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편리한 편의점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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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연 작가의 소설 <불편한 편의점>은 1·2권 합쳐 100만 부 넘게 팔린 2022년 최고 베스트셀러였다. 노숙자였던 편의점 직원이 펼치는 뜻밖의 호의와 기지가 삶에 지친 독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졌기 때문이리라.
내게도 친하게 지내던 편의점 사장님이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글을 쓸 때 새벽에 일어나면 세수를 한 뒤 편의점으로 가서 1500원짜리 원두커피를 한잔 내려 마시는 걸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는데 그게 어느새 리추얼(의식적으로 반복하는 행동)이 됐던 것이다. 편의점 사장님은 매일 야간근무를 하셨는데 내가 힘들지 않냐고 물으면 “띄엄띄엄 일하는 것보다는 매일 규칙적으로 나와 가게를 지키는 게 더 편하다”고 하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야간 근무자를 구하기 힘들어 그랬던 것이었다.
처음엔 가벼운 인사만 나눴지만 아무도 없는 새벽에 오는 내가 반가웠던지 나중에는 기일을 넘긴 햄버거나 토스트 같은 걸 내주기도 했다. 사장님은 동네 사람들의 사정이나 소식도 모르는 게 없었다. 동네 세탁소 사장님이 어떻게 노력해서 부자가 됐는지 들은 곳도 편의점이었고, 종업원이 주인을 배신하고 나가서 똑같은 가게를 차린 얘기를 해준 것도 사장님이었다. 어떻게 그런 얘기를 다 알고 계시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가만히 있는데 동네 사람들이 와서 이런저런 비밀 얘기를 털어놓는다고 했다. 심지어 어떤 아주머니는 성 상담까지 시도하는 바람에 아주 곤란했다며 웃었다.
커피나 라면부터 피임기구까지 살 수 있는 편의점은 철저하게 익명의 공간이지만 조금만 마음을 열면 사람 사는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어느 날 편의점 사장님이 이제 가게를 그만두겠다며 인사를 했다. 나이가 들어서까지 너무 고생하는 게 싫다고 아들이 그만두라고 했다는 것이다. 사장님은 순순히 아들의 말을 듣고 가게를 팔았다.
사장님이 떠난 편의점을 새로 인수한 분은 중국계 아르바이트생을 대거 고용했는데 첫날 커피를 사러 간 나는 1500원이라는 말을 잘 못 알아듣는 직원 때문에 신용카드 결제 취소를 두 번이나 요구해야 했다. 그들 덕분에 편의점은 다시 철저한 익명의 공간으로 돌아갔다. 한 번은 새벽 네 시에 깨서 커피를 사러 들어갔더니 가게 안에서 중국어 회화 오디오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마 손님이 없는 시간이라 아르바이트 직원이 공부를 병행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중국어 회화 볼륨을 줄이지도 않고 내게 뭘 살 거냐고 물었다.
어렸을 때는 동네마다 구멍가게가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거기서 두부도 사고 쌀도 사면서 서로의 소식을 전하고 인사를 나눴다. 그러다가 일본에서 시작된 24시간 편의점이 들어오면서 우리는 새벽 두 시에도 갈 수 있는 편의점을 갖게 되었다. 모든 상품은 깔끔하게 진열돼 있고 한쪽 테이블에서는 간단하게 컵라면이나 커피 등을 먹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편리한 편의점이 좀 불편하게 느껴진다. 서로의 사생활에 참견하지 않는 게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미덕이라는 걸 잘 알지만 나는 아무래도 좀 촌스러운 사람이라 그런 것 같다. 나를 보면 반가워하며 싱거운 농담을 던지던 예전 편의점 사장님이 그립다.
유머와 위트 넘치는 글로 독자를 사로잡은 작가.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를 썼다. 현재 다양한 채널에서 글쓰기와 책쓰기 강연을 하고 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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