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을수록 단단해진다 고창읍성 답성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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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와 대나무 숲이 일품인 전북 고창읍성은 조선 단종 때인 1453년 계유년(癸酉年)에 축성했다고 성벽에 새겨져 있다. 축성연대를 문헌을 통해 밝혀낸 이는 고창 태생의 김녕만 씨다. 그 공로로 상을 받은 것이 1969년, 그의 나이 20세 때다. 김 씨는 이 공로로 받은 상금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진작가가 됐다.
자연석으로 쌓은 고창읍성을 돌다보면 축성할 때 다양한 크기의 바위를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어느 것도 똑같은 크기의 돌이 없이 각양각색이다. 축성 당시 제주도(島)를 비롯해 전라도 전 지역 19개 군과 현에서 동원된 인력들이 각자 돌을 가져온 것으로 전한다. 그중에는 당시 지천으로 널려 있던 고인돌도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고인돌로 추정되는 길고 납작하게 손질된 탁자형 돌들이 거칠게 다듬은 자연석과 함께 성벽 가운데서 단단하게 버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고창읍성은 둘레 1684m, 높이 4~6m, 면적 16만 5858㎡이며 동·서·북의 3문과 성벽방어를 위해 돌출된 치(雉) 6곳 등 방어시설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돌로 쌓은 성은 사람들이 밟을수록 더 단단해진다. 고창읍성에서는 예부터 돌이나 곡식을 머리에 이고 성을 밟고 도는 ‘답성놀이’를 해왔다. 이 전통을 잇는 답성놀이는 매년 열리는데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리 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를 돌면 극락승천한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여인들은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돈 다음 성 입구에 그 돌을 쌓아뒀다. 이렇게 쌓인 돌은 유사시 전쟁도구로 쓰였다.
올해도 답성놀이가 포함된 제51회 고창모양성제가 열렸다. 10월 11일 ‘답성놀이’에 참여한 여성들이 색색의 한복을 차려입고 돌을 대신하는 상징물을 머리에 올린 채 고창읍성 위를 줄지어 걷고 있다.
강형원
1963년 한국에서 태어나 197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이민했다. UCLA를 졸업한 뒤 LA타임스, AP통신, 백악관 사진부, 로이터통신 등에서 33년간 사진기자로 근무했고 언론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퓰리처상을 2회 수상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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