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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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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호 꿀벌 전문 수의사 정년기 원장
대전 중구 대흥동에는 특별한 동물병원이 있다. 오직 꿀벌만 진료하는 ‘꿀벌동물병원’이다. 개나 고양이가 아니라 꿀벌만 진료하는 동물병원이라니. 꿀벌이 아플 수 있다는 것도, 꿀벌을 수의사가 치료한다는 것도 대부분 생소할 것이다.
하지만 꿀벌은 축산법과 가축전염병 예방법에서 규정하는 가축이다. 수의사법에도 동물로 규정하고 있다. 수의사가 꿀벌을 진료하는 일이, 꿀벌 전문 동물병원이 생긴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국내에서 꿀벌을 진료하는 수의사나 동물병원은 손에 꼽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꿀벌동물병원’의 정년기(71) 원장은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꿀벌 전문 수의사였다. 2018년 한국양봉농협 동물병원이 개원하면서 ‘국내 유일’이라는 수식어가 사라졌다. 현재는 한국양봉농협 동물병원의 허주행 수의사까지 두 명이 활동 중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꿀벌이 아프거나 문제가 생기면 정 원장부터 찾는 사람이 많다. 꿀벌 진료는 대부분 왕진으로 이뤄진다. 전국 방방곡곡 환자가 있는 곳이라면 정 원장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간다. 하루 500㎞ 이동하는 일이 흔한 그의 승용차에는 각종 진료 도구와 장비, 자료가 가득하다. 꿀벌을 위한 이동 진료소인 셈이다.
쉴 틈 없이 움직이던 이동 진료소도 5월이면 여유를 찾는다. 양봉농가가 꿀을 본격적으로 수확하는 5~6월이 정 원장에게는 오히려 비수기다. 그러나 2022년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시기를 가리지 않고 정 원장을 찾는 환자가 많아졌다.
이런 변화는 양농봉가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위기의 신호다. 꿀벌은 주변 환경에 무척 민감한 곤충이다. 꿀벌에게 변화가 생겼다는 건 우리가 사는 환경에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다. 이미 몇 년 전부터 기후위기로 꿀벌이 집단 폐사하는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꿀벌이 사라지면 꿀벌을 통해 수정하고 열매를 맺는 농작물의 생산량이 줄어들고 연쇄적인 생태계 교란과 심각한 식량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유엔(UN)은 2017년부터 매년 5월 20일을 ‘세계 꿀벌의 날(World Bee Day)’로 지정하고 꿀벌 보존의 중요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우리 정부도 ‘양봉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고 다양한 꿀벌 피해 대책을 세우고 있다. 지난 3월 2일 농림축산식품부(농림축산검역본부), 환경부(한국환경산업기술원), 농촌진흥청(농업과학원), 산림청(국립산림과학원), 기상청(국립기상과학원) 등 5개 부처는 꿀벌 보호와 생태계 보전을 위해 공동 대응에 나서기로 하고 다부처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꿀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꿀벌의 경고가 인류에게 어떤 의미인지 정 원장을 만나 들어봤다.



꿀벌 실종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2022년 겨울에만 국내에서 월동 중인 사육 꿀벌 약 39만 봉군(약 78억 마리)이 폐사했다. 전체(240만 봉군·약 480억 마리) 사육 꿀벌의 18% 수준이다. 꿀벌은 원래 겨울을 나면서 10% 정도 없어진다. 그런데 몇 년째 정상 범위보다 많은 꿀벌이 사라지면서 텅텅 빈 벌통이 늘었다. 최근에야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양봉농가에서는 이미 몇 년째 누적돼온 문제다.

꿀벌이 사라지는 이유는 뭔가?
지구 온난화로 제대로 산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로 꿀벌의 면역이 저하되면서 외부 기생충도 늘어났다. 길게는 수십 년 전부터 누적된 면역결핍 현상도 원인 중 하나다. 전자파에 장기간 노출되고 꿀벌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나무나 식물이 줄어든 것도 꿀벌 실종의 원인이다. 이런 변화에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기후가 변하고 꿀벌이 변한 만큼 꿀벌을 사육하는 사람도 방식도 변해야 한다. 전국을 다니면서 양봉농가를 교육하고 변화시키는 일도 내가 하는 일 중 하나다.

전국을 다니며 꿀벌 진료에 교육까지 하려면 힘들지 않나?
꿀벌 전문 수의사가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주말에도 쉴 틈 없이 바쁘다. 진료와 강의 일정이 한 달 뒤까지 꽉 차 있다. 전국 곳곳을 다니다 보니 장거리 운전과 이동이 힘들 뿐 진료나 강의가 힘든 건 아니다. 오히려 양봉농가를 만나고 강의를 할 때면 에너지가 솟는다. 그나마 양봉농협 동물병원에 허주행 수의사가 있어서 힘이 된다. 서로 가기 힘든 지역, 날짜를 커버해준다.

직접 먼 곳까지 왕진을 가는 이유는?
꿀벌이 병원에 와서 진찰을 받을 순 없지 않나. 무엇보다 꿀벌이 아픈 이유는 복합적이다. 전화로 설명을 듣고 사진을 본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상태를 판단할 수 없다. 아무리 먼 곳이라도 직접 가서 봐야 제대로 진료할 수 있다.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
벌통 주변의 꿀벌이 어떻게 죽어 있는지, 냄새는 어떤지, 벌통의 전체적인 상태도 관찰한다. 주변 환경이나 사육 조건 등도 함께 살펴봐야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현장에서 모든 걸 판단하진 않는다. 가검물을 채취해 정밀검사를 진행한 뒤 최종 진단하고 그에 따라 약 쓰는 법을 지도한다.

진료하러 갔다가 벌에 쏘이진 않나?
내가 만나는 벌들은 아픈 경우가 대부분이다. 벌도 아프면 예민하고 사나워진다. 벌이 수의사라고 봐주는 건 아니다. 정말 수도 없이 벌에 쏘였다. 다행히 벌에 쏘여도 몸에 큰 문제는 없었다. 나중엔 아예 약이라고 생각했다. 우스갯소리로 전국을 다니면서 봉침을 맞는다고 했다. 꿀벌 전문 수의사라면 벌에 쏘여볼 필요도 있다. 사람마다 특이체질이 있을 수 있고 과민반응이 없어야 계속 진료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강한 꿀벌은 사람을 함부로 공격하지 않는다. 꿀벌은 자신이 침을 쏘면 죽는 걸 안다. 자신이 치명적으로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만 공격한다. 벌이 아무리 윙윙거려도 가만히 기다리면 그대로 날아가버린다.

꿀벌 진료는 다른 동물과 많이 다를 것 같다.
꿀벌은 무리를 지어 산다. 꿀벌이 무리 생활을 하는 최소한의 단위를 ‘봉군’이라고 한다. 하나의 봉군에는 한 마리의 여왕벌과 수백 마리의 수벌, 수만 마리의 일벌이 존재한다. 이 봉군을 하나의 몸이자 개체로 본다. 벌 한 마리, 두 마리는 세포 또는 살점에 불과하다. 내가 하는 일은 떨어져 나간 살점을 채워 생살을 나게 만들고 무리 전체가 건강해지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꿀벌을 살펴보는 방법도 다른가?
벌통 속 무리의 상태를 먼저 살펴본다. 벌통에 청진기를 대고 벌이 움직이는 소리, 위치를 확인해서 현재 상태, 활동성을 확인할 수 있다. 요즘은 적외선 카메라 촬영으로 벌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다.
꿀벌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또 있다. 대부분 동물은 진료 후 바로 상태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생명을 살린다는 긍지를 갖고 일할 수 있다. 그러나 꿀벌은 치료를 하더라도 당장 큰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10~20일이 지난 후에야 결과를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치료를 하는 쪽이나 치료를 받는 쪽이나 즉각적인 만족이 어렵다.

왜 꿀벌 수의사라는 힘든 길을 선택했나?
원래 내 꿈은 소나 말을 돌보는 대동물 수의사였다. 꿀벌 전문 수의사가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전남대 수의대를 졸업하고 사료회사, 동물약품회사, 충남도청 수의사 등으로 일하다 1992년 대전보건환경연구원 동물위생시험소에서 일하면서 처음으로 꿀벌과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서 죽거나 질병이 의심되는 가축의 전염병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병성감정 업무를 하면서 달라졌다.

꿀벌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양봉농가를 다니면서 꿀벌에게 어떤 질병이 있는지, 어떤 약을 쓰는지 물었는데 농가마다 다 다른 답이 돌아왔다. 같은 병에도 다른 약을 쓰는 곳도 많았다. 정확한 기준 없이 농민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치료를 해왔던 것이다. 올바른 진단과 치료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꿀벌을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꿀벌을 오래 키운 분께 가르쳐달라고도 하고 직접 꿀벌을 키워봤다. 외국서적도 열심히 찾아보며 공부했다. 그렇게 꿀벌의 질병과 치료 지침을 정리했다.
2013년 8월 동물의약품 수의사 처방제가 시행되면서 꿀벌 치료에 필요한 약물도 수의사 처방이 필요해졌다. 그해 공무원직을 퇴직하고 대전에서 꿀벌 전문 병원을 개원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꿀벌 전문 병원이다. 병원을 개원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
동물병원을 차렸다는 소식에 축하해주던 수의사 친구가 진짜 꿀벌 병원이라는 걸 알고 말이 없어졌다. 아내조차 하다하다 별 걸 다한다고 했다. 일반 동물병원인 줄 알고 진료 시간을 물어보는 전화도 많이 왔다. 양봉농가의 반응은 더 차가웠다. 꿀벌 전문 수의사라고 해도 수십 년을 개인적인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양봉을 해온 업자들은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했다. 벌은 키워봤냐며 핀잔을 주는 일도 많았다. 그러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해보니 꿀벌이 낫는 걸 보고 사람들이 달라졌다. 찾는 곳도 많아졌고 꿀벌 전문 수의사를 인정해주기 시작했다.

꿀벌 전문 병원을 개원한 지 10년이 지났다. 꿀벌과 함께한 시간을 따지면 30년인데 바라는 것은 뭔가?
시간이 벌써 그렇게 지났지만 여전히 새롭고 또 어렵다.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를 일이다. 해마다 새로운 질병이 발견되고 있고 꿀벌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만큼 할 일도 많아지고 있다. 그만큼 어깨가 무겁다.
미래를 위해 꿀벌 전문 수의사가 더 많아져야 한다. 다행히 꿀벌에 관심을 갖는 수의사가 늘고 있다. 2021년에는 꿀벌수의사회도 출범했다. 다만 우리나라에는 꿀벌의 질병과 치료에 대한 강의를 하는 학교가 아직 한 곳도 없다. 해외에선 어느 수의학과에서나 꿀벌에 관해 가르친다. 우리나라는 제대로 된 교재나 자료도 없다. 그동안 직접 연구하고 정리해온 자료를 모아 ‘꿀벌질병학’이란 책을 쓰는 게 나의 목표다.

강정미 기자

박스기사
세계 꿀벌의 날이란?
주요 농작물 100개 중 71개가 꿀벌 수정에 의존


매년 5월 20일은 유엔(UN)이 정한 ‘세계 꿀벌의 날(World Bee Day)’이다. ‘세계 꿀벌의 날’은 꿀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꿀벌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국제적인 행동을 촉구하기 위해 2017년 제정됐다. 이날 전 세계 곳곳에서는 멸종 위기에 처한 꿀벌을 보호하려는 활동과 관련 행사가 열린다.
국제식량농업기구(FAO) 발표에 따르면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 중 71개가 꿀벌 수정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양파나 당근, 사과의 경우는 재배할 때 꿀벌의 기여도가 90%에 육박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식물이 수정하지 못하면 작물과 목초의 재배면적이 감소해 식량과 가축 생산이 줄어 결국 인류의 식량 수급에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꿀벌은 주변 환경에 매우 민감한 곤충으로 꿀벌의 건강한 서식은 곧 그 지역의 자연 생태계가 건강하고 안정적인 것을 보여주는 환경 지표종이기도 하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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