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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먹으며 웃을 날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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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아저씨, 국수 드세요
신순재 글 / 오승민 그림
천개의바람

3년 전 가을, 책방 옆에 방 하나를 얻어 예쁘게 단장했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꿈틀옆방’이라 지었답니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독립된 공간에서 조금 더 편하게 책 모임을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얻은 이곳에는 자그마한 주방도 있어서 모임이 끝나면 한 번씩 잔치국수나 떡국을 만들어 나눠 먹곤 했지요.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가 시작되는 바람에 그간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그 정겹고 온기 가득했던 풍경을 다시 떠오르게 해 준 고마운 그림책 한 권을 만났습니다.
백석의 ‘국수’라는 시를 모티브로 한 그림책 입니다. 시에 등장하는 시인의 고향 평안도 산골마을, 그곳 자연과 사람들과 오랜 풍습을 어린아이의 귀엽고 순수한 시선으로 만나 볼 수 있는 책이에요.
“오세요, 오세요, 국수 드세요.” 눈이 펑펑 쏟아지는 어느 겨울밤, 작은 외딴집에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 국수를 나눠 먹습니다. 유난히 지치고 외로운, 가난한 시인도 다정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뜨거운 아랫목에서 살얼음 낀 동치미 국수 한 사발을 들이키고, 마침내 웃어요. “아!” 하는 탄성 뒤에는 시 한 자락이 숨어 있지요.
작가는 ‘나라를 빼앗기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떠돌던 시인에게 그 좋아하던 메밀국수 한 그릇 먹이고 싶은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해요. 화자인 아이도 실은 아버지가 멀리 장에 가고 어머니와 단둘이 남은 무서운 밤, 아버지가 눈밭에 길 잃을까 내내 걱정되는 밤, 아버지가 토끼를 잡아 금방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밤을 보내고 있었지요. 시인과 아이의 그 긴긴밤이 어머니의 국수를 반가워하는 살가운 이웃들의 온기로 채워지는 사이, 저 멀리 문밖에서 또 누군가가 걸어옵니다.
암울했던 1930년대 시를 다루면서도 재미난 옛이야기 책을 보는 듯한 건, 소리 내어 읽어도,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좋은 화자의 구수한 입말뿐 아니라 그림의 역할도 크겠지요. 단순한 풍경에서부터 크기와 색을 강조해 마법이나 환상을 보는 듯한 장면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강약 조절이 이야기의 역동성을 더해주고 있어요. 저마다 밝게 웃으며 따뜻한 노란빛을 머금고 ‘둘러앉은’ 인물들의 고유한 표정은 이 책의 큰 특징이기도 하고 오래 기억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해요.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도 메밀국수 한 그릇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춥고 외로운, 또 다른 의미의 백석들이 가까이에 있을지도요. 다시 꿈틀옆방 가득 둘러앉아 국수 먹으며 웃을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때까지 우선 이 책을 읽어 드리도록 할게요. “오세요, 오세요, 책 보러 오세요.”

이숙희·꿈틀책방 대표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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