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막밭 개 트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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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튼다’는 말은 마을주민들이 마을어장에서 패류나 해조류 등 해산물을 채취하는 것을 허락한다는 의미이다. 완도·해남·여수·고흥·보성·장흥·강진·진도 등 서남해역 바닷마을에서 주민들에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특히 여자만, 득량만, 해창만 등 좋은 갯벌을 품고 있는 고흥에서는 계절에 따라 물때에 따라 꼬막개, 바지락개, 굴개, 낙지개 등 특정한 해산물을 채취하는 개를 트기도 한다.
마을어장은 여전히 역할을 하고 있고 주민들은 마을규칙에 맞게 공유자원을 관리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 중 겨울철에 트는 개로는 꼬막개가 대표적이다. 꼬막맛이 가장 좋은 설 명절과 보름 명절을 전후해 꼬막개를 튼다. 이 시기에 꼬막을 찾는 사람이 가장 많아 값도 좋고, 조상에게 올릴 제물을 준비하기도 한다.
꼬막의 본향으로 알려진 여자만에서도 참꼬막이 귀해 꼬막개를 튼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러던 중 지난 정월 보름을 앞두고 고흥군 점암면 여호리에서 꼬막개를 열었다. 2년 전에 다녀왔던 인연으로 다시 찾았다.
여자만은 전라남도 여수시, 순천시, 고흥군, 보성군 사이에 있는 내만으로 ‘한국의 갯벌’ 세계자연유산에 포함된 순천만갯벌과 보성벌교갯벌이 있다. 그리고 여수갯벌과 지난해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고흥갯벌도 아우른다.
이곳에서는 숭어·짱뚱어·망둑어·전어·낙지·새꼬막·참꼬막 등이 서식한다. 또 두루미류와 도요물때새류 등 보호조류와 고둥 등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보호종으로 지정한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여자만 참꼬막 안녕할까
정월 보름을 앞두고 여호리에서 갑자기 ‘꼬막밭 개를 튼다’는 연락을 받았다. 여호리는 조선시대에는 수군진이 있었던 곳으로 마을에 일부 성벽도 남아 있다. 물때로 보면 오후에 갯벌이 드러나 작업을 할 수 있지만 미리 가서 준비하기 때문에 10전 전후로 바다로 출발한다. 특히 어장이 마을에서 떨어져 있거나 바다 가운에 드러난 갯벌에서 일을 해야 할 경우는 미리 배를 타고 가서 기다려야 한다.
여자가 많은 어촌마을은 제사를 지낼 때 반드시 참꼬막을 올린다. 마을마다 참꼬막이 자라는 마을어장을 가지고 있거나 개인 갯밭이 있어 직접 채취해 정월에는 조상님께 올렸다. 최근 꼬막섬 장도에서 만난 주민은 조상님 상에 올릴 꼬막도 없다고 한탄한다. 그 원인으로 기후위기, 서식지 오염, 새꼬막 양식의 확대 등 의견이 분분하다.
이번에 여호리에서 개를 트는 꼬막밭은 2년 전에도 꼬막을 채취했던 곳이다. 당시 마을주민 13명의 참석해 154.5kg을 채취했었다. 꼬막밭의 개를 트는 결정은 어촌계가 중심이 된 마을회의에서 결정한다. 과거에는 꼬막, 바지락 등 패류나 톳, 미역, 우뭇가사리 등 해조류 등 마을공동어장에서 이루어지는 채취활동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지금은 꼬막이나 바지락 등 시장성이 있고 돈이 되는 품목을 대상으로 개를 튼다. 나머지는 마을주민들이 자유롭게 채취할 수 있다.
꼬막개는 꼬막 값이 좋은 설명절과 정월보름 사이에 꼬막개를 튼다. 10여년 전까지 보성 벌교나 고흥 갯벌 어디에서나 마을주민들이 모두 나와서 널배를 타고 꼬막을 채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널배는 뻘배라고도 부르는데 펄갯벌이 발달한 곳에서 이동하거나 어업 행위를 할 때 이용하는 도구이다. 보성 벌교 장암리 일대에서 꼬막을 채취하는 뻘배어업은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꼬막 삼종세트, 맛은 어떨까
꼬막은 참꼬막, 새꼬막, 피꼬막으로 구분한다. 모두 양식을 하고 있다. 참꼬막은 제사상에 올리는 꼬막이라고 해서 ‘제사꼬막’이라고도 하며 주민들은 참꼬막이라 부른다. 새꼬막은 각정의 뒷부분을 숟가락이나 펜치와 같은 기계로 깐다고 해서 똥꼬막이라 부른다. 혹은 참꼬막보다 한등급 낮다고 해서 그리 불리기도 한다.
피꼬막은 어린이 주먹부터 어른 주먹만 하게 자라는 꼬막이다. 새꼬막과 피꼬막은 수심이 깊은 펄에 자라며 참꼬막은 조간대 갯벌에서 자란다. 채취하는 방식도 다르다. 참꼬막은 널배를 타고 갯벌로 들어가 직접 채취하지만 새꼬막은 배를 이용해 형망으로 채취한다. 물론 맛도 다르다.
참꼬막은 배릿한 맛이 강하고 짭쪼름한 핏기가 많지만 새꼬막은 이 맛이 약하다. 그래서 이맛을 즐기는 고흥이나 벌교 사람들은 참꼬막을 으뜸으로 꼽는다. 가격도 차이가 크다. 금년 기준으로 참꼬막은 4만원에 새꼬막은 2만원 피꼬막은 1만원 거래되기도 했다.
꼬막밭을 열면 한 가구에 한 명씩 뻘배를 가지고 나와 꼬막을 채취했다. 꼬막밭의 규칙이 엄격할 때는 뻘배를 타지 못하면 잘 타는 사람을 사서 대신 참여시키기도 했다. 마을에서 인정하는 불참 이유(혼례나 제례 등)가 아니라면 벌금을 내야 하고 심지어 연말에 배당금에서 제외하는 마을도 있었다.
20여년 전에는 한 사람씩 나와서 능력껏 꼬막을 채취했다. 그리고 10여년 쯤 지나고 나서는 어촌계가 일괄 수집해 상인에게 팔거나, 꼬막밭의 채취권을 판매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꼬막개를 트면 참석가능한 주민들이 나와서 채취해 일부는 마을기금(수수료)으로 적립하고 대부분은 참여한 사람의 통장에 입금한다.
이번에는 모두 9명의 주민이 참여해 90kg 정도 채취했다. 한 사람이 평균 10kg 정도다. 꼬막을 채취하는 방법은 맨손을 갈퀴처럼 구부려 펄을 긁어서 꼬막을 찾는 방식이다. 꼬막이 많을 때는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꼬막밭에 나와서 공동작업을 했다.
지금은 100여 가구 10% 정도가 뻘밭에서 꼬막을 채취했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배를 가져와 갯가에 세워두고 꼬막을 채취해 가져갔다. 당시에는 한 사람이 300kg을 채취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번에 가장 많은 꼬막을 채취한 사람은 18kg이다. 이대로 진행된다면 여자만에서 참꼬막이 사라지는 것이 머지않을 것 같다.
꼬막밭을 지키려면
여호리 꼬막밭은 설명 절에 맞춰 트려고 했었다. 하지만 꼬막이 없어 뒤로 미뤘다. 그리고 정월보름에 맞춰 겨우 꼬막밭을 열었다. 꼬막도 없지만 채취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적다. 모두 고령인 탓이다. 이번 꼬막 채취에 나선 주민 중에 최고령은 여든 살이다. 나머지도 대부분 일흔 살 전후에 이른다. 갯벌에 서식하는 꼬막도 줄어들지만, 뻘배를 타거나 갯벌에서 꼬막을 채취할 주민도 줄어들고 있다.
채취해온 꼬막은 세척, 선별, 측정, 기록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2년 전에만 해도 바지선에서 모든 과정이 이루어졌지만 이번에는 바지선도, 간식도 없이 진행되었다. 이렇게 채취한 꼬막은 다음날 경매를 거쳐 도매상에게 넘겨진 후 소비자에게 팔린다. 각자 채취한 양을 기록해 일부 마을기금으로 적립하고 각자의 통장에 입금된다.
요즘 시세로 보면 적게는 꼬막을 채취한 주민들에게는 적게는 10여만 원에서 많게는 30여만 원까지 소득을 올렸다. 당연히 채취량이 많은 사람은 마을에 내는 기금(수수료)도 많아진다. 꼬막밭은 주민 개인소득이자 마을운영을 위한 재원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귀어귀촌을 한 사람에게는 쉽게 꼬막밭에 참여할 제공하지 않았다.
이를 단순하게 ‘진입장벽’으로 접근하는 것은 기존주민과 새로 들어온 사람들 사이에 간극을 좁힐 수 없다. 꼬막밭의 가치, 마을어장의 다원적 가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주민들도 과거의 마을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기후위기와 고령화 등 바뀌는 어촌환경을 인식하는 지속 가능한 어업에 대한 고민이 요구된다.
◆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어촌사회 연구로 학위를 받은 후, 섬이 학교이고 섬사람이 선생님이라는 믿음으로 27년 동안 섬 길을 걷고 있다. 광주전남연구원에서 해양관광, 섬여행, 갯벌문화, 어촌사회, 지역문화 등을 연구하고 정책을 개발을 하고 있다. 틈틈이 ‘섬살이’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며 ‘섬문화답사기’라는 책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 섬문화답사기, 섬살이, 바다맛기행, 물고기가 왜, 김준의 갯벌이야기 등이 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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