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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도시 울산에 고소한 냄새 진동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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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代 이은 참기름 기업 ‘옛간’ 박민 대표
국내 참기름 시장 규모는 4000억 원, 들기름 시장 규모는 1200억 원(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산업통계)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참기름과 들기름 유통에 한정된 추정치일 뿐 참기름과 들기름을 활용한 식품비즈니스와 건강기능식품까지 규모를 확장하면 조 단위 시장이다. 최근 한류 열풍과 함께 참기름·들기름이 건강한 오일로 인식되면서 해외 수요도 늘고 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참기름·들기름은 오뚜기, CJ제일제당, 사조대림과 같은 식품 대기업이 생산의 주축이지만 프리미엄마켓을 겨냥해온 소규모 브랜드사의 성장세도 주목받고 있다. ‘옛간’은 울산을 기반으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참기름 제조 기업이다.
옛간의 시작은 1959년 박민(43) 대표의 할아버지인 고 박일황 씨가 울산 바닷가에 연 작은 참기름집 ‘옛날방앗간’이었다. 할아버지가 시작한 방앗간을 물려받은 아버지(박영훈 씨)가 정성껏 기름을 내려 손님을 맞았고 박 대표도 2010년 하던 일을 접고 참기름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박 대표는 옛날방앗간을 옛간㈜으로 바꾸고 동네 방앗간에 불과했던 이곳을 2022년 100억 원의 매출을 내는 식품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방앗간 싫어 떠났던 손자가 비법을 잇다
박 대표의 할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발명가 기질을 갖고 있던 그는 무엇이든 직접 만들어보는 것을 좋아했다. 막걸리 기계를 만들기도 하고 자동 연탄 제조기계를 만들기도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할아버지가 참기름 짜는 기계를 만들게 된 것은 할머니가 수확한 질 좋은 참깨를 보고 나서였다. 할아버지는 어릴 적 고향 장생포에서 봤던 고래기름 짜는 틀 방식으로 참기름을 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만들어낸 참기름 짜는 틀이 ‘나무 찜누름틀’이다. 할아버지는 ‘나무 찜누름틀’로 참기름을 만들어 오일장에서 팔았다. 할아버지의 참기름을 맛본 이웃들은 “진하고 고소하다”는 찬사와 함께 참기름을 사기 위해 줄을 섰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보다 참기름 짜는 일이 좋았던 할아버지는 그렇게 교사에서 방앗간 사장으로 직업을 바꿔 살았다.
아버지도 처음부터 할아버지의 방앗간을 이어받으려 한 것은 아니었다. 배관 전문가였던 아버지는 배관을 절곡해 납품하는 사업을 했다. 하지만 사업에 소질이 없던 아버지는 돈도 잃고 건강도 잃게 된 후 어머니와 함께 할아버지의 방앗간 일을 돕기로 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만든 찜누름틀에 착유기를 접목해 현재의 ‘찜누름틀 기계’를 만들었다.
혈기왕성한 20대 청년 시절 박 대표의 눈에 일은 넘쳐나고 수입은 빠듯한 방앗간 일은 이어받아야 할 가업이 아니라 떠나고 싶은 괴로움의 현장이었다. 부모님이 손님들에게 90도 인사하는 것도 싫었고 참기름 한 병을 팔기 위해 1시간 이상을 들여 배달하는 아버지의 모습도 못마땅했다. 어서 빨리 성공해 부모님을 편히 모시고 싶었던 박 대표는 대학 졸업 후 교육, 컨설팅사업과 이벤트 프로모션 기획 관련 일을 했다. 하지만 남의 사업을 돕는 일은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결국 ‘우리 집안’ 사업으로 돌아왔다.
옛간의 참기름이 특별한 풍미를 갖는 것은 8개 단계를 둬 참깨를 선별해 고른 후 찜누름 방식으로 기름을 추출하기 때문이다. 찜누름 방식은 깨를 볶기 전과 볶은 후 두 차례 공정을 추가해 이물질을 제거한다. 이렇게 찜누름 방식으로 깨를 만들면 착유 후에도 참깨 알갱이가 살아 있어 참기름의 풍미가 뛰어나다.
박 대표는 참기름의 품질이 좋으니 대리점들만 확보하면 잘 팔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남, 대구, 울산에 대리점을 내고 운영했지만 브랜드 신뢰도가 없는 옛간 참기름은 기대했던 것만큼 팔리지 않았다. 급기야 자금 상태가 어려워져 컨테이너에서 지내며 버텨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겨우 참기름 짜는 기계만 몇 대 남은 상황이었다. 공장을 마련하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던 차에 우연히 길을 가다가 ‘매매’라고 적힌 안내판을 보고 연락했다. 박 대표는 공장주에게 일단 100만 원을 계약금으로 주고 돈을 벌어 6개월 뒤부터 월세를 내겠다고 제안했다. 그렇게 공장을 얻어 기름을 짜기 시작한 게 2018년 1월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생산한 기름을 박 대표가 차를 몰고 시장과 마트를 돌며 팔아 재기에 나섰다. 3년의 시간을 몸부림치다보니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2019년 10억 원이던 매출이 2020년 25억 원이 됐다. 2021년 쿠팡 로켓배송을 시작하고서는 매출이 60억 원으로 늘었고 2022년에는 100억 원에 달했다.



팬관리로 브랜드 키우고, 자동화로 경비 줄이고
박대표는 주문생산 요청이 쏟아졌지만 거절하고 자체 브랜드를 키우기로 했다. 소비자에게 ‘옛간’을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노력한 것은 브랜딩 작업이었다. 2년에 걸쳐 시장조사를 진행하면서 옛간 참기름만의 스토리를 정리해 고객들과 소통에 나섰다. 동네마트에 입점할 때도 비용을 들여 옛간만의 개성을 담은 단독진열대를 만들어 진열했다. 단독 진열대를 하나둘 늘려가다보니 전국에 200개 가량의 마트에 옛간 진열대가 만들어졌다. 대량 판매를 하게 된 지금도 전화주문을 받아 단 한 병이라도 매일 아침 트럭으로 울산을 돌며 배달한다. 옛간의 팬을 만나는 소중한 기회라는 생각에서다.
‘옛간배 볼링대회’는 옛간 참기름을 전국에 알리기 위한 방편이다. 전국에서 몰려드는 동호회원이 옛간의 참기름을 받아가면 자연스럽게 입소문이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옛간의 참기름은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옛간이 매출 증가세에 맞춰 이뤄낸 숙원사업이 바로 공장 자동화 설비를 갖춘 것이다. 식품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규모가 영세한 식품업체들은 완전 자동화를 이루기 어렵다. 대부분 비용을 낮추기 위해 표준화된 중국산 제품을 공정별로 끼워 맞추는 방식이다. 박 대표가 자동화 설비 구축을 위해 전문 업체를 찾았을 때도 이구동성으로 “완전 자동화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박 대표는 울산의 자동차 기계 전문가들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완전 자동화의 실마리를 찾게 됐다. 단 1㎜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자동차 기계를 만드는 전문가들에게 식품기계를 만드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옛간의 성장에 날개를 달아준 행정
옛간이 2021년에 입주한 공장은 울주군 상북면 길천산업단지 내에 자리잡고 있다.
길천산업단지는 자동차·조선·화학 기업들에 한해 입주할 수 있는 산업단지다. 식품기업인 옛간이 산업단지에 공장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담당 공무원이 관련 조항을 모두 검토해 돌파구를 찾아낸 덕분이다. 환경에 저촉되지 않은 사업인 경우 시장의 허가로 입주가 가능하다는 조항을 찾아낸 것이다. 옛간 입장에서는 공장을 지을 땅을 얻을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지만 얼마 남지 않은 통장 잔고로는 땅이 있어도 공장을 지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박 대표의 진정성과 부지런함, 그리고 제품의 우수성을 알고 있던 지방자치단체와 은행 관계자들이 모여 방법을 찾아 옛간에 기회를 주기로 했다. 옛간이 저리의 대출을 받아 계약금과 공사비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옛간은 공장을 3차에 걸쳐 총 1만 6500㎡ 규모로 키워 스마트팜(지능형 농장) 조성, 밀키트 론칭, 지역 먹거리 창업 활성화 지원사업 등에도 투자할 계획이다. 이를 토대로 농산물의 생산·가공·유통 및 창업까지 지원하는 농식품 클러스터 단지를 조성해나갈 예정이라고 하니, 식품산업의 볼모지 울산에서 어떤 변화가 생겨날지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장영화 조인스타트업 대표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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