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의 사후 궁궐 건원릉의 억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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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은 죽은 왕의 궁궐이다. 조선시대에는 왕이 승하하면 최고의 건축가들과 백성들을 동원해 왕릉을 조성했다. 1408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사후궁궐 건원릉(健元陵)을 조성했다. 4개월 동안 석공, 건축가들이 충청도에서 3500명, 황해도에서 2000명, 강원도에서 500명 등 총 6000여 명이 동원됐다고 한다.
고향 함경도 영흥 땅에 묻어달라고 유언한 이성계의 뜻을 따르지 않고 다섯 째 아들 태종 이방원(1367~1422)은 고향에서 가져온 흙과 억새풀로 능을 덮었다. 다른 왕릉과는 다르게 봉분 위로 억새가 무성한 이유다. 주기적인 벌초 대신 억새를 매년 한식날에만 벌초해준다.
조선왕릉은 임금이 사는 경복궁과 창덕궁에서 100리(약 40㎞) 안에 위치하고 있다. 왕이 하루 안에 제사를 지내고 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생전 전투의 귀재였던 이성계지만 건원릉도 6·25전쟁을 피하지는 못했다. 능 앞 혼유석(제물을 차려놓기 위한 상석)과 고석(받침돌)에 총알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함흥본궁(咸興本宮)이 있던 함경남도 함흥시 사포구역 본궁동은 샘물동으로 지명이 바뀌었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본궁동으로 부른다고 한다. 함흥 출신의 한 탈북민은 “북한에서는 이성계를 료동반도(요동반도)를 잃어버렸다고 해서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라고 가르친다”고 말했다.
2009년 건원릉을 포함해 40기의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그중에서 유일하게 억새 봉분이 있는 건원릉은 올해도 은빛 억새를 흔들며 가을 인사를 전한다.
강형원
1963년 한국에서 태어나 197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이민했다. UCLA를 졸업한 뒤 LA타임스, AP통신, 백악관 사진부, 로이터통신 등에서 33년간 사진기자로 근무했고 언론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퓰리처상을 2회 수상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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