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는 토끼의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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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하다 한눈 판 토끼를 위한 변명
유명한 이솝우화 중에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이야기가 있다. 토끼와 거북이가 산속에서 경주를 했다. 발이 빠른 토끼는 거북이를 순식간에 앞섰다. 뒤를 돌아보자 한참 뒤처진 거북이가 느릿느릿 기어오고 있었다. 안심한 토끼는 당근밭에 가서 당근도 먹고 이러저리 뛰어다니며 놀다가 나무 그늘 아래에서 낮잠을 잤다. 잠을 늘어지게 자고 나서 깨어보니 어느새 거북이가 목적지에 먼저 도달해 있었다. 이 이야기는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더라도 자만해서는 안되며 끈기있게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라는 교훈으로 많이 인용됐다.
이솝우화에는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와 비슷한 이야기가 또 있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다. 부지런한 개미는 여름 내내 열심히 일해 겨울을 대비해 식량을 충분히 비축해뒀다. 그 덕분에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반면 여름 내내 일은 하지 않고 놀기만 한 베짱이는 겨울이 되자 추위와 배고픔에 떨어야만 했다. 근면하고 부지런하게 사는 미덕을 강조한 우화다.
그렇다면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는 지금 우리 시대에도 적용 가능한 교훈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 우화는 출발부터 잘못됐다. 토끼와 거북이는 동일한 종이 아니다. 서식지도 육지와 바다로 다르다. 사는 구역이 다르고 걷는 속도가 다른 두 동물을 한 가지 잣대에 맞춰 경주를 시키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토끼에게는 토끼의 길이 있고 거북이에게는 거북이의 길이 있다. 토끼와 거북이는 서로 갈 길이 다를 뿐이지 누구의 길이 옳고 누구의 길이 잘못됐다고 할 수 없다. 다른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다른 것을 잘못됐다고 하는 이분법적인 사고야말로 진짜 틀린 것이다.
똑같이 출발했으나 그 길이 자기한테 맞는 길이라고 확신이 들면 계속 가면 된다. 그러나 가다가 자신의 길인지 아닌지 확신이 들지 않을 때는 다른 길도 찾아볼 수 있다. 당근밭에 가서 당근을 먹는 즐거움도 누려보고 피곤하면 나무 그늘에서 쉬면서 낮잠도 자보는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다른 길을 간 사람들에 의해 풍부해졌다. 세계를 휩쓸고 있는 K-컬처도 모두 기존 틀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만들었다. 붉은악마도, <기생충>도, <오징어 게임>도, 방탄소년단(BTS)도 모두 그렇다. 거북이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앞만 보고 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토끼처럼 사방팔방 쑤시고 다닌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백문이불여일견’이다. 100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 그 다음 말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백견이불여일행’이다. 백 번 보는 것보다 한 번 경험해보는 것이 더 낫다. 당근에 대한 얘기를 듣기만 하는 것보다는 직접 보는 것이 더 낫고 단순히 보는 것보다는 먹어보는 것이 훨씬 더 생생하다. 당근에 대한 얘기를 듣기만 한 토끼는 당근을 직접 먹어본 토끼의 경험을 따를 수 없다. 당근을 먹고 낮잠을 잔다는 것은 관념이 아니라 실재다. 정해진 길만 따라서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서 행동한 것이다. 그럴 때에만 세상은 온전히 자기 것이 된다.
이솝우화가 동물을 예로 들어 교훈을 주고자 한 이유는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은 토끼처럼 게을러서는 안되고 거북이처럼 성실해야 성공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편견이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비행기로 갈 수도 있고 차를 운전해서 갈 수도 있으며 걸어갈 수도 있다. 방법의 선택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취향에 따라서, 형편에 따라서 선택하면 된다. 목적지에 먼저 도착했다고 해서 꼭 성공했다고도 볼 수 없다.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주변 한번 둘러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간 인생을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해서 목적지에 도달하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 자기만의 스토리가 있는 삶, 그 삶이 성공한 삶이다.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때론 두렵고 고생스럽더라도 그 길을 스스로 선택으로 가는 것 자체가 인생이다. 남들이 가니까 나도 간다는 식으로 인생을 살면 자기의 스토리를 쓸 수 없다. 그 길을 가는 것이 과연 옳은지, 앞만 보고 직선코스로 나아가는 걸음걸이가 진정 값진 삶인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이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그래야 남들과 똑같은 진부한 결론에 도달하더라도 자족할 수 있고 자족하면 긍정하게 된다.
고 이어령 장관의 <젊음의 탄생>에는 개미와 베짱이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이 실려 있다.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가 나라마다 다른 결론을 내린다는 것이다. 일본판 개미와 배짱이의 결말은 여름 내내 뼈빠지게 일만 하던 개미가 겨울에 과로사한다고 돼 있다. 미국판에서는 개미들이 베짱이의 연주를 듣다가 심취해 겨울에 연주회를 열어줬고 예술가로 성공한 베짱이는 큰 부자가 된다. 옛 소련판 이야기도 등장한다. 겨울이 돼 배가 고픈 베짱이가 개미집 앞에서 구걸을 하자 공평하게 나눠 먹다가 결국 모두 굶어죽는다. 같은 이야기라도 각 나라의 이념과 사상, 문화적 특징과 관습에 따라 다양한 결론이 나올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새해에는 토끼처럼 자신의 인생을 사는 거다. 걸어가다 심심하면 한눈도 팔고 피곤하면 낮잠도 자고 나비가 나타나면 함께 놀기도 하면서 사는 거다. 자신의 보폭으로 걸어가야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 세상은 그렇게 에너지가 펄펄 넘치는 사람들에 의해 바뀌어왔다. 우리가 바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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