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이상 신호, 지나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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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청년마음건강센터에 가다
“여름에 큰 홍수가 발생하면 둑이나 제방이 무너지죠.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한데 홍수, 스트레스를 견디는 힘을 둑이나 제방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어요. 홍수가 났을 때 어떤 사람은 거뜬히 이겨내지만 어떤 사람은 둑에 물이 가득 차기도 해요. 둑이 무너져 강물이 넘치는 걸 ‘정신증’이라고 한다면 물이 넘칠까 말까 하는 아주 초기의 상태를 ‘조기정신증’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정신증은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해우 서울시 정신건강복지센터장의 말이다. 그는 조기정신증의 발견과 예방을 재차 강조했다. “둑이 넘칠까 말까 할 때 빨리 물길을 돌려 압력을 낮추고 둑을 더 높이 쌓으면 홍수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 정신증이 걱정되거나 정신증을 앓고 있다면 어디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보건복지부는 ‘제2차 정신건강복지 기본계획(2021~2025년)’에 따라 조기정신증을 발견·지원하기 위해 전국 광역 시·도 17곳에 청년정신건강센터를 설립했다. 그중 서울시 청년마음건강센터(이하 센터)는 전국 최초로 조기정신증 지원사업을 시작한 서울시 정신건강복지센터의 부설기관으로 2022년 12월 1일 문을 열었다. 이름대로 지원 대상은 만 19~34세 이하의 ‘청년’. 생애 초기에 정신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의 문제가 만성화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데 힘쓰고 있다. 젊은이들의 거리라 불리는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혜화역 인근)에 센터가 위치한 것 역시 상징적이다. 김보람 정신건강사회복지사는 조기정신증 치료에서도 청년기는 유독 중요한 시기라고 설명했다.
“성인형 정신장애 중 75%가 25세 이전에 발생할 만큼 생애 초반에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아요. 청년들은 대입이나 취업 등 삶에서 첫 번째 결과를 내야 하면서도 마음의 건강 상태는 연약한, 가장 짐이 무거운 세대일 수 있어요. 청년층은 최근 국민정신건강조사에서도 코로나19로 우울, 불안 등 부정적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연령층으로 나타났어요. ‘뭔가 마음이 이상하다’ ‘세상이 달라진 것 같다’ 고 느낄 때 센터에 오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쿵·쉿·찰칵’ 소리… ‘정신증’ 증상일 수도
서비스를 직접 이용해봤다. 전화로 예약을 한 뒤 센터에 방문하면 가장 먼저 ‘조기정신증 평가’를 하게 된다. 사고지각 민감성 검사(mKPQ-16)라고 쓰인 검사지에는 총 16개 질문이 적혀 있었고 예/아니오로 자가 체크를 하는 식이었다. ‘이전에 즐겨했던 일에 흥미가 없어진다’ ‘지금 경험하는 일이 전에도 일어났던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데자뷔)’는 질문에 ‘예’라고 표시했다. 나머지 14가지 항목은 해당되지 않았다. ‘쿵, 찰칵, 쉿, 딸랑 등의 소리를 종종 듣는다’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앙심을 품고 있다고 종종 느낀다’ 등의 항목이었다. 평소 스트레스를 잘 받는 편인 데다 쉽게 기분이 가라앉는 성향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검사에선 해당되는 항목이 많지 않았다. 홍채린 정신건강사회복지사는 “정신증은 우울이나 불안, 절망감과 같은 신경증과는 다르다”면서 “스스로 특이한 경험을 한 것 같거나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주변에서 느낀다면 정신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심리적 갈등이나 스트레스를 대처하는 데 긴장이나 불편감을 느끼는 신경증과 달리 정신증은 뇌의 사고 과정의 오류로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어려운 상태를 뜻한다. 실제 존재하지 않는 장면이나 소리를 경험하고 타인이 나를 해칠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 특징이다. 뇌의 오류로 이런 ‘느낌’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탓에 스스로 이를 정신적 문제로 인지하기 어렵다. 집중력이 흐려지거나 대인관계가 불편해지는 등 전조증상을 잘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조기정신증 평가에서 의심할 만한 정황이 포착되면 심층평가가 진행된다. 상담사와 면담을 통해 구체적인 증상과 어려움을 이야기할 수 있다. 상담 결과를 토대로 ‘고위험군’으로 판단될 경우 내담자는 센터에 등록해 체계적인 관리를 받게 된다. 센터에서는 정신증 고위험군이 아니라면 권역별 심리지원센터 등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다른 기관을 안내해주기도 한다.
증상 앞당기는 ‘스트레스’, 뇌파로 측정하고 관리
센터 등록 후 진행되는 ‘사례관리’는 개인 맞춤형으로 이뤄진다. 주 1회 대면상담(50분)을 기본으로 하고 증상에 따라 스트레스 관리, 약물 관리(병원 동행), 정신건강 교육, 집단 인지프로그램 등을 진행한다. 사례관리는 3개월이 기본이지만 증상이 심할 경우 최대 2년까지 지원한다. 비용은 모두 무료다. 특히 병원 치료가 필요할 경우 센터에서는 병원 동행은 물론 치료비도 지원한다. 기준중위소득 120% 이하라면 6개월간 100만 원 한도 내에서 입원비와 검사비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실제 내담자의 사례관리 프로그램 가운데 뇌파를 측정해 스트레스를 진단할 수 있는 서비스를 받아봤다. 머리띠 형태의 기기를 착용한 뒤 눈을 감고 있으니 채 1분이 안돼 결과지가 나왔다. 두뇌 컨디션 점수는 ‘68점’. 스트레스 정도는 ‘양호’, 신체 활력도는 보통보다 좋은 ‘활력’으로 진단됐다. 하지만 두뇌활동 정도가 ‘부하’, 누적 피로도가 ‘관심’으로 측정돼 주의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최근에 스트레스가 많지 않고 몸도 가벼운 반면 신경 쓸 게 많아 머릿속이 복잡한 상태였는데 속을 들킨 것 같아 신기했다. 유예린 정신건강사회복지사는 스트레스는 정신증을 발현시키는 주요 요인이라고 했다. 이에 내담자들은 매주 스트레스를 측정하고 변화를 관찰하게 된다. 유 복지사는 “원인은 한 가지를 꼽기 어렵다. 다만 정신증은 청년기에 주로 발생하는데 학업 스트레스나 가정·직장 내 갈등이 심해졌을 경우 그것이 트리거(방아쇠)가 돼 증상이 발현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매년 1만 명 ‘입원’할 때까지 참아… 적극적 치료 중요
그다음 스트레스를 낮춰주는 가상현실(VR)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힐링여행’을 떠나는 시간이다. VR 헤드셋을 착용한 뒤 직접 원하는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다. 기자가 고른 건 ‘불멍’을 때리며 명상할 수 있는 영상. 처음 사용해보는 기기가 어색한 것도 잠시 주변 시야가 차단되니 오히려 집중하기 좋았다. 난로에서 장작이 타오르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복잡한 생각이 사그라들고 금세 마음이 차분해졌다. 최근 이같이 VR 기술을 활용한 심리치유 프로그램 개발이 활발하다는 게 센터 측의 설명이다. 이곳에선 VR 프로그램을 통해 명상 외에도 두뇌 훈련 게임, 인지 테스트 등을 할 수 있다. 홍채린 복지사는 내담자들의 만족감이 높다고 했다.
“취업 스트레스와 대인관계 어려움으로 찾아온 청년이 있었어요. 면접관이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면접을 포기한 적도 있다고 했죠.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이명이 들리고 몸이 간지러워진다고도 했어요. 심층평가 후 정신증 고위험군으로 판단돼 6개월간 사례관리에 들어갔습니다. 매주 대면상담과 더불어 약물 관리, VR 프로그램을 통한 스트레스 관리, 비합리적 사고를 바꿀 수 있는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한 결과 상태가 크게 호전됐습니다. 청년은 스트레스가 아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울타리’가 하나 생긴 것 같다고 하더군요.”
마음의 병을 혼자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영영 미로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지 모른다. 마음을 관장하는 기관은 뇌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듯 마음이 아플 때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게 유예린 복지사의 설명이다.
“2020년 중앙정신건강복지 사업지원단 보고에 따르면 양극성장애(조울증)나 조현병 등을 겪는 이들 가운데 1만 명 정도가 매년 입원으로 첫 치료를 시작합니다. 입원해야 할 만큼 증상이 악화되고 난 후에야 치료를 시작한다는 거죠. 당사자도, 가족도 병원에 가는 걸 선뜻 내켜하지 않는 탓이에요. 청년마음건강센터는 병원에 가기 어려운 이들이 좀더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 곳입니다. 진료기록도 남지 않고 학교나 집 근처로 찾아가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죠. ‘마음이 이상하다’고 느낀다면 언제든 찾아주세요.”
조윤 기자
박스기사
서울시청년마음건강센터 ‘마음하다’
이용 대상 마음건강의 어려움을 경험하는 청년, 정신증(조현병, 양극성정동장애, 지속성 기분장애 등) 발병 후 첫 5년 이내 청년
주소 서울 종로구 대학로12길 50 3층(혜화역 2번 출구 도보 5분 이내) *원할 경우 학교, 직장 근처에서 방문 상담
운영 시간 평일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
비용 무료
전화 02-3444-9934, 010-5805-9934
(문자메시지 문의 가능)
박스기사2
‘정신증’ 자가 진단 체크리스트
‘특이한 경험’하는 듯한 느낌… 우울·불안 등 ‘신경증’과 달라
생각 변화
□남을 의심하거나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달라졌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등 비현실적인 느낌이 든다.
□관심 없던 철학·종교적 주제에 집착한다.
감정 변화
□우울, 무기력 또는 불안을 경험한다.
□벌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쉽게 짜증이 나는 등 감정기복이 심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인지 및 지각 변화
□집중하거나 주의를 기울이는 게 어렵다.
□이명 등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는다.
□뭔가 휙 지나가거나 피부 위를 기어가는 느낌 등이 든다.
말과 행동 변화
□언어(발화량, 사고과정) 및 수면 패턴, 식습관, 위생습관 등이 달라진다.
□두통, 복통 등 신체증상이 나타난다.
□가족, 친구와의 관계에서 위축된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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