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녹벤저스! 노후 주거지가 탄소중립 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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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금천구 ‘더금하에너지전환협동조합’
서울 영등포구 성산대교 남단에서 금천구 금천IC까지 이어지는 10.33㎞의 서부간선지하도로(강남순환로 2단계 구간)를 통과하려면 차를 타고 8분가량(제한속도 80㎞/h 기준)을 달려야 한다. 우리나라 최장 지하 고속도로 터널이다. 컴컴한 지하터널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다 보면 어깨는 경직되고 눈도 침침해진다. 그러나 지하도로를 벗어난 순간 반전의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도로 양옆으로 펼쳐진 ‘금하숲길’이다. 봄이 되면 이곳은 푸른 잎들이 나뭇가지 위로 폭죽처럼 피어올라 녹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고층 아파트 아래를 관통하는 아스팔트 도로 옆에 자리한 숲길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숨통을 틔워준다.
고속도로 바로 옆, 도심 속 쉼터를 일군 사람들이 있다. 서울 금천구 독산1동 1100번지 일대 금하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더금하에너지전환협동조합(이하 더금하)’이다. 2019년 5월 완공된 서부간선지하도로는 건설 계획 당시 지상도로로 만들어질 예정이었다. 차량통행 증가로 환경오염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인근 주민들은 수년간 지방자치단체를 설득해 고속도로의 ‘지하화’를 이끌어냈다. 이때 ‘발바리(발 빠르게 바지런히 이웃과 함께)’라는 이름의 주민모임이 결성됐고 더금하의 시초가 됐다. 이후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게 된 주민들이 주민협의체를 만들고 주택단지와 도로 사이의 완충지대에 직접 숲길까지 조성한 것이다.
주민이 만든 ‘숲길’… 우범지대가 빗물순환로로
금하숲길은 도시의 미세먼지와 매연, 소음을 흡수하는 건 물론이고 재활용에 쓸 빗물을 모으는 구실까지 해낸다. 320m에 이르는 숲길 땅 밑으로 빗물침투트렌치를 설치한 덕분이다. 빗물은 여기에 저장됐다가 나무에 물을 줄 때 사용된다. 빗물침투트렌치는 인근 철쭉어린이놀이터에도 설치돼 있는데 이 때문에 금하마을은 ‘빗물(순환)마을’로 불리기도 한다. 더금하와 함께 금하숲길을 조성한 금천GC생태포럼 서은주 대표는 숲길이 탄소저감에 큰 몫을 하는 건 물론 인근 주민들의 삶의 질까지 높였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전까지 이곳은 차량 소음을 막기 위한 시커먼 방음역이 세워져 있어 음침한 분위기였어요. 우범지역으로 여성들은 지나다니기 두려워할 정도였죠. 도시개발 당시 시민들의 정서적인 측면은 고려하지 않은 탓이에요. 그런 곳이 숲길로 변신해 이제는 어린이집 체험학습 공간으로, 가족 나들이 장소로 사랑받는 명소가 됐어요. 특히 금하숲길은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땅 밑으로 모두 흡수됩니다. 빗물이 스미지 못하고 흘러가기만 하는 아스팔트 도로와 다른 거죠. 빗물은 2회가량 재활용한 후 버려집니다. 그야말로 빗물순환, 자원순환이 이뤄지는 거예요.”
태양광·LED 등 교체로 전기요금 70% 아껴
금하마을은 이전까지 저층 주거지역으로만 알려진 곳이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금천구지만 지리상 광명권에 속해 금천구 속의 섬처럼 자리하고 있다. 남쪽 저층 주택이 밀집한 모습은 북쪽 아파트 단지와 구분된다. 약 900가구 가운데 422가구가 1인가구, 그중 81가구는 홀몸노인으로 주민들도 고령화되고 있다. 이처럼 노후한 마을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환경과 생태에 관심을 가진 주민들의 힘이었다. 더금하를 중심으로 주민들이 직접 낡은 집을 수리하고 그 과정에서 에너지를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방안을 고안하면서 친환경 에너지자립 마을로 주목받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조합원들은 스스로를 ‘녹벤저스’라고 칭했다. ‘저탄소 녹색생활을 실천하는 어벤저스’란 뜻이다.
더금하는 2017년부터 50년 이상 된 노후주택의 환경개선을 지원하는 서울시의 ‘가꿈주택’, ‘에너지자립마을’ 사업 등과 연계해 창호·단열 개선과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교체, 옥상녹화, 태양광 설비 설치 등을 추진해왔다. 또 전기료 등을 절약한 만큼 서울시에서 마일리지를 지급해주는 ‘에코마일리지’ 가입에 적극 나섰다. 그 결과 지금까지 550가구가 자발적으로 LED 조명 교체에 참여했고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63가구는 전력생산을 통해 전기요금을 70% 이상 줄였다는 게 더금하의 설명이다. 다음 목표는 예산이 확보되는 대로 160가구 이상에 태양광 설비를 보급해 동네를 ‘작은 발전소’로 만드는 것이다. 조합원 이금희 씨는 환경문제에 관심이 없던 주민들도 직접 에너지 비용 절감을 경험한 뒤 크게 달라졌다고 털어놨다.
“이곳은 1990년대에 지어진 낡은 집이 많았어요. 그런데 에너지 전환을 통해 주거환경을 개선하니 외관이 달라진 건 물론 전기요금과 냉·난방비가 줄었죠. 특히 옥상에 나무를 심은 것만으로도 여름엔 건물 온도를 낮추고 겨울엔 단열 효과로 따뜻합니다. 주민들은 아파트가 부럽지 않다고들 해요. 처음엔 탄소중립이 뭔지도 모르던 주민들이 이젠 더금하의 활동에 크게 관심을 갖고 자발적으로 참여하죠.”
음식물 쓰레기로 만드는 ‘천연퇴비’ 보급
더금하의 활동 중에는 주민의 생활 속 지혜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로 만들어 사용하자는 ‘우리동네 자가퇴비 발전소’다. 더금하 오회옥 이사장은 동네 주민 박부부 씨가 음식물 쓰레기를 발효해 천연퇴비를 만드는 모습을 본 뒤 이를 각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오 이사장은 “가정마다 음식물 쓰레기가 넘치는 상황에서 정작 집안 화분에는 화학퇴비를 쓰지 않나”라면서 “먹고 난 음식물에 톱밥과 미생물만 넣어주면 쉽게 천연퇴비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취재진이 찾은 박 씨의 집 옥상에는 그가 직접 만든 천연퇴비가 담긴 대형 화분이 즐비했다. 그 안에는 수십 종의 다육식물과 아직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파, 호박, 고추 등이 심어져 있었다. 버려진 먹거리 속에서 새 먹거리가 만들어지는 그야말로 자연순환의 현장이다. 인공퇴비와는 다른 흙냄새가 기분좋게 코끝을 자극했다. 금하마을의 우리동네 자가퇴비 발전소 제1호 인증을 받은 박 씨는 “화학퇴비는 1주일마다 흙을 갈아줘야 하는데 천연퇴비는 발효되면서 좋은 성분이 계속 올라와 토양이 산성화되지 않는다. 지금부터 가을까지 흙을 갈지 않아도 된다”며 흐뭇해했다.
“마을기업의 녹색 비즈니스 모델 만들 것”
이 같은 노력을 인정받은 더금하는 2022년 12월 행정안전부의 ‘우리동네 그린리더(서울지역)’로 선정됐다. 생활 속에서 탄소중립을 실천해 공동체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 데 대한 정부의 격려다. 여기서 나아가 더금하는 탄소중립 실천을 넘어 수익을 내고 일자리까지 창출하는 ‘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2022년 3월 금천구의 ‘도시재생 1호 마을기업’으로 이름을 올리고 주민공동이용시설을 통해 다양한 친환경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꿀벌왁스를 원료로 한 다회용 주방 랩, 버려진 천을 세탁해 제작한 앞치마와 방석보, 물병 캐리어 등 모두 조합원의 손으로 만든 것이다. 마을 ‘기업’답게 더금하는 자체 브랜드 상품도 선보였다. ‘더금하 뽀들해(주방세제)’ ‘더금하 뽀꽃해(손 세정제)’ ‘더금하 편안해(방향제)’ 등은 천연원료만을 사용해 만든 1종 그린등급 제품이다.
2023년 12월 ‘에코에너지센터’가 완공되면 더금하는 마을기업으로서 본격적인 걸음을 할 것으로 보인다. ‘에코에너지센터’는 더금하가 참여한 행안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탄소중립 활동의 지역사회 거점으로 청년 스타트업이 만든 새활용(업사이클링) 제품 등을 판매하고 친환경 사회적기업과 협업을 위한 코웨킹센터를 구축할 계획이다. 오 이사장은 에코에너지센터를 통해 친환경 비즈니즈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금천구 1호 마을기업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 같은 목표를 지닌 에코에너지센터가 중장년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청년 사업가들을 끌어들이면 금하마을이 전 세대를 아우르는 녹색 마을이 되지 않을까요? 탄소 줄이기는 거창한 것이 아니에요. 나와 공동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해나가면 됩니다. 더금하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조윤 기자
박스기사
‘금하마을’에서 실천하는 음식물 쓰레기로 천연퇴비 만들기
1. 염분을 제거한 음식물 쓰레기를 600g 이상 모아 이틀 정도 건조해 수분을 50% 말린다. 퇴비로 만들기에 적합한 음식물 쓰레기는 과일 껍질(바나나·오렌지·귤 껍질은 제외), 밥, 채소, 커피 찌꺼기 등이다. 과일 씨나 육류, 어패류, 달걀, 염분이 많은 장류는 적합하지 않다. 같은 이유로 이것들은 음식물 쓰레기로 분류되지 않는다.
2. 옆면과 바닥에 작은 구멍 여러 개를 뚫은 대형 고무·플라스틱 통이나 화분에 음식물 쓰레기를 넣는다. 질소 성분이 많은 음식물이 발효되도록 탄소 성분을 지닌 톱밥, 낙엽, 왕겨 등을 음식물의 두세 배가량 넣어준다. 퇴비가 만들어지며 바닥으로 흘러나온 침출수는 물과 1대 5로 희석해 액비로 사용한다.
3. 2주간 매일 퇴비상자에 미생물 발효액(EM액)을 분무해주고 1주일에 한 번 위아래로 뒤집어준다. 발효에 가장 적합한 온도는 45~65℃다.
4. 약 2주 뒤부터 방선균(흰곰팡이)이 생성되기 시작하면 성공이다. 1~2개월 더 발효를 거치면 완숙퇴비가 완성된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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