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체계가 균형을 잃을 때 벌어지는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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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예상하지 못한 야습으로 혼란에 빠진 상대를 전멸시켰다.”
역사책이나 전쟁 관련 서적에 흔히 나오는 이 구절은 항상 나를 의문에 빠뜨렸다. ‘캄캄한 밤에 서로 뒤엉켜 칼이나 창을 휘두르면서 어떻게 적과 아군을 구별할 수 있을까?’ 실제로 유명한 군사 전문가인 존 크라카우어에 따르면 베트남전쟁의 미군 사상자 39%가 아군을 적으로 잘못 판단한 오인사격 때문에 생겼다고 한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과거에는 야습할 때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기 위해 팔에 흰 완장이나 머리에 흰 두건을 맸다. 이렇듯 전쟁의 첫걸음은 피아식별이다. 현대에 들어와서 스포츠 경기를 할 때 서로 다른 유니폼을 입는 것도 그 이유다. 그럼에도 프로선수마저 종종 헷갈려 패스를 잘못하기도 한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다. 면역세포가 아군과 적을 혼동해서 공격한다. 이게 바로 ‘자가면역 질환’이다.
면역세포가 우리 몸의 모든 조직을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자가면역 질환의 범위는 방대하다. 흥분한 면역계가 관절을 공격하면 류머티즘, 장을 공격하면 염증성 장질환, 갑상선을 공격하면 하시모토 갑상선염, ‘화학 공장’ 역할을 하는 간을 공격하면 자가면역성 간염이 된다.
과도하게 흥분한 면역계가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자가면역 질환만이 아니다. 군인들이 아군과 적이 아니라 지나가는 행인에게 반응하는 것이 ‘알레르기’다. ‘알레르기’는 외부 물질 중 박테리아나 세균과 같은 적 말고, 굳이 반응할 필요가 없는 집먼지 진드기나 꽃가루에 면역계가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대다수는 괜찮은데 소수에게만 불필요한 면역 반응이 일어난다. 피부에 생기면 아토피나 접촉성 피부염, 코가 반응하면 알레르기 비염, 눈이면 알레르기 결막염, 폐면 천식, 위장관에 생기면 식품 알레르기, 전신에 생기면 아나필락시스다.
우리 몸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아니다. 치사율이 50%에 해당하는 에볼라바이러스의 경우 감염 후 사망까지 적어도 이틀은 걸린다. 일단 증상이 나타나면 100% 사망하는 광견병 또한 한 달 동안의 잠복기를 거쳐 증상 발현 후 2주 안에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인 아나필락시스의 경우 짧게는 몇 분 만에 사람을 쇼크에 빠뜨리고,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1시간 안에 사망한다. 가끔 벌에 쏘여 죽었다고 뉴스에 나오는 사람은 벌독이 아니라 벌침에 대한 과도한 알레르기 반응인 아나필락시스로 사망한 것이다.
반대로 면역력이 저하되면 우리 몸은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적의 공격에 취약해진다. 면역력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자가면역 질환과 알레르기로 고통받게 된다. 키를 크게 하는 성장 호르몬의 경우 적으면 저신장이 되는데 많으면 키가 크다 못해 뼈의 말단부가 커지는 거인증에 걸린다. 우리 몸은 호르몬, 면역뿐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기울어지지 않으며 지나침도 부족함도 없는 상태를 인문학에서는 ‘중용(中庸)’이라 하고 생물에서는 ‘항상성(恒常性)’이라고 한다. 이 균형이 깨지면 몸에 ‘병’이 생긴다. 양극화 된 사회에 우리 몸이 던져주는 교훈이다.
양성관
의정부백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빛나는 외모만큼 눈부신 마음을 가진 의사.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서 20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한 작가이기도 하다. 〈히틀러의 주치의〉를 비롯해 7권의 책을 썼다. 의사가 아니라 작가로 돈을 벌어서 환자 한 명당 진료를 30분씩 보는 게 꿈이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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