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 영감을 받은 음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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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숨쉬기 시작하고 만물이 약동하는 계절이 오면 싹이 트고 잎이 나며 꽃이 만개한다.
개나리와 벗 꽃의 절정이 지나가고 있는 요즘, 찬란하고 아름다운 시기는 마치 우리의 인생처럼 참으로 짧게 지나가는 듯하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 화려한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봄의 모습과 풋풋하고 미숙하며 아름다웠던 우리의 어린 시절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닮아있다.
해가 지날수록 싱그러운 봄과 꽃들이 아련한 추억을 생각나게 해준다는 건 그만큼 우리가 계속 성숙해지고 있다는 반증이지 않을까. 시인 이상봉님의 시 <봄과 꽃> 은 이렇게 시작된다.
“봄은 大자연의 내포(內包)와 외연(外延)을 지니고 있고, 꽃은 자연의 내포(內包)와 외연(外延), 또한, 확장(擴張)과 함축(含蓄)을 표현하고 있고. 날씨는, 봄꽃 속에서 미소를 짓고 있네!”
꽃만큼 계절을 표현해주는 식물이 있을까? 봄의 시작을 알리는 꽃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카라바지오(Caravaggio)부터 바니타스(vanitas)풍의 플랑드르 화가들, 그리고 고흐의 해바라기를 지나 조지 오키프(Georgia O'Keeffe)까지 꽃은 화가들에게 많은 의미를 주는 주제다.
꽃은 음악가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는데, 음악에서 꽃의 주제는 주로 사랑과 정렬, 그리움 등으로 볼 수 있다. 많은 작곡가들이 아름다운 꽃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 중 대표적으로 알려진 몇 곡들에 대해 알아보자.
◆ Amarilli Mia Bella - Giulio Caccini
오페라 <에우리디체(Euridice)>로 잘 알려진 르네상스시대의 작곡가 카치니(Giulio Caccini)는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은 당대 최고의 음악가중 한 명이었다.
그의 작품 는 “아마릴리, 나의 아름다운 여인이여”라는 뜻이다. 여기서 아마릴리는 아마릴리스(Amaryllis)꽃에서 따온 단어로 학명은 ‘Amaryllis belladonna’이며 ‘Belladonna’는 라틴어로 ‘아름다운 숙녀’를 의미한다.
작품 는 모노디(Monody)양식 중 가장 유명한 곡으로 현재도 널리 불려지고 있는데 모노디 양식이란 피렌체의 젊은 예술가들의 모임인 카메라타에서 추구한 일종의 음악 양식이라 볼 수 있다.
복잡한 다성음악을 배격하고 고대 그리스의 극음악을 추구하며 솔직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가사를 음악보다 우위에 둔 양식이다.
이 곡은 세속적 성격의 마드리갈(Madrigal)로써 서정적이고 짧은 시에 악곡을 부쳤다. 카운터 테너, 소프라노, 바리톤 등 특정음역대을 가리지 않고 불려지고 있으며 단순하며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깃든 작품이다.
◆ Le Violette from Pirro e Demetrio - Alessandro Scarlatti
바로크시대 유명한 음악가문으로 독일에 바흐(Bach)가문이 있다면, 이탈리아에는 스카를라티(Scarlatti) 가문이 있었다.
흔히 스카를라티하면 합시코드 연주자이자 유명한 키보드 소나타로 알려진 도메니코 스카를라티(Domenico Scarlatti)를 떠올리지만 그의 아버지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Alessandro Scarlatti)또한 시대를 풍미한 음악가였다.
그는 화려하며 표현력 강한 나폴리학파를 창시하였으며 초기 칸타타를 정립하였고 115편에 이르는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작품 는 그의 오페라 <피로와 데메트리오(Pirro e Demetrio)>에 나오는 아리아로 제비꽃이라는 뜻이다.
아름다운 보라색 꽃잎의 제비꽃은 4~5월 제비꽃이 필 무렵 식량이 떨어지면 북쪽의 오랑캐가 나타난다고 하여 오랑캐꽃으로 불리기도 한다.
가사의 내용은 정원에서 홀로 제비꽃을 바라보던 남자 주인공이 자신의 신분과 맞지 않은 여인을 마음에 담아두며 자책하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 Last Rose of summer
작품 <여름의 마지막 장미(Last rose of summe)> 또는 <한 떨기 장미꽃>은 아일랜드의 오래된 민요이다.
가사는 아일랜드의 시인 토마스 무어(Thomas Moore)의 시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대니보이와 비슷한 아일랜드 민요풍의 가락이다.
토마스 무어는 1805년 어느 날 젠킨스타운 공원에서 중국의 장미품종인 올드 블러시(Old Blush)를 보고 영감을 받아 시를 썼는데, 가사와 곡은 아름답지만 아일랜드 게일어를 쓰는 자신의 조국에 일부로 영어를 퍼트릴 목적으로 작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일랜드 입장에서는 매국 문학가로 볼 수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전 유럽으로 퍼져나가 그리스 태생의 세계적 가수 나나 무스꾸리(Nana Mauskouri)를 비롯한 여러 대중가수들과 성악가들에 의해 불려지고 있다.
특히 19세기 기교파 바이올리스트 하인리히 에른스트 (Heinrich Wilhelm Ernst)는 이 곡의 멜로디에 여러 개의 변주를 만들어 무반주 작품을 작곡하였는데, 초 절정의 테크닉을 요구하는 곡으로 많은 바이올리스트들의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 Die Rose, die Lilie, die Taube, die Sonne - Schumann
1840년은 슈만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 중 하나로 아내 클라라의 아버지인 스승 비크(Friedrick Wieck)로부터 딸과의 사이를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 시기이다.
이 무렵 슈만은 주옥 같은 가곡을 작곡하였는데, 일명 ‘가곡의 해’로 불리는 이 시기에 탄생한 작품이 바로 <시인의 사랑(Diechterliebe)>이다.
슈만 가곡의 최고봉이라 볼 수 있는 <시인의 사랑>은 청년시절 하이네(Heinrich Heine)의 사촌누이에 대한 연정 시집인 <노래의 책(Buch der Lieder)>의 시들을 가사로 쓴 가곡집이다.
전체 16곡의 연가곡중 1~6곡은 사랑의 시작을, 7~14곡은 실연의 아픔을, 15와 16곡은 청춘의 허망함과 고통을 말하고 있다.
그 중 3번째곡 는 ‘장미, 백합, 비둘기, 태양’이라는 뜻으로 22마디의 짧은 곡이지만 앞선 곡들과 대조를 이루며 극적 완결함을 보여준다.
시의 내용은 예전에는 “장미, 백합, 비둘기, 태양을 사랑했으니 지금 내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건 오직 작고 아름다우며 순수한 그녀”라는 내용이다.
◆ Waltz of the Flowers - Tchaikovsky
호프만의 동화를 바탕으로 작곡된 차이코프스키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The Nutcracker)>은 여러 매력적인 모음곡으로 이루어져있다.
그 중 2막 3장의 <꽃의 왈츠>는 꽃의 여러 모습과 아름다움을 상상하게 하면서 선율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대중적 작품 중 하나로 호두까기 인형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여러 발레 모음곡 중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느낌을 주고 있는 이 작품은 꿈꾸는 듯 연주되는 목관과 하프 솔로의 도입부를 지나 현악 군들이 발레리듬을 연주하며 전개된다.
24명의 별사탕 요정 시녀들의 군무는 곡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리며 멜로디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준다. 중간에 서정적인 첼로의 멜로디 또한 왈츠의 고장 비엔나 풍과는 다른 차이코프스키만의 서정성이 느껴지며 이후 클라이맥스는 장중하며 화려하게 마무리되고 있다.
꽃의 왈츠는 두 대의 피아노 또는 여러 실내악버전으로도 연주되고 있으며, 발레 공연이 아니어도 따로 독립적으로 자주 연주되며 대중적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 Rosen aus dem Suden - Johann Strauss II
비엔나 시민공원에 가면 금빛동상의 요한스트라우스 2세(Johann Strauss II) 모습을 볼 수 있다. 요한스트라우스1세가 왈츠의 아버지로 불렸다면, 아들 2세는 비엔나 왈츠음악을 완성시킨 왈츠의 제왕으로 불린다.
그의 작품 은 ‘남국의 장미’라는 뜻으로 오페레타 <여왕의 레이스 손수건(Das Spitzentuch der Konigin)>에 나오는 멜로디를 엮어서 만든 왈츠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오페레타는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멜로디를 엮어 만든 이 작품은 대중적 사랑을 받으며 빈 신년음악회의 단골 프로그램으로 자주 연주되고 있다.
밝고 따뜻한 남쪽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로 시작되며 곡의 후반부인 클라이맥스로 가면서 정열적인 태양과 장미꽃이 만발한 가운데 왈츠를 추고 있는 무도회가 생각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멜로디의 아름다움 때문에 여러 실내악 버전으로 연주되고 있다.
◆ Daisies - S. Rachmaninoff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은 작곡가겸 피아니스트 라흐마니노프(Rachmaninoff)는 자신의 피아노협주곡들로 유명하지만, 그가 80여곡이 넘는 가곡을 작곡하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의 아름다운 가곡 <데이지(Daisies)>는 라흐마니노프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 1916년, 마지막으로 작곡한 6개의 낭만 모음가곡집(6 Romances, Op. 38)중 세 번째 곡이다.
시에서 느껴지는 본질적인 부분을 선율적인 음악으로 융합하려 한 그는 초창기 서정적인 시에 관심을 두었으나, 이후 상징적인 시로 방향성이 바뀌었다.
이는 혁명의 소용돌이 속 슬픔과 좌절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조국 러시아의 상황과 자신의 처지가 예술적 방향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작품 <데이지>는 단어 그대로 꽃 이름이며 러시아의 시인 Igor Severyani의 시에 멜로디를 붙인 것이다.
느리고 조용히 시작하여 반주의 아르페지오 부분이 마치 꽃잎이 날리는듯한 느낌을 주는 매력을 주고 있는데 곡의 서정적 분위기 때문에 해피 송(Happy song)으로 불리면서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이 곡은 라흐마니노프 자신이 이듬해 피아노 솔로 버전으로 따로 편곡하였으며, 이후 20세기초 오스트리아의 명 바이올리스트 크라이슬러(Fritz Kreisler)가 바이올린 버전으로 따로 편곡하여 현재 자주 연주되기도 한다.
◆ Coda
꽃을 소재로 한 작품은 이밖에도 슈베르트의 , 이탈리아 가곡 , 드뷔시의 , 브리튼(Britten)의 등 수 많은 작품들이 있다.
꽃을 그린 화가 조지 오키프(Georgia O'Keeffe)는 “대부분의 도시인들은 너무나 바빠서 꽃을 볼 시간조차 없다”고 했지만 선배화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는 “꽃을 보고자 하는 사람에겐 어디에나 꽃이 피어있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투병생활을 하였던 마티스의 인생 철학이 담긴 한마디 아닐까? 우리는 행복이 늘 가까운 곳과 소소한 것에 있음을 알지만 마음속 꽃을 볼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건 쉽지 않은 것 같다.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마음속 항상 꽃이 피어있는 봄날이 되길 바라겠다.
☞ 추천음반
카치니의 는 체칠리아 바르톨리(Cecilia Bartoli)의 음성으로, 스카를라티의 제비꽃은 파바로티의 음성을 추천하겠다.
아일랜드 민요 는 아일랜드 싱어인 메이브(Meav Ni Mhaolchatha)의 목소리로, 바이올린은 기돈 크레머(Gidon Kremer)의 연주가 뛰어나다.
슈만의 <시인의 사랑>은 바리톤 피셔 디스카우(Fischer-Dieskau)와 프리츠 분덜리히(Fritz Wunderlich)를 개인적으로 선호한다.
차이코프스키의 꽃의 왈츠는 러시아내셔널 오케스트라와 영국의 합주단 Academy of St Martin in the Fields의 연주를,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는 빈 필하모닉의 연주를 추천한다.
라흐마니노프의 <데이지>는 성악보다 기악연주가 좀더 대중적이다. 피아노연주로는 라흐마니노프 자신의 레코딩과 에밀 길렐스(Emil Gilels), 볼로도스(Arcadi Volodos)의 연주가, 바이올린은 하이페츠(Heifetz)와 이작 펄만(Itzhak Perlman)의 연주가 아름답다.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 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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