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우체통, 숙성된 감동을 배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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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한창이던 7월의 어느 퇴근길이었다. 평소처럼 집에 가는 버스에 앉아 핸드폰으로 퍼즐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게임 화면 위로 카톡 메시지 알림창이 떠올랐다.
“감동감동이야.” 라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메시지, 보낸 이는 시어머니셨다.
시어머니께 감동을 드릴 만한 장한(?) 일을 한 기억이 당최 없었던 터라, 고개를 갸웃거리며 카톡 창을 열어 보았다.
“감동감동이야. 가슴이 뭉클하네. 사랑한다. 우리 꾀꼬리~” 라는 사랑이 가득한 메시지와 함께 사진 파일도 하나 들어와 있었다. 엽서 한 장과 시어머니의 발이 함께 찍힌 사진이었다.
얼핏 사진을 보고도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어, 사진을 확대해 엽서의 내용을 읽어보았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 저는 지금 정선 출장 중이에요~ 느린 우체통이라고, 1년 후에 배달해 주는 엽서가 있어서… 생각나서 편지드려요. 항상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늘 지금처럼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20230707 금요일’
그제야 ‘아!’ 하는 소리와 함께 편지를 쓴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편지의 작성일은 작년 7월 7일, 편지를 쓴 곳은 출장 때문에 방문했던 정선이었다. 리조트에서 우연히 마주한 ‘느린 우체통’ 앞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라 펜을 들었고, 아들, 남편, 양가 부모님, 일 년 후의 나에게 사랑과 감사, 응원의 마음을 가득 담아 쓴 엽서를 설레는 마음으로 우체통에 넣었었다.
이후 바쁜 생활 속에 엽서를 썼었다는 것 자체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날 내가 썼던 엽서는 느린 우체통 속에서 일 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그날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 전달되었던 것이다.
‘느린 우체통’이란 편지를 넣으면 며칠 내로 전달되는 일반 우체통과는 달리, 6개월이나 1년이 지난 뒤 적어둔 주소로 보내지는 특별한 우체통을 말한다. 주로 지방자치단체나 민간 기업이 전국 관광명소에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2009년 5월에 인천 영동대교 휴게소 기념관에 설치된 우체통 3개를 시작으로, 전국 324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느린 우체통은 경북 포항 호미곶광장, 경기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대구 김광석 거리, 충남 보령 대천해수욕장 등에서 만날 수 있고, 민간 기업들이 운영하는 느린 우체통은 경기 가평 쁘띠프랑스, 강원 정선 하이원리조트 등에서 만나볼 수 있다.
지금은 여러 관광명소에서 ‘느린 우체통’을 종종 만나볼 수 있어서 낯설지 않게 느껴지지만, 처음 이 우체통을 접했을 땐, 그 개념이 참으로 생소했었다. 편지는 받는 이에게 빨리 전달될수록 좋은 게 아닌가, 그런데 ‘느린’ 우체통이라니!
여러 통신 매체가 주는 빠른 속도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탓일까? 단 몇 초 만이면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이 시대에, 일 년이라는 시간은 가늠이 되지 않는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지나와 전달된 편지에는, 단 몇 초 만에 전달되는 메시지를 받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커다란 감동이 있었다.
그것은 마치 긴 시간에 걸쳐 천천히, 잘 만들어진 음식에서만 느낄 수 있는-즉석 식품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세월 속에 숙성된 맛 같은 진한 감동이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느림의 미학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느린 우체통’, 그 우체통 안에서 잘 숙성된 감동을 배달해 주는 역할을 우정사업본부가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 큰 보람을 느낀다.
혹시 여행지에서 ‘느린 우체통’을 마주하게 된다면, 꼭 편지를 써보기를 권하고 싶다. 일 년 후 배달되는 편지가 주는 감동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기에. 더불어 희망해 본다. ‘느린 우체통’에 편지를 넣는 모든 이가 ‘마음이 도착할 내년 오늘엔 꼭 웃을 일이 많았으면.’ 한다고. 가수 윤하가 노래한 ‘느린 우체통’의 가사처럼 말이다.
◆ 이재우 강원지방우정청 주무관
강원지방우정청 회계정보과 소속으로 2022년 공직문학상 동화 부문 은상을 수상했다. 우체국 업무를 수행하면서 느낀 감정들을 동화로 옮겨내 수상의 기쁨을 얻었다. 우체통과 편지가 사라지고 있는 요즘이지만 여전히 우체국에는 온갖 이야기를 담은 우편물과 택배가 가득하다. 이들 속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를 계속해서 듣고 동화로 옮기는 중이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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