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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바꾼 명절에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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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다. 가지각색의 신발들로 현관이 꽉 차고 간만에 모인 가족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는, 어른들은 작년보다 훌쩍 자란 조카들에게 세상에 너 많이 컸구나 하고 자기가 얼마나 컸는지 알지 못하는 어린이들은 쭈뼛거리며 부모 뒤에 숨어 어른들을 낯설어 하는. 주방에선 끊임없이 뭔가를 지지고 삶고 데우느라 고소한 냄새를 굴뚝의 연기처럼 뿜어내고 아무도 보지 않는 TV에선 이름 모를 트로트 가수가 익숙한 가락을 구성지게 뽑아내며 왁자지껄함을 더한다.

 
9남매인 아빠와 4남매인 엄마 덕분에 나의 명절도 꽤 북적북적했지만 몇 해 전 명절은 각자의 식구들끼리 편하게 보내기로 친척 어른들이 합의를 본 이후 이제 추석이나 설은 우리 네 식구의 나른한 휴가가 됐다.


나는 우리 네 식구가 보내는 단출한 명절이 좋다. 서울에서 방송 일을 하는 나와 동생이 고향집에 자주 갈 수 없어서 더 그렇다. 명절에도 방송은 멈추지 않으므로 사나흘쯤 되는 명절휴일 중 길어야 이틀을 쉬곤 하는데 그 짧은 시간을 먼 친척집으로 이동하느라 할애하는 건 아무래도 좀 아깝다. 그런데 작년 명절은 대식구가 모여 지냈던 옛날이 좀 그리웠다. 동생과 내가 일 때문에 바빠 고향에 내려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명절마다 떠들썩해지는 시골 동네에서 엄마 아빠 둘이서만 조용히 명절을 쇠는 게 그렇게 마음에 걸렸다. 아쉽고 속상한 마음을 영상통화로 애써 달랜 지 얼마 안돼 엄마한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딸, 갑자기 박이랑 김이 온다는데 걔네 뭐 좋아하냐? 명절에 올 사람이 없어서 음식 아무것도 준비 안해놨는데 이거 야단났네.”


9년째 룸메이트인 박과 열 살 때부터 단짝이었던 김은 가족 같은 내 친구들이다. 명절마다 우리 집에 와서 술 한잔 걸치고 가긴 했지만 내가 없을 때도 기꺼이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기로 한 건 좀 뜻밖이었다. 얼른 전화를 걸어 고맙다고 이야기했더니 친구들은 픽 웃으며 “너라면 우리 집에 안오겠느냐.”고 살가운 핀잔을 했다.


엄마와 아빠와 박과 김은 식탁에 둘러앉아 새벽 늦도록 이야기를 하며 아빠가 큰맘 먹고 꺼낸 담금주에 기분 좋게 취했다. 엄마 아빠는 이제 너희들에게 시댁이 생겨 예전처럼 명절에 못오겠구나 하며 아쉬워했다. 박과 김은 명랑하게 대답했다. “왜 안와요 사위들 데리고 와야죠.” 그 말에 엄마는 신소리 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그래도 만약 온다면 오늘처럼 갑자기 오지 말고 꼭 며칠 전에 말해달라고 당부했다. 친구들은 나에게 그 말을 전하면서 안그래도 손이 큰 우리 엄마가 동네 잔칫상을 차리는 건 아닐까 겁난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번 설은 방송 일을 한 후 처음으로 명절휴일을 다 쉴 수 있게 됐다. 그 소식을 알렸더니 엄마 아빠는 잊지 말고 박과 김의 집에 꼭 인사드리러 가라고 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못갔느냐며. 이번 설엔 가족들을 많이 만날 생각에 마음이 풍성하다. 박과 김의 본가 현관에 내 신발을 벗어놓는 상상을 하니 벌써부터 나를 반기는 또 다른 내 부모의 인사와 안부가 들리는 것 같다.



강이슬_ ‘SNL코리아’ ‘인생술집’ ‘놀라운 토요일’ 등 TV 프로그램에서 근면하게 일하며 소소하게 버는 방송작가다. 카카오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안 느끼한 산문집>으로 대상을 받고 <새드엔딩은 없다> <미래를 구하러 온 초보인간> 등을 펴냈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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