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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제로섬’ 관계 아니다 윈윈 위해 결단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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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는 한쪽이 더 얻으면 다른 쪽이 그만큼 더 잃는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
3월 2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제12회 국무회의를 주재한 윤석열 대통령은 이같이 말했다. “한일관계는 함께 노력해 더 많이 얻는 윈윈 관계가 될 수 있고 또 반드시 그렇게 돼야 한다”는 발언도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한일관계 개선에 대해 직접 설명했다. 지난 3월 16일부터 이틀간 열린 한일 정상회담을 전후로 한일관계 개선에 적극 나선 데 대해 국민에게 설명하는 차원이었다. 23분간 이어진 모두발언은 ‘역대 최장’이었다. 앞서 윤 대통령의 국무회의 모두발언이 짧게는 5분, 길어도 10분을 넘기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이례적이다. 글자 수로는 약 7500자, 원고지 52매에 달하는 분량이다. 이날 발언은 TV를 통해 생중계됐다.
윤 대통령은 “만약 우리가 현재와 과거를 서로 경쟁시킨다면 반드시 미래를 놓치게 될 것이다”라는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의 말로 회의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과거는 직시하고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과거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한일관계를 독일과 프랑스 사례에 견주기도 했다. 독일과 프랑스도 양차 세계대전을 통해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키면서 적으로 맞섰지만 전격적으로 화해했고 이제는 유럽에서 가장 가깝게 협력하는 이웃이라는 얘기다.
이번 모두발언에서는 한일관계 개선의 결단을 내리기까지 대통령으로서의 고민도 읽을 수 있었다. 윤 대통령은 2018년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후 생긴 한일 간 갈등 사례를 언급했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화이트리스트(수출우대국) 해제, 화해치유재단 해체 및 한국의 WTO 제소 조치 등이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존재 자체마저 불투명해져버린 한일 관계의 정상화 방안을 고민하면서 출구 없는 미로에 갇힌 기분이었다”고 털어놨다. “미중 전략 경쟁, 공급망 위기, 북핵 위협 고도화 등 복합 위기 속에서 한일 협력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기 때문”이라며 마냥 손을 놓고 지켜볼 수 없었던 배경에 대해 말했다.



‘한일관계 정상화=국익’ 공식 강조
한국이 먼저 손을 내민 이유에 대해서는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의 결단을 인용해 당위성을 설명했다. 먼저 1965년 국교 정상화 과정을 언급했는데,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굴욕적이고 매국적인 외교라는 극렬한 반대 여론이 들끓는 데 대해 ‘피해의식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일본이라면 무조건 겁부터 집어먹는 것이 바로 굴욕적 자세’라고 지적했다는 점을 짚었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에 대해선 ‘역사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불행했던 것은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7년간과 식민지배 35년간이었다. 50년도 안되는 불행한 역사 때문에 1500년에 걸친 교류와 협력의 역사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는 김 전 대통령의 연설을 소개했다.
논란이 된 ‘제3자 변제안’에 대해서도 입장을 숨기지 않았다. 제3자 변제 방식은 1965년 국교 정상화 당시 한일청구권협정과 2018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을 동시에 충족하는 ‘절충안’이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은 한국 정부가 개인 청구권을 일괄 대리해 일본의 지원금을 수령한다고 돼 있다”고 밝혔다.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명시적 사과가 없었던 데 대해선 “일본은 이미 수십 차례에 걸쳐 우리에게 과거사 문제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표한 바 있다”고 했다.
결국 대통령이 강조한 것은 ‘한일관계 정상화=국익’이라는 공식으로 읽힌다. 양국 관계가 개선되면 안보·경제·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의 시너지가 클 것이란 설명이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경기 용인의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에 일본의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을 대거 유치할 계획을 모두발언에서 다시 소개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안보 분야에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차원의 ‘한일 경제안보대화’ 출범과 같은 실익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한일관계 정상화는 결국 우리 국민에게 새로운 자긍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우리 국민과 기업들에게 커다란 혜택으로 보답할 것”이라면서 “무엇보다 미래세대 청년들에게 큰 희망과 기회가 될 것이 분명하다”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정책 마케팅 강화 주문
모두발언의 마무리는 최근 정부가 내놓은 근로시간 유연화 방안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데 할애했다. 주당 최대 근로시간과 관련해 논란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대통령이 직접 정책을 설명하고 나선 것이다. “주당 60시간 이상의 근무는 건강 보호 차원에서 무리라고 하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고 운을 뗀 윤 대통령은 “물론 이에 대해 근로시간 유연화 정책의 후퇴라는 의견도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주당 근로시간의 상한을 정해놓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노동 약자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근로시간에 관한 노사 합의 구간을 주 단위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자유롭게 설정하는 것만으로도 노사 양측의 선택권이 넓어지고 노동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된 뒤 참모들에게 “국민이 모르는 정책은 정책이 아니다”라며 ‘대국민 정책 마케팅’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정책을 홍보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기 쉬운데, 정책 대상자와 소통해 수요자가 필요로 하는 게 뭔지 알면 훨씬 효과적이지 않겠느냐는 취지”라고 전했다.

31년 만에 ‘방첩사령부’ 찾아
윤석열 대통령은 3월 22일 국군방첩사령부(방첩사)와 사이버작전사령부(사이버사)를 찾아 업무보고를 받았다. 대통령이 방첩사를 방문한 건 1992년 노태우 전 대통령 이후 31년 만이며 사이버사를 직접 찾아 업무보고를 받은 것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이다.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어느 때보다 엄중한 안보 상황에서 방첩사와 사이버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업무 현황을 파악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방첩사를 찾아 업무보고를 받은 윤 대통령은 “방첩사가 지난해 11월 부대 명칭을 바꾼 뒤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면서 방첩 활동에 총력을 다할 것을 주문했다. 방첩사는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의 후신으로, 기무사는 2018년 해체된 이후 안보지원사령부로 개편됐다. 윤석열정부는 출범 이후 부대 정체성과 임무 대표성을 드러내는 방첩사로 명칭을 복원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 군이 과학기술 강군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확고한 군사보안 태세가 정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이버사로 이동해 업무보고를 받은 윤 대통령은 작전센터를 찾아 부대원을 격려했다. 윤 대통령은 “이제는 군의 사이버 작전을 적 사이버 공격에 대한 대응 중심의 수세적 개념에서 탈피해 선제적·능동적 작전개념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방첩사와 사이버사 방명록에 각각 ‘보안이 생명이다’, ‘사이버 전투 역량은 국가안보의 핵심’이라고 적었다.



“노동 약자 보호할 것”
윤석열 대통령은 3월 2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복지·노동 분야 최일선 종사자 110여 명을 초청해 오찬을 함께했다.
기념식에 앞서 윤 대통령은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기념촬영을 했다. 또 현장 종사자들의 희망과 바람이 적힌 게시판에 들러 참석자들이 적은 글을 보며 공감을 나눴다. 게시판에는 ‘당신은 귀한 사람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공정과 법치의 노동행정 꼭 이루겠습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따뜻하고 행복한 사회를 이루어 갑니다’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윤 대통령은 모두발언을 통해 종사자 처우 개선 의지를 전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헌신적으로 일하고 계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리며 여러분의 노고에 공정하고 합당한 보상이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포퓰리즘적 정치 복지가 아닌 자유와 연대의 정신에 입각한 약자복지를 지향하고 있다”며 “질 높은 사회서비스 제공에 더해 복지와 고용의 선순환을 달성하는 것이 서비스 복지이며, 또 진정한 사회적 약자를 위해 맞춤형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찬에는 윤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만났던 청년사회복지사 권새로미 씨를 비롯해 현장 간담회 등을 통해 인연을 맺었던 이형윤 사회복지사, 김미영 사회복지사 등이 대통령과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함께하며 복지·노동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와 의견을 나눴다.

한일 경제인 향해 “양국 협력 구체화할 때”
앞서 3월 17일 방일 기간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 도쿄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 회관에서 열린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해 양국 주요 경제인과 오찬을 함께하며 한일 경제협력 비전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 자리에는 김병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직무대행을 비롯해 이재용(삼성전자)·정의선(현대차) 회장 등 국내 5대 그룹 총수가 참석했다. 일본 측에선 일본 대표 경제단체인 게이단렌의 도쿠라 마사카즈 회장과 사토 야스히로 미즈호파이낸셜그룹 특별고문, 야스나가 다쓰오 미쓰이물산 회장 등이 함께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양국 기업들이 협력 사업을 더 구체화할 때이며 정부도 관심을 갖고 규제도 풀고 선제적인 지원도 할 테니 한국 정부에 요청할 일이 있으면 기탄없이 언제든지 얘기해달라”고 말했다. 도쿠라 회장은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를 확인했고 강제징용 배상 해법 결단, 한일 정상회담 등으로 양국 관계 개선에 큰 한걸음을 내딛었다”면서 회의 말미에는 “윤 대통령의 솔직함과 오픈마인드에 팬이 됐다”고 전하기도 했다.

조윤 기자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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