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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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줄에 들어서면서 점점 많아지던 지인 결혼식이 올해는 그야말로 정점을 찍었다. 아직 봄이건만 1년짜리 스케줄러(일정 기록장)에 표기해놓은 친구 결혼식은 벌써 8건, 부탁받은 결혼식 사회만 3건이다. 다들 간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결혼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친구도 가고, 이혼이 무서워 결혼이 고민된다던 친구도 가고, 비혼을 외치며 만에 하나 결혼식을 하게 되거든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겠다던 친구도 봄꽃처럼 해사한 얼굴로 간다.
결혼한다는 친구들을 보면 너 나 몰래 언제 이렇게 자란 거냐고 따지듯 묻게 된다. 정말이지 나는 서른세 살이나 됐는데도 한심하고 못미더운 선택으로 자주 시름에 빠지는데 친구들은 인생을 함께할 동반자를 결정짓고 그와 함께 훨씬 먼 미래를 계획한다. 결혼하는 내 친구들은 나보다 모든 면에서 어른스럽다. 하물며 초점마저도 훨씬 더 또렷한 느낌이랄까. 함께 코를 흘리던 동료를 잃고 혼자서만 콧물을 찔찔거리는 기분이다.
얼마 전 청첩장을 건넨 친구는 내가 생활용품점 ‘다이소’에서 뜨개형 수세미와 스펀지형 수세미를 놓고 한참 고민하던 순간 프러포즈를 받았다고 한다. 그 친구가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예스”라고 대답한 뒤 뜨거운 키스를 나누는 동안에도 나는 여전히 고민하며 뜨개형 수세미를 들었다 놓았다 하고 있었다. 친구가 내 얘기를 듣더니 짐짓 어른스러운 말투로 귀엽다고 하길래 괜히 발끈한 나는 물었다. 너는 수세미 살 때 고민 안 하느냐고. 그랬더니 친구는 우아하게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선호하는 수세미 브랜드가 있어서 그걸 스무 개 단위로 늘 사놔.” 와, 선호하는 수세미 브랜드가 있다고? 그 순간 그 친구가 너무 크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수세미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친구는 분명히 행복한 어른의 삶을 영위할 거라는 이상한 안심을 했다.
친구들이 결혼 소식을 알리는 자리에서 나는 너마저 가는 거냐고 배신자 취급을 하고 친구들은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미안해한다. 그건 사실 우리가 말없이 합의한 서로의 연기다. 진심으로 축복하고 축하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면 순식간에 너와 나의 눈가가 촉촉해질까봐. 그런 쑥스러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맘에도 없는 소리를 서로 짠 듯이 하는 것이다. 너무 가깝고 친한 사이일수록 험한 말보다 따뜻한 말이 더 눈물샘을 자극하는 법이다.
친구 결혼식에 가서야 비로소 마음 놓고 주책스러워진다. 부모님 마음에 이입해서 시큰해진 코를 훌쩍거리고, 결혼이 영영 이별을 뜻하는 것도 아닌데 지난 세월 내 친구에게 알게 모르게 잘못한 것들을 새삼 떠올리며 조금 후회하고 반성한다. 너무 큰 축하와 사랑하는 마음은 사람의 어느 구석을 덜 굳은 젤리처럼 연약하게 만드는 것 같다. 축하할 일이 많은 덕분에 올해는 모든 계절을 봄처럼 살 수 있을 것 같다. 아름답고 설레고 알맞게 연약한 봄의 마음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연인들을 진심으로 축복해줘야겠다.
강이슬
‘SNL코리아’ ‘인생술집’ ‘놀라운 토요일’ 등 TV 프로그램에서 근면하게 일하며 소소하게 버는 방송작가다. 카카오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안 느끼한 산문집>으로 대상을 받고 <새드엔딩은 없다> <미래를 구하러 온 초보인간> 등을 펴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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