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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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윤석열 대통령은 2019년 검찰총장에 취임하면서 취임사에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에 따라 모든 국민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중시하고 “공정한 경쟁질서의 확립”을 우선 과제로 삼았다. 헌법의 핵심 가치는 “자유와 평등을 조화시키는 정의”라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질서의 본질”을 지키는 데 법 집행의 역량을 집중시킬 것을 강조했다. 법 집행은 국가가 행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내용의 상당 부분이 국정철학에 반영됐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국정철학 ‘자유’는 대통령이 평소 갈고 닦아온 사유와 한국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경험적 비판에서 나온 산출물이다.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질서가 헌법체제의 두 축인데 전자는 ‘적대세력에 대한 방어’ 차원에서 주로 이용됐고 후자는 ‘경제적 강자의 농단’에 의해 시장의 활력이 상실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를 바로잡기 위해 자유를 재소환하고 있다. 자유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행함으로써 잘못된 관행을 벗어나 ‘참다운 자유사회’를 구현하자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이 비전은 국민을 우선시하고 모든 국민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며 사생활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풍요와 희망을 제공하는 시장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정한 경쟁질서와 법치주의를 확립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의 본래 모습을 현실화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2020년 8월 신임 검사 당부 연설에서 “자유민주주의는 평등을 무시하고 자유만 중시하는 것이 아니며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를 의미한다고 설파했다.
이와 같은 윤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대해 일부 잘못된 평가가 있다. 대통령이 대학 시절 신자유주의 주창자인 밀턴 프리드먼의 저서에 심취했다는 이유로 대통령을 자유방임 내지 자유지상주의자로 호도하고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윤 대통령이 판단할 사안이겠지만 지난 호 글에서 지적한 대로 대통령의 자유 개념과 자유주의 이념은 사회적 자유주의(근대 자유주의)에 속한다. 대통령이 되기 이전과 이후에 직접 작성했다고 알려진 연설문에서는 적어도 그렇게 나타나고 있다.
자유주의가 서구 산업사회에서 지배적인 정치적 교의로 등장한 것은 19세기 초지만 그 연원은 16세기 종교개혁과 르네상스의 인본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17세기 과학혁명과 18세기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19세기에 ‘자유주의(liberalism)’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됐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300여 년에 걸쳐 발전해왔고 현재도 변화하고 있는 역사적 이념 운동이다. 서구 근대 시민사회의 출현과 더불어 전개된 자유주의는 다양하고 경쟁적인 이론들을 포괄하고 있다. 자유주의는 봉건적 특권과 절대주의 국가권력을 비판하고 입헌주의와 대의제 정부를 주창하며 등장했다.
특히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으로 인한 신흥 자본가계급(중산층)의 등장과 함께 그들의 열망이 반영돼 자유주의는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와 결합하게 됐다. 이른바 고전적 자유주의는 아사의 방지와 전쟁 수행 및 사회계약(자연권 보호; 생명, 자유, 재산권)을 보장하기 위한 야경국가의 역할, 즉 국가의 최소 기능을 제외한 모든 형태의 정부 개입을 반대했다. 이 자유주의는 국가를 ‘필요악’으로 간주하고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최우선 가치로 상정하는 개인주의를 신봉한다. 이는 자유에 대한 불간섭주의로 소극적 자유를 의미한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고전적 자유주의는 사회적 자유주의로부터 도전받았다. 이들은 산업자본주의가 대중을 시장의 변덕스러움에 노출시키고 새로운 형태의 부정의를 양산했다고 비판했다.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와 자유의 위해원칙(harm principle: 남의 자유를 해치지 않을 책임)에 영향을 받은 사회적 자유주의자들은 적극적 자유 개념을 주장했다. 자유는 혼자 남겨져 굶어 죽을 자유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토머스 힐 그린은 “개인과 사회는 공동선을 위한 동반자적 정치 공동체로서 각 개인은 자유와 동시에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진정한 자유는 단순히 욕구 충족에 있는 게 아니고 다른 모든 사람과 함께 자기계발과 자아실현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국가는 공동이익 및 개인이 최선을 이룰 수 있도록, 특히 건강과 교육 분야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사회적 자유주의는 현대 복지국가 출현에 큰 영향을 줬으며 국가의 개입 정도에 따라 자유민주국가와 사회민주국가로 구분한다. 1942년 영국의 ‘베버리지 보고서’는 개인의 존재를 위협하는 사회악으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5대 악(결핍, 무지, 태만, 불결, 질병)을 지목했다. 케인즈의 거시경제학은 정부가 수요관리에 개입하는 규제 자본주의를 통해서 성장과 번영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함으로써 고전경제학에 도전했다. 존 롤스는 사회정의론을 통해 가장 적은 이익을 가진 사람이 최대 수혜를 받도록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조정해야 한다는 평등기회원칙을 제시했다.
케인스 혁명으로 정부의 개입이 확대됐지만 1970년대 경제위기가 닥치자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철저한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옹호하는 신자유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이론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영국의 대처리즘과 미국의 레이거노믹스로 대표되고 1989년 워싱턴컨센서스에 의해 절정에 달했다. 이들은 국가는 ‘죽은 손’이라며 비규제 자유시장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에 이르러 시장실패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이 다시 대두했다.
이상의 논거를 통해 윤 대통령의 자유 패러다임은 사회적 자유주의 전통과 맥락을 같이함을 알 수 있다. 사회적 자유주의는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의 재발견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한국정치학회장을 역임했으며 통일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연세대 행정대학원장, 국가관리연구원장을 거쳤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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