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청소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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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엄마는 청소가 취미였다. 하루에 세 번 걸레와 빗자루를 들고 ‘탈탈반질’ 청소를 하시고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이불을 죄다 걷어 펄썩펄썩 먼지를 털어내셨다. 그리고는 마룻바닥과 전축 위의 먼지를 현미경 들여다보듯 세심히 관찰하고 나서 나노 분자 크기만큼의 먼지라도 보이면 또 마른 걸레를 손에 들었다.
엄마는 딸 방도 가차 없이 쳐들어와 구석구석 닦아내셨고 속옷까지 빨아 다림질해 착착 개켜 각 잡아 서랍에 넣어주셨다. 부엌살림은 또 어찌나 깔끔 단정했는지 불고기 재운 것이라든가 파 쫑쫑 썰어 날짜까지 적어 냉동 칸에 쟁여두셨고 싱크대 주변과 욕실 세면대에도 물 한 방울 자국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언니와 나는 엄마가 외출에서 돌아오실 즈음엔 초비상이었다. 외출에서 돌아오시면 늘 어질러진 집안 꼴을 보고는 혼을 내셨기에 어린 자매들은 엄마가 들어오시기 전 후다닥 정리를 하고 엄마의 눈이 돼 먼지를 살폈더랬다.
조금 컸을 때였던가. 하루 세 번의 청소는 너무 지나치다고 엄마에게 정중히 건의했다. 엄마는 잠시 생각하시더니 “그래도 되는 거니? 그럴까….” 그 이후 엄마는 청소를 하루에 한 번으로 줄였으며 엄마는 청소로부터 해방됐고 딸은 청소집착증 엄마로부터 해방됐다.
결혼을 했다. 남편 집 분위기는 우리 집과는 영 딴판이었다. 물건의 제자리는 없었고 설거지는 대충 편할 때 했으며 청소는 이따금씩의 행사였다. 그런데 시댁식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화목했다. 남편은 정돈이라고는 필요성을 못 느끼는 청소 무관심자였고 나는 청소 강박증 집안에서 편편한 가정으로 편입과정에서 혼돈을 겪었다.
이제 정리정돈의 달인 친정엄마는 요양원에서 투병 중이고 결혼 28년 동안 쌓이고 묵힌 나의 살림살이는 도저히 내 힘으로는 정리불가 상태. 일하고 와서 쓸고 닦고 청소하기엔 나도 너무 나이 들어 기력이 달렸다. 집은 점점 아수라장이 돼 집인지 창고인지 구별이 안돼 잠을 자도 쉬어도 머릿속이 한 짐이었다.
새해 결심은 대청소였다. 하루면 될 줄 알았던 것이 꼬박 4박 5일이 걸렸다. 버리고 또 버렸다. 아까워서, 언젠가 쓸 것 같아 못 버리고 이고지고 다녔던 잡동사니들 한 트럭은 내다 버렸다. 박스 테이프만 10개가 넘었고 까만 티셔츠는 라벨도 안뗀 것이 수두룩, 유통기한 지난 화장품과 물욕으로 사재기한 소품들과 먹지도 않을 각종 건강기능식품들, 까만 봉지에 얼려둔 냉동식품들이 세상 속으로 굴러나오며 나의 발등을 찍었다. 내 속의 탐욕을 목도하는 것은 쓰라렸다.
청소 대장정을 마치고나니 집이 좋아졌다. 집이 넓어졌다. 작은 방 구석에 있던 책상을 거실로 옮겼다. 1년째 미루고 있던 집필이 드디어 이뤄질 것 같다. 아침에 커튼을 열고 밖을 바라보니 베란다 짐으로 가려져 있던 아파트 숲이 보인다. 이제 아침이면 커피를 내리고 클래식 라디오를 켜고 책상에 앉는다. 비로소 숨이 쉬어진다.
새해는 운세를 보나마나 운수대통이다. 청소로부터 시작되는 2023년, 시작이 좋다.
SBS 아나운서 출신으로 최초의 여성 프로야구 캐스터다. 현재는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산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제주 무모한집을 소개하며 뉴미디어를 향해 순항 중인 열정의 소유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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