위한 굿 거버넌스 평가모델을 개발하여 조직의 잠재적 위험에 대비하도록 하였다. 2012년 유럽올림픽위원회는 프로젝트 그룹을 발족하여 굿 거버넌스 평가모델을 제시하였다. 이 굿 거버넌스 평가도구는 ‘비전·미션·전략’, ‘구조·규정·민주적 절차’, ‘권한·진실성·윤리기준’, ‘책임성·투명성·통제’, ‘이해관계자의 참여·대표성’ 등의 5가지 원칙과 총 14개의 세부 지표로 구성되어 있다(그림 1 참조). 이듬해 국제투명성기구는 ‘민주성’, ‘투명성’, ‘책임성’, ‘이해관계자 포용’ 등 4가지 핵심 원칙을 담은 <풀뿌리 스포츠조직을 위한 굿 거버넌스 지침>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다양한 주체들이 평가모델을 제시했는데, 그중 국제스포츠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 유럽올림픽위원회, 하계올림픽경기연맹연합 등 세 조직의 굿 거버넌스 평가모델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 세 조직들의 굿 거버넌스 원칙과 지표들은 상당히 유사함을 가지고 있다. 유럽올림픽위원회, 하계올림픽경기연맹연합이 올림픽 운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조직으로서 국제올림픽위원회의 굿 거버넌스 평가모델을 준용하여 자체적으로 굿 거버넌스 평가도구를 개발했기 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굿 거버넌스의 개념적 특성상 스포츠조직은 조직을 관리하고 운영함에 있어서 외부의 강압이 아닌 자발적인 성찰과 진단을 위한 의지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굿 거버넌스의 이행 과정은 업무 가중과 주기적인 감사의 부담을 이겨내야 하는 만큼 이해당사자들의 공감대 형성을 담보해야 한다. 스포츠조직이 윤리적 경영에 기반한 공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굿 거버넌스 이행의 당위성을 이해당사자와 구성원들에게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제스포츠조직들이 굿 거버넌스 이행을 위한 지침 마련과 평가도구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던 주요 요인도 이해당사자들과의 이해와 연대를 이루어 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과정이 올바른 협치, 즉 굿 거버넌스 이행의 첫걸음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체육계의 굿 거버넌스
우리나라의 경우 인권 침해, 승부조작, 조직사유화 등의 비리·부패 문제가 체육계의 자율성과 신뢰성을 위협하고 있다. 이를 방지하고자 문화체육관광부는 <2030 스포츠비전>, <스포츠혁신위원회>를 통해 민주적 거버넌스와 새로운 스포츠 패러다임을 제시하였고, 대한체육회는 중·단기 비전을 담은 <아젠다 2020>을 발표하여 대국민 신뢰도와 조직 투명성 개선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한체육회와 회원종목단체들에 적용가능한 굿 거버넌스 평가모델 개발은 많은 시간과 지적 자원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정립한 ‘투명성’, ‘민주성’, ‘책무성’, ‘참여성’, ‘공정성’ 등의 굿 거버넌스 원칙들을 국제스포츠조직들이 준용하고 있는 것을 본다면, 이 핵심 가치를 한국형 스포츠 굿 거버넌스 원칙 정립에 필요한 개념적 틀로 활용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체육회와 회원종목단체에 적용가능한 국제스포츠 굿 거버넌스 평가모델은 무엇일까? 필자는 2021년 한국체육학회지의 <국제스포츠조직의 굿 거버넌스 평가모델 비교 연구>를 통해, 하계올림픽경기연맹연합의 굿 거버넌스 평가모델이 비교적 진보된 형태의 도구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계올림픽경기연맹연합 평가모델은 ‘투명성’, ‘무결성’, ‘민주성’, ‘개발 및 연대’, ‘점검과 균형 및 통제 메커니즘’ 등 5가지 원칙 내 50가지 세부 평가지표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하계올림픽경기연맹연합은 거버넌스 업무를 전담하는 위원회를 설치하여 굿 거버넌스 이행 수준을 평가 및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 거버넌스 위원회의 목적은 예하 연맹을 정기적으로 평가하고, 굿 거버넌스 이행 현황과 연도별 및 국제경기연맹별 분석 자료를 연례보고서로 제작하여 공개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모델이 다른 조직의 모델보다 부각되는 장점은 2017년부터 현재까지 연례보고서를 통해 거버넌스 이행 수준에 어떠한 변화를 보였으며, 어느 분야에서 강·약점을 나타냈는지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하계올림픽경기연맹연합의 평가모델을 국내스포츠조직에 그대로 사용하기에는 사회적 정서나 환경의 차이로 지표의 내용이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본 평가모델을 대한체육회에 탐색적으로 적용해 봄으로써 한국의 굿 거버넌스 평가모델 개발을 위한 고려사항을 모색해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스포츠 및 올림픽 사무를 총괄하는 기구로서 대한체육회가 모범적 굿 거버넌스 이행의 선도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산하 종목별 경기단체는 대한체육회의 굿 거버넌스 이행 수준을 기준으로 조직의 경영·관리시스템을 혁신하는 것이 필요하다.
맺으며: 스포츠 굿 거버넌스 문화 정착을 위한 제언
한국형 스포츠 굿 거버넌스 문화 정책을 위한 방향은 대한체육회의 굿 거버넌스 이행을 통해 산하 단체(회원종목단체 및 시·도체육회)로의 굿 거버넌스 확산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국내스포츠조직들의 굿 거버넌스 확립을 위한 지침과 이 수준을 평가하기 위한 굿 거버넌스 모델 개발은 시급히 필요한 상황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를 비롯한 국제스포츠조직이 굿 거버넌스 이행에 적극적인 이유가 조직의 자율성 유지를 위한 조치라는 점에서 볼 때, 국내스포츠조직은 굿 거버넌스 이행을 통해 윤리적 경영과 행정의 책무성 및 효율성을 담보하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이를 위해 매년 대한체육회 산하 회원종목단체의 <체육단체 혁신평가>를 굿 거버넌스 평가모델로 연계·개편하는 것도 현재 갖추고 있는 행정 평가체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이 발행하는 <스포츠 현안과 진단> 기고문 입니다.
* 이번 호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과학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님을 밝힙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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