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공원 계획의 30년 여정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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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집무실이 청와대를 벗어나 시민들 곁인 서울 용산에 자리를 잡으면서 국민과의 소통 확대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정책브리핑이 도시·문화·생태 등 분야별 전문가들과 ‘용산시대’ 개막의 의미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배정한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월간 ‘환경과조경’ 편집주간) |
금단의 땅 용산 미군기지가 공원의 옷을 입고 귀환하고 있다.
100만 평에 가까운 서울 한복판의 이 공터에는 질곡의 역사가 쌓여 있다. 고려 말에는 몽골군의 병참기지, 임진왜란 때는 왜군의 보급기지가 자리했다.
임오군란 후에는 청군이 주둔했고 러일전쟁이 끝난 뒤로는 일본군의 본거지로 쓰였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는 미군이 점유한 한국 속의 미국 영토다.
긴 세월 동안 남산에서 한강으로 이어지는 용산의 녹지와 지형은 변형됐고, 도시 발전의 역동적 에너지도 기지를 둘러싼 장벽에 가로막혔다.
한미 양국이 기지 이전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1990년 이후 어느덧 30년 넘는 시간이 흘렀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평택으로 기지를 이전하기로 합의한 뒤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2005년 참여정부는 용산기지의 공원화를 선포하고, 2007년 ‘용산공원조성특별법’을 제정했다. 뒤이은 2011년 ‘용산공원 정비구역 종합기본계획’으로 공원의 비전을 세웠고 이듬해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를 통해 밑그림을 마련했지만, 정작 2012년 이후 용산공원은 얼어붙는다.
공모 당선작 ‘미래를 지향하는 치유의 공원(West 8 설계)’을 바탕으로 진행된 기본설계는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며 공전하다 2018년에 완성됐으나 아직 고시되지 않았다. 미군 이전은 계속 지연되다가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2020년에는 기지 동남쪽 ‘미군 장교숙소 5단지’가 개방되고, 국립중앙박물관, 용산가족공원, 전쟁기념관, 구 방위사업청 부지, 군인아파트 등이 용산공원 조성지구 내로 편입되면서 공원 면적이 3백만㎡로 크게 넓어졌다.
‘국민참여단’의 활동 성과를 바탕으로 한 ‘종합기본계획’ 변경안이 고시되기도 했다. 현재 보완 작업이 진행 중인 ‘기본설계 및 공원조성계획’은 올해 하반기쯤 발표될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2020년부터 계속 기지 일부가 순차적으로 반환되면서 용산공원 조성이 비로소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 6월 26일 서울 용산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국민의 바람정원’ 인근에서 걷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지난 30여 년간 이 땅의 용도를 둘러싼 부동산 개발론이 틈만 나면 고개를 들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는 폭등하는 집값을 잡기 위해 공원 부지 일부에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공약이 발표되기도 했다.
용산공원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위기를 계속 겪어온 것이다. 그러나 용산 미군기지의 공원화는 이제 사회적 합의와 국민적 동의의 강을 건넜다.
공원을 통해 이 불운한 땅을 치유해 미래 세대에게 선물해야 한다는 것은 이제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과업이다.
용산공원의 가장 큰 잠재력은 무엇보다도 그 크기다. 여의도 전체 면적보다 넓은 3백만㎡의 슈퍼라지 파크, 축구장 340개 크기의 초대형 공원은 미래 세대를 위한 넉넉한 여백이자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탄소중립 도시의 실천 장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용산공원을 통해 남산과 용산공원, 한강을 연결하는 광역 도시생태축을 완성할 수 있다. 용산공원은 군사기지로 인해 단절되고 왜곡된 서울의 도시 구조를 교정할 수 있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미래의 용산공원은 성숙한 한국 사회의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발산하는 문화발전소로 작동할 것이다. 주변의 국제업무지구와 함께 도시 발전과 경제 도약을 이끄는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 집무실 이전으로 용산공원은 다시 한번 변화의 계기를 맞았다.
용산 시대가 새롭게 열리며 용산공원 조성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며, 주변 도시계획과 용산공원 기존 계획안에도 일부 수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자연과 문화, 역사와 미래가 어우러지는 열린 국가공원”이라는 비전을 제시한 2021년 ‘용산공원 종합기본계획’ 변경안에 따르면, 용산공원의 완공에는 ‘N(기지 전체의 반환 시점)+7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기지 반환이 완료되고 토양오염 정화, 환경 조사, 실시설계, 단계별 공사 등이 순차적으로 진행되기까지 10년 안팎의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현 대통령의 임기 내에 용산공원의 모든 것을 완성해 가시화하는 데 주력하기보다는 계획과 조성 사이의 긴 공백기를 지혜롭게 운영하고 국민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공원 조성의 발판을 다지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속도보다 과정과 방향이 중요하다. 30년 넘는 지난 용산공원 계획의 역사를 관통하는 기본 정신은 과정 존중, 열린 소통, 국민 참여다.
국민이 참여하고 국민과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용산공원은 미래 세대를 위한 성숙한 여백의 땅으로 진화할 수 있다.
2021년, 코로나19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300명의 용산공원 국민참여단이 머리를 맞대고 숙의하여 “국민 참여의 과정이 곧 역사가 되는 공원”이라는 미래상을 제안했다.
정부의 역할은 전문가와 시민사회가 다층적으로 토론하며 마련한 기존 용산공원 계획이 정치적, 외교적 변수에 흔들리지 않고 순항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공원의 기반을 다지는 일이다.
이 시점에서 우선 초점을 두어야 할 의제는 국방부의 이전이다. 그간의 계획 과정에서 온전한 용산공원 조성의 가장 큰 장애물은 국방부 부지였다.
미군이 점유해온 금단의 땅을 돌려받더라도 국방부는 계속 남아야 마땅한 난공불락의 성지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계기로 국방부와 관련 시설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용산공원 서쪽을 철벽처럼 가로막은 국방부가 빠지면 신용산역과 삼각지 일대 도시 조직이 용산공원과 바로 연결되어 서울의 도시 구조를 재편할 수 있다.
현 정부가 당장 실천해야 할 과제는 전쟁기념관과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우처럼 국방부 부지를 용산공원조성특별법 상의 공원조성지구로 편입하고 국방부의 장기 이전 계획을 세우는 일이다.
계획의 실현과 온전한 용산공원의 완성은 다음 세대의 숙제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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