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문학 새로운 챕터를 열다 한강 노벨 문학상 수상,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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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의 성취는 2020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오스카 작품상을 받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BTS·블랙핑크와 같은 K-팝의 대중적 성공에 이어 거둔 것이다. ‘채식주의자’로 잘 알려진 한강 작가의 수상은 한국의 여성 소설가와 시인들이 번역을 통해 전 세계 독자들에게 반향을 불러오고 있는 시점에 적절히 이뤄진 것이다. … 한국은 대중문화만을 생산하는 나라가 아니다. 아이디어의 나라이기도 하다. 한강 작가의 수상은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하는 일이다. 한국은 영화와 밴드만 만들지 않는다. 한국에는 경이롭고 풍부한 문학이 있다.”
-‘뉴욕타임스’ 2024년 10월 11일자 기사
“목요일에 들려온 깜짝 소식은 문학이 K-팝과 ‘오징어 게임’의 땅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풍부한 저변에도 불구하고 한국문학은 일본이나 중국의 문학에 비해 덜 알려져 있었다.”
-‘로이터 통신’ 2024년 10월 11일자 기사
10월 10일 발표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소설가 한강의 이름이 불린 것은 문학사에 기록될 만한 일이다. 노벨문학위원회 의장 안데르스 올손이 밝힌 바와 같이 한 작가가 ‘현대 산문의 혁신가’로서 뛰어난 문학적 성취를 거뒀다는 사실뿐 아니라 이번 수상이 주목받지 못했던 아시아·여성의 수상이라는 점이 특히 의미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K-문학은 조용히 국제적 영향력을 넓히고 있었다. 한 작가는 2016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서 수상한 것을 비롯해 2023년에는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김혜순 시인은 ‘날개 환상통’으로 2024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다. 김주혜 작가는 러시아 톨스토이 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문학번역원에 따르면 2024년에만 4건의 국제 문학상 수상 소식이 들려왔고 2020년부터 최근 5년간 국제문학상 수상 실적을 합하면 20건에 달한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은 10개 언어권에서 30만 부 이상 판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는 일본에서,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은 브라질에서,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은 독일에서 상당한 인기를 거뒀다.
그러나 여전히 K-문학은 ‘변방’에 있었다. 2016년 한 작가가 부커상을 수상할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보이드 턴킨은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전해듣고 소셜미디어 X(구 트위터)에 “‘채식주의자’가 부커상 수상작이 됐을 때 몇몇 냉소적인 언론들은 ‘애매한’ 한국어를 선정한 우리의 선택을 조롱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노벨 문학상이 이 선택을 다시 한 번 입증해줬다면서 “더 많은 독특한 비전과 목소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매력적인 이야기가 많은 나라”
한국의 풍부한 문화 콘텐츠는 이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3월 6일 영국의 ‘가디언’은 ‘BTS, 블랙핑크, 오징어 게임, 김치… 세계를 정복한 한국문화의 비밀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 강인규 교수의 말을 인용해 “한국에는 전 세계에 공유할 만한 매력적인 이야기가 많다”고 적었다. 강 교수는 당시 “다음 ‘큰일’은 한국문학에서 생길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의 탁월한 스토리텔링 능력은 영화, TV 드라마, 웹툰 등을 통해 알려졌지만 아직 문학은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르면 K-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을 비롯해 한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AP 통신’은 수상 직후 기사에서 “한강 작가의 이번 수상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유럽이나 미국 남성 작가 중심의 노벨 문학상의 초점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작가회의는 논평을 통해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의 일원으로서 분명한 몫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대 사건”이라며 “한강 작가의 수상은 작가 개성에 대한 문학적 보상이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문화의 토양을 일궈온 수많은 작가들의 땀이 스며 있는 성과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한 작가 본인도 수상 소식을 전해들은 날 스웨덴 한림원과의 일문일답에서 “한국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데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에 “나는 내가 매우 가깝게 느끼고 있는 한국문학과 함께 자랐다고 말할 수 있다”며 “이 소식이 한국문학 독자들과 내 친구 작가들에게도 좋은 일이 되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K-문학 부흥에 485억 원 지원
K-문학이 이뤄내고 만들어갈 성취는 작가들이 가진 역량에서 나온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국가적인 지원이다. ‘가디언’은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한류의 성공은 당연히 각 분야에서 노력한 사람들이 이뤄낸 결과지만 정부 역시 민간이 창의력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한류를 확산하는 데 간접적으로 지원해왔다”고 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영화진흥위원회 등 공공기관과 정부 지원을 받는 대한민국예술원,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을 예로 들었다.
2025년도 예산안을 보면 문학 분야 진흥을 위한 예산은 2024년도 예산안 대비 7.4% 늘어난 485억 원이다. 이번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중요성이 더 강조되고 있는 번역 분야와 관련해 한국문학번역원의 한국문학번역출판 지원사업 예산을 31억 2000만 원으로 편성해 2024년도 대비 34.5% 늘렸다. K-문학 해외 소개·홍보 관련 예산도 11% 증액된 45억 4000만 원으로 편성했다.
K-문학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번역의 중요성은 계속해 강조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한국문학평론가협회장인 오형엽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말을 빌려 “한강 작가의 수상은 활력 넘치는 한국의 대중문화에 익숙한 전 세계 독자들에게 한국문학을 번역해 알리기 위한 오랜 노력의 결과”라고 평가했다. 문체부에 따르면 한 작가의 작품만 해도 한국문학번역원을 통해 28개 언어로 번역되고 76종이 책으로 출간됐다.
한국문학번역원의 주요 사업을 살펴보면 한국문학 작품을 출간하고자 하는 해외출판사를 대상으로 출판비용을 지원하는 해외출판사 번역출판 지원사업이 있다. 이 사업은 한국문학 해외진출 활성화 플랫폼 ‘KLWAVE(klwave.or.kr)’를 통해 이뤄진다. KLWAVE는 한국문학 번역·출판·교류에 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출판사, 번역가는 물론 기관, 편집자, 일반 이용자도 가입할 수 있는 공간이다.
국립한국문학관도 추진 5년 만에 착공
문체부의 2025년도 예산안에는 K-문학을 연구하고 집중 조명하는 한국문학 비평 및 담론 형성 사업도 포함돼 있다. 문학나눔 도서보급 사업 등을 통해 우수한 한국문학 도서가 확산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문학계의 염원이던 국립한국문학관도 착공에 들어갔다. 5월 20일 서울 은평구 부지에서 첫 삽을 뜬 문학관은 2026년 하반기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19년 문학관 건립 추진 이후 5년 만에 공사가 시작된 것이다. 연면적 1만 4993㎡(약 4500평) 규모로 지어질 문학관에는 K-문학의 과거·현재·미래를 담은 전시실과 교육·체험 공간, 수장고 등이 들어선다.
문체부는 지난 4월과 5월 다섯 차례에 걸쳐 문학·번역 관계자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서는 문학의 다양성 증진을 위해 문예지·비평지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방안과 청년 작가 문예지·동인지 발간을 지원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문학에 대한 국내외 수요를 촉진하는 ‘(가칭)대한민국 문학축제’도 개최하고 각 지역에 있는 문학관과 협력한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함께 논의됐다.
출판 생태계 활성화 집중 지원
문제는 K-문학의 성장세와 달리 침체돼 있는 출판 생태계다. 문체부의 ‘2023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 성인들이 1년에 읽는 책은 평균 네 권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독서문화를 확산하고 출판 생태계를 지원하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2025년도 예산안에서 출판 생태계 강화와 관련된 예산은 총 460억 원으로 2024년도에 비해 31억 원 늘어났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 주재로 3월부터 7월까지 다섯 차례 열린 출판·서점계 간담회의 제안사항을 반영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131억 원을 들여 도서 보급·나눔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독서 기반 지역 활성화 사업에 7억 원, 디지털 독서 확산 지원에 3억 원을 투자하는 등 책 읽기 수요를 창출하는 데 32억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2024년도보다 10억 원 늘어난 수치다. 새로 시작되는 사업도 있다. 범출판계 책문화 캠페인 ‘책 읽는 대한민국’ 진행에 10억 원을 사용한다.
지역·소규모 서점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도 마련됐다. 한 작가 역시 서울에서 작은 규모의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지만 대다수 독립서점은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이들을 위해 권역별 선도서점을 육성하고 디지털 도서 물류를 지원하는 등의 사업이 진행될 계획이다.
마침 한 작가의 수상 소식이 알려진 다음 날인 10월 11일은 제38회 ‘책의 날’이었다. 유 장관은 축사를 통해 “한국문학이 세계문학 중심으로 인식되고 있는 만큼 문학 작가들이 마음놓고 창작하고 한국문학이 해외 독자에게 사랑받을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또 “이런 계기가 주어졌을 때 이 분야가 더 힘을 받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라며 “88개국에 나가 있는 세종학당을 비롯해 한국문화원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우리 문학을 알릴 수 있는 행사를 준비하겠다”고 덧붙였다.
김효정 기자
박스기사
서점가 한강 신드롬
노벨상 발표 엿새 만에 한강 작품 100만 부 판매
10월 10일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알려진 지 엿새 만에 한 작가의 책이 100만 부 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10월 16일 예스24, 교보문고, 알라딘 등 주요 서점 3개사에 따르면 한 작가의 책은 이날 오전 9시를 기준으로 종이책만 103만 2000부가 판매됐다. 이들 서점 3개사의 시장 점유율은 90%에 가깝다.
전자책도 7만 부 이상 팔린 것으로 잠정 집계돼 종이책과 전자책을 합하면 110만 부가 판매된 것으로 보인다. 한 작가의 책 중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가 많이 팔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신드롬은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알려진 당일부터 시작됐다. 10월 10일 주요 서점 누리집이 마비된 데 이어 반나절 만에 책 13만 부가 팔렸다. 엿새 만에 100만 부가 팔린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출판계는 서점·출판계가 덩달아 활기를 되찾고 있어 출판 생태계 전체에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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