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디자인이 뭔지도 몰랐어요” 5년 땀으로 만든 기적 25년 만의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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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금메달 김채환 선수
9월 10~15일 프랑스 리옹에서 열린 제47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WorldSkills Lyon 2024)에서 우리나라 선수단이 종합 2위를 달성하며 올해도 기술 강국의 면모를 세계에 알렸다. 국제기능올림픽은 세계 각국의 만 17~22세 청년들이 직업 기능을 겨루는 대회로 2년마다 열린다. 이번 대회에는 72개국, 1381명의 선수가 참가해 산업기계 등 62개 직종에서 기량을 겨뤘다.
우리나라는 49개 직종에 57명의 국가대표 선수가 출전해 금메달 10개, 은메달 13개, 동메달 9개 등 43개 직종에서 메달을 수확했다. 금메달은 제조기술 및 공학 분야인 CNC선반, 용접, 산업제어, 모바일로보틱스, 적층제조, 로봇시스템통합 직종에서 나왔다. 이번 대회 신규 종목인 로봇시스템통합을 비롯해 서비스 분야의 피부미용 직종, 예술·패션 분야의 의상디자인과 그래픽디자인 직종에서도 금메달을 보탰다.
특히 그래픽디자인 직종에서 금메달이 나온 건 역대 두 번째로 1999년 캐나다 몬트리올 대회 이후 25년 만이다. 2007년 은메달 이후로는 17년 만에 나온 메달이다. 오랫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던 그래픽디자인 직종에서 돌풍을 일으킨 주인공 김채환(20) 선수를 만났다. 김 씨는 2023년 두 번의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에 오르며 태극마크를 달았고 32개국에서 출전한 이번 대회 그래픽디자인 직종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금메달이 확정된 순간 어땠나?
1년 전 국가대표 선수촌에 입소하는 날 메모장에 ‘17년 만에 메달, 25년 만에 금메달! 그래픽디자인 대한민국 새 역사를 쓰자’라고 썼다. 그때는 욕심이라고도 생각했는데 목표를 이루고 나니 정말 기뻐서 9월 15일 열린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받고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를 질렀다. ‘정말 해냈다!’, ‘금메달이다!’ 이런 벅찬 감정을 참지 않고 표현했던 것 같다.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은 느낌이겠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미술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조금이나마 빨리 취업해 어머니를 돕고 싶다는 생각에 구미전자공고에 진학했다. 미술 시간에 내가 그림 그리는 걸 본 선생님이 아이디어가 좋다며 그래픽디자인 동아리 가입을 권유했다. 내가 좋아하는 미술과는 달랐지만 프로그램 툴을 만지며 색을 칠하고 도형을 그리고 묘사하는 게 흥미로웠다. 그래픽디자인을 시작한 내게 미술 선생님은 국제기능올림픽이라는 큰 무대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국가대표에 도전하라고 하셨다. 꿈을 포기하고 취업을 목적으로 들어간 학교에서 다시 예술과 관련된 꿈을 펼칠 기회가 왔다. 그때부터 5년간 이 대회를 목표로 달려왔다. 그동안의 훈련과 노력을 금메달로 보상받은 기분이다.
그래픽디자인 전공이 아닌데 학원에 다니거나 전문 교육을 받은 건가?
처음부터 그래픽디자인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아니었고 학교에서 따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학원에 다니지도 않았다. 그래픽디자인 동아리 가입을 권유한 미술 선생님이 고등학교 3년 내내 지도해주셨다. 필요한 거나 부족한 건 스스로 찾고 끊임없이 연습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 기반 없이 진짜 스스로 노력해서 딴 메달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
국가대표 선발과 훈련과정은 어땠나?
전국대회 우승자 네 명이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해 1등한 사람이 국제기능올림픽에 참가하는 국가대표가 된다. 이를 위해 도대회부터 전국대회, 국가대표 선발전까지 열심히 했다. 2023년 국가대표로 선발된 이후부터는 인천 부평구에 있는 국가대표 합동 훈련소에 입소해 컴퓨터를 사용하는 다른 직종 선수들과 함께 훈련했다. 국제기능올림픽에서 그래픽디자인 직종은 당일 공개되는 주제에 맞는 디자인을 하고 인쇄공정에 맞게끔 데이터파일을 처리하는 능력을 겨룬다. 주제가 기업에 관련된 거라면 기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업의 상징(CI·Corporate Identity)이나 브랜드의 상징(BI·Brand Identity), 홍보영상 등을 만드는 식이다. 주제에 맞는 패키지 디자인이나 편집디자인, 모션그래픽, 사용자경험(UX)·사용자인터페이스(UI) 등도 만든다. 어떤 주제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매일 새로운 주제에 따라 포스터를 만들지, 패키지를 만들지 구상하고 디자인해서 데이터파일을 처리하는 과정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훈련과정이 힘들진 않았나?
장시간 컴퓨터 앞에 앉아 똑같은 작업을 매일 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메달을 따는 상상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진짜 힘들 땐 부모님과 통화하며 힘을 냈다. 국제지도위원인 이경규 위원도 큰 힘이 돼줬다. 프로그램 조작 능력에 비해 디자인 역량이 부족한 나를 여러 국제대회에 출전시켜 각국 선수들의 작품을 보며 디자인에 대한 안목을 높일 수 있게 해줬다. 또 대회에서 예상치 못한 주제가 나올 것에 대비해 매일 새로운 주제를 제시하고 부족한 부분을 조언해줬다.
국제기능올림픽 경기는 어떻게 치러지나?
경기는 총 4일간 치른다. 주제는 당일 공개한다. 미리 주제에 맞게 디자인을 구상해오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경기 당일 주제를 받고 10분 동안 디자인을 구상한 뒤 작업을 시작한다. 디자인을 완벽하게 인쇄할 수 있도록 데이터파일을 처리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렇게 첫째 날 6시간, 둘째 날 6시간, 셋째 날 6시간, 마지막 날 4시간 등 총 22시간 동안 경기를 치른 뒤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한 사람이 금메달의 주인공이 된다.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비결이라면?
사실 디자인엔 자신이 없었다. 디자인은 아무리 노력해도 발전하는 데 한계가 있더라. 그래서 인쇄기술을 익히는 데 더욱 시간을 쏟았다. 사실 평가를 할 때도 디자인은 심사위원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데 인쇄기술은 평가 기준이 명확하다. 그래픽디자인은 아무리 디자인을 잘해도 인쇄기술이 좋지 않으면 디자인이 완벽하게 나올 수 없다. 그래서 심사 때 인쇄기술인 데이터파일 처리 능력을 중요하게 보는데 이 부분에 대한 나의 훈련과 축적된 기술이 좋은 평가를 받는데 큰 힘이 됐다. 1년간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채점표를 만들었던 훈련 방식도 도움이 됐다. 심사위원은 이런 걸 평가하겠구나 하는 눈이 생기면서 실수도 줄이고 빠르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막강한 라이벌과의 대결 끝에 얻은 메달이기도 하다.
2023년 11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아시아기능경기대회(WorldSkills Asia)에서 대만의 지안카이 선수를 처음 만나고 깜짝 놀랐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라이벌로 여겼던 선수와 닮은 외모에 작업 스타일까지 비슷해 운명적으로 라이벌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두 번의 맞대결에서 한 번씩 승패를 맛본 뒤 전략을 바꿨다. 지안카이 선수는 디자인 능력이 뛰어나지만 인쇄기술은 나보다 약했다. 지안카이 선수의 부족한 부분을 역으로 내 무기로 삼기로 하고 더 열심히 훈련한 결과 좋은 성적을 거뒀다.
이번 대회를 마친 소감은?
지난 5년간 이번 대회를 위해 달려왔다. 그동안의 훈련 과정이 그래픽디자인 능력만 키운 건 아닌 것 같다. 스스로 고민하고 좌절하고 극복하면서 성장하고 삶의 방향성을 찾았다.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고 할까. 앞으로 무엇을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확실한 꿈과 목표를 찾을 수 있는 대회였다.
앞으로의 목표는?
2026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리는 국제기능올림픽에서 부지도위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내가 해온 훈련과 경험을 바탕으로 우선 다음 대회를 준비하는 선수를 돕고 싶다. 더 나아가 그래픽디자인을 더 전문적으로 공부해서 같은 길을 걸어가는 후배들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 내가 새로운 꿈을 꾸는 기회를 얻은 것처럼 누군가에게 기회를 주는 지도자로 성장하고 싶다.
강정미 기자
*국제기능올림픽 메달리스트 혜택은?
입상자에 상금과 훈포장 은퇴까지 계속종사장려금도
제47회 프랑스 리옹 국제기능올림픽대회는 9월 10일(현지시간) 개회식을 시작으로 9월 15일 시상식과 폐회식으로 막을 내렸다. 이번 대회 개회식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깜짝 방문해 선수단을 격려하고 공식 개막을 선언했다.
이번 대회에 우리나라는 49개 직종에 57명의 국가대표 선수가 출전했다. 이들은 지방 및 전국기능경기대회와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해 최종 선발됐다. 우리나라 선수단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10개, 은메달 13개, 동메달 9개, 우수 11개의 성적을 거뒀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의 공식 지표를 바탕으로 한 종합점수는 232점으로 중국(240점)에 이어 2위다. 3~5위엔 대만, 스위스, 프랑스가 각각 자리했다.
이번 대회 입상자에게는 금메달 6720만 원, 은메달 5600만 원, 동메달 3920만 원의 상금과 훈포장이 수여된다. 또 국가기술자격 산업기사 자격시험 면제, 산업기능요원 복무, 은퇴 시까지 계속종사장려금(매년 505만~1200만 원) 지급 등의 혜택도 주어진다. 다음 대회는 2026년 중국 상하이, 2028년 일본 아이치현에서 각각 개최된다.
*그래픽디자인 직종
(Graphic Design Technology)
일러스트레이션의 기능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창작활동이다.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수단·선전 대상에 따라 효과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조형화하는 것을 말한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
(WorldSkills)
제2차 세계대전 후 실의에 빠진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직업기능대회로 2년마다 열린다. 1950년 스페인과 포르투갈 청소년 직업기능 대표선수 간 친선경기가 시초다. 대회를 주관하는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가 1954년 설립됐고, 한국조직위원회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이 맡고 있다. 우리나라는 1967년 스페인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해 양복과 제화 직종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후로 31회 출전해 종합우승 19회를 달성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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