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이 귀로 볼 수 있도록 장면을 선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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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해설작가 권성아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며 해외에서 더욱 빛난 K-콘텐츠 <헤어질 결심>. 이 영화를 시각장애인도 관람할 수 있도록 수십 번을 보고 여러 밤을 지새운 사람이 있다. 바로 화면해설작가 권성아 씨다.
화면해설은 시력이 약하거나 전혀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TV나 스크린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해설자가 음성으로 설명해주는 서비스(Descriptive Video Service·DVS)이다. 영상 속 장면의 전환이나 등장인물의 표정, 몸짓 그리고 대사 없이 처리되는 모든 화면을 말로 설명하는 것이 ‘화면해설’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각장애인의 눈이 돼주는 화면해설용 원고를 쓰는 화면해설작가는 국내에 통틀어 100명이 채 안된다. 화면해설작가들이 쓴 글은 전문 성우들의 목소리나 인공지능(AI) 음성에 실려 시각장애인에게 전달된다.
시간예술가로 고군분투하는 직업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TV에서 나오는 화면해설을 듣고 호기심이 생겼다.”
올해로 11년 차인 권성아 작가의 입문 계기이다. 권 작가는 그 길로 검색해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미디어접근센터(현재 한국시각장애인미디어진흥원)에서 교육을 받은 뒤 컴퓨터그래픽 강사에서 작가로 직군을 뛰어넘었다.
현재 그는 한국시각장애인미디어진흥원에서 진행하는 화면해설작가 양성교육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 유일의 시각장애인 전문 프로그램인 KBS 제3라디오 ‘우리는 한 가족’ 프로그램에 출연해 화면해설로 제작된 드라마를 소개하기도 한다.
그가 최근 화면해설한 작품은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 <헤어질 결심>과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우리들의 블루스> 등이다.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은 현실에 있지 않은 지옥이라는 배경을 묘사하는 것이 힘들었다. 컴퓨터그래픽(CG)도 화려해서 정성을 많이 기울였다. <헤어질 결심>은 미장센(화면 구성)이 너무 뛰어난 영화여서 한계를 절절히 느꼈던 작품이다. 시나리오 없이 작업한 영화이다 보니 감독의 의도를 짐작할 수밖에 없어서 많은 검색과 자료를 토대로 화면해설을 썼다.”
정해진 마감 시한까지 보고 또 보고, 듣고 또 듣는 일의 무한 반복이다. 잘 만들어진 작품들은 부담감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그는 일에서 느끼는 기쁨과 보람이 크다고 말한다.
그는 2022년 말 함께 입문교육을 받고 10년간 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네 명의 동기(김은주, 이진희, 임현아, 홍미정) 작가와 <눈에 선하게>라는 제목으로 에세이집을 집필했다. 다양한 콘텐츠와 어우러진 에피소드들이 진한 감동을 주기도 하고 웃게도 만든다.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이자 국회의원인 김예지 의원은 이 책을 “눈으로 보는 것을 귀로도 볼 수 있게 하는 ‘시간 예술가’들의 고군분투기”라고 표현했다.
같은 타이밍에 웃을 수 있도록
권 작가는 “저와 동료 화면해설작가들은 ‘같은 타이밍에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비시각장애인이 작품을 볼 때처럼 시각장애인도 같은 타이밍에 웃고 놀라고 기뻐하고 슬퍼할 수 있게 해설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꼼꼼함과 집요함은 이 직업의 필수 덕목이란다.
“1000만 관객이 선택한 영화라도 장애로 인해 그 영화를 감상할 수 없다면 가족이나 친구들, 지인들과 대화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그는 일을 통해 장애를 탐구하고 배워가고 있다. 누구나 누릴 권리를 돕는 직업으로 소명의식도 갖게 됐다.
“지금은 화면해설을 소개하는 공익광고도 많고 TV방송 편성표를 보면 ‘해’라는 글자나 사람의 귀 모양으로 화면해설 방송을 표시하고 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스트리밍 서비스인 넷플릭스에 보면 음성해설을 선택할 수 있게 돼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화면해설을 알게 됐다.” 그는 국내 OTT 플랫폼은 아직 화면해설을 제작하지 않은 점, 더빙한 해외 작품은 화면해설이 안되는 점 등이 앞으로 개선해나가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한다.
권 작가는 화면해설이 더 많은 분야로 확산되고 이 직업에도 많은 이들이 도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덧붙여 화면해설이 꼭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서비스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중도 시각장애인이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극장에서 화면해설 영화를 보고 나오다가 눈이 나빠진 어머니도 함께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시력이 나빠진 노년층에게도 화면해설은 유용하다. 연령대에 상관없이 운전이나 운동하면서 듣기도 좋다. 또한 드라마나 영화 마니아들이 즐기는 독특한 콘텐츠가 되기도 한다.
권 작가는 “작은 관심이 모이면 힘이 된다”면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화면해설에 관심을 기울여줄 것과 꼭 직접 들어보길 권했다.
권민희 기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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