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을 만드는 것은 비범함보다는 그 뒤에 숨은 평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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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영화 종횡무진하는 정성화
도마 안중근 의사가 문화계에 소환돼 활약 중이다. 역사 속 인물이 이렇게 한 시기에 다방면에 등장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일제강점기 안중근은 제국주의로 상징되는 이토 히로부미의 저격을 앞두고 인간으로서 대의와 윤리 사이를 갈등했다. 천주교인으로서 신앙심과 속세 인간으로서 증오심이 격렬히 부딪쳤다. 소설가 김훈은 순수한 열정을 가진 청년 안중근을 글로 직조해 <하얼빈>에 담았다. <하얼빈>은 출간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안중근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2009년 제작된 뮤지컬 <영웅>은 최근 아홉 번째 시즌을 시작했다. 개인이 아닌 민족을 택한 독립투사들과 동지의 죽음에 깊이 슬퍼하는 안중근이 애국적 사명감과 현실적 생존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탄탄하게 재현되며 <영웅>은 한국 창작 뮤지컬 역사에 획을 그었다.
뮤지컬 <영웅>은 동명의 영화로도 재탄생했다. 뮤지컬과 영화 모두 안중근 역할은 배우 정성화가 맡았다. <해운대> <국제시장> 등으로 국내 최초 ‘쌍천만 감독’이란 수식어를 얻은 윤제균 감독의 선택이다. 윤 감독은 영화 <영웅> 제작을 결심한 직후부터 정성화를 염두에 뒀다. 뮤지컬로 10년 이상 안중근으로 살아온 정성화를 대체할 배우는 없다고 판단해서다. 정성화는 누구보다 안중근을 깊이 들여다보고 표현하려 했다. 오랜 기간 한 인물을 보여주며 연기는 더 깊어졌고 매번 새로운 모습을 담으려는 노력이 더해지며 그의 표현력은 정점에 올랐다.
“안중근 의사를 표현할 때 비범한 사람의 평범함을 꼭 보이게 해요. 그 사람이 이룬 결과를 보고 비범함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 사람의 행보를 중점적으로 보여주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안중근 의사는 어린 시절 사냥과 노는 걸 좋아했지만 그분이 읽은 책이나 지식수준, 철학, 신앙인으로서 자세 등을 봤을 때 상당히 차분한 면이 있어요. 그래서 최대한 담백하게 연기하려고 합니다.”
죽음 앞둔 안중근 표현 위해 14㎏ 감량
결연한 의지로 거사를 앞둔 인물이었지만 당시 안중근은 갓 서른 살을 넘긴 청년에 불과했다.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1년의 시간에 무수한 고뇌가 스쳤을 터. 깊은 고민에 잠긴 안중근을 표현하기 위해 정성화는 14㎏을 감량했다. 그에겐 딱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영화가 안중근의 모습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 살을 빼고 인물을 더욱 분석하며 두 인물은 영화 속에서 합치를 이뤄갔다. 비장함과 두려움, 결연함과 초연함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인물 자체가 주는 무게감이 상당해요. 사람들은 뮤지컬을 보러 와서 저에게 안중근 의사를 투영할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14년 동안 단 한 번도 만만하게 본 적이 없어요. 대충하려는 생각이 들 때면 관객에게 벌거벗어지는 기분이에요. 시즌마다 준비를 철저히 하는 편이죠. 다만 매번 사회적으로 재조명하는 기회가 있어왔어요. 예전에는 <안응칠 역사>
<안중근 평전> <동양평화론> 등을 봐왔지만 요즘은 <하얼빈>을 통해 보잖아요. 그런 다양한 면모를 확인하며 연기에 반영하기도 해요. 안중근 의사는 천주교 신자로서 누군가를 총으로 죽인다는 사실에 굉장한 갈등이 있었을 거예요. <하얼빈>에서 이 부분을 크게 조명했는데 공연 때 어떻게 반영할지 고민해봤어요.”
무리한 체중 감량으로 기력이 확 떨어지는 바람에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뮤지컬 <영웅> 공연 당시 안중근 의사가 사형당하기 전 2층 교수대에서 ‘장부가’를 부르며 고음을 내지를 때 정말 쓰러진 것. 다행히 사형대 포승줄에 손을 걸치며 관람객은 모른 채 지나갔고 무사히 커튼콜(공연이 끝난 후 출연진이 고객의 박수에 응하기 위해 무대 위로 올라와 최종인사를 하는 것)까지 마쳤지만 무대 뒤는 그야말로 난리였다.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이후 그 장면을 연기할 때면 몸이 반응하곤 한다.
한국 최초 라이브 뮤지컬 영화
<영웅>은 한국 최초 라이브 뮤지컬 영화다. 기존 뮤지컬 영화는 현장에서 증강현실(AR) 목소리와 배경음악을 같이 틀어 녹음한 후 스튜디오 녹음본을 입히기에 대사 도중 정제된 음향이 나오곤 한다. 이는 관객이 뮤지컬 영화에 거리감을 느끼는 요소로 작용했다. 반면 <영웅>은 공연과 같은 현장감을 선사하기 위해 70% 이상 현장의 배우 목소리를 생생하게 녹였다. 촬영 당시 마이크를 여러 개 차고 인이어(In-Ear)에 반주음악(MR)이 들어오게 한 다음 차후 MR와 인이어를 컴퓨터 기술로 제거하는 방식을 택했다. 관객의 몰입감이 한층 높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영화에는 뮤지컬에서 볼 수 없는 장면들도 투영됐다. 회령전투나 안중근과 검사의 대화 장면은 영화에서만 표현됐다. 안중근 모친 조마리아 여사가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를 부를 때 공연에서는 노래만 부른다. 반면 영화에서는 아들을 앞세우며 비장한 마음으로 “내 아들, 나의 사랑하는 도마야, 떠나갈 시간이 왔구나. 두려운 마음 달랠 길 없지만 큰 용기 내다오.”라고 덤덤히 부르는 가사와 모자의 추억장면이 스쳐가며 감정의 골을 더욱 깊게 해준다. 뮤지컬과는 또 다른 감정을 자아내는 묘미다.
뮤지컬 노래는 대사처럼 들리는 게 관건. 일반 노래는 가사가 부드럽게 전달돼야 하지만 뮤지컬은 가사를 짚어가며 강약을 조절해 불러야 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대한제국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원.한.다.며.” 정성화는 인터뷰 도중 ‘누가 죄인인가’ 한 소절을 들려줬는데 정확한 발음(딕션)으로 가사가 귀에 쏙쏙 박혔다. 오랜 시간 뮤지컬로 다져온 그의 내공이 느껴지는 지점이었다.
나에게 꼭 맞는 옷을 찾아서
티켓파워(공연, 영화 등에서 티켓이 팔려나가는 힘)를 자랑하는 뮤지컬 배우로 성장하기 전 정성화는 개그맨으로 연예인 생활을 시작했다. SBS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그는 당대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그룹 ‘틴틴파이브’ 멤버로 활동했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드라마 <카이스트>에서 사고뭉치 대학원생 역으로 호평받으며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자리했다. 학창시절부터 그토록 꿈꾸던 개그맨이 되고 연기까지 영역을 넓혔지만 정작 정성화의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다. 원하는 옷을 입었지만 맞지 않는 기분이랄까? 그러다 뮤지컬을 만났다. 첫 작품 <아이 러브 유>에서 남자1부터 남자15까지 배역명도 없이 존재감이 크지 않은 역할이었지만 그는 무대를 분주히 누볐다. 이때 함께 작품에 출연한 배우 남경주의 도움이 컸다.
“첫 뮤지컬에서 운이 좋았던 게 남경주 선배랑 작품을 했어요. 분장실을 같이 썼는데 제가 얼마나 신기했겠어요. 선배가 많은 걸 가르쳐주셨고 저는 스펀지처럼 쫙쫙 빨아들이려고 했죠. 한번은 ‘성화야, 네가 만약 치약공장 이사라면 치약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겠니’라고 물었어요. ‘당연히 많이 알겠죠’라고 했더니 ‘넌 연기자인데 그럼 연기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니’라고 되물으시더라고요. 할 말이 없었어요. 그동안 연기를 한다고 했는데 연기를 얼마나 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어요. 머뭇거리는 저를 보며 같이 공부해보자고 하셨어요. 이후 함께 멜리사 브루더의 <배우 수첩>, 우타 하겐의 <산연기> 등을 읽고 다른 배우들과 스터디 모임을 하며 노력했어요.”
치열한 과정이었다. 공연할 때는 더욱 공격적으로 매진했기에 남자1의 정성화는 점차 큰 배역을 꿰찼고 <미세스 다웃파이어> <레 미제라블> <맨 오브 라만차> <킹키부츠> 등 유명 작품의 주연배우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점차 꼭 맞는 옷을 찾은 듯했다.
“일련의 모든 과정은 인생에서 나에게 걸맞은 옷을 찾는 과정이었어요. 고등학생 시절부터 개그맨이 되고 싶었지만 막상 개그맨 사회에 들어오니 저한테는 맞지 않는 옷이란 걸 알게 됐어요. 도피하듯 군대에 다녀와서 맞닥뜨린 것이 드라마 <카이스트>였고요. 그마저도 괜찮은 줄 알았는데 여전히 맞지 않는 옷이었어요. 그러다 뮤지컬을 시작했는데 엄청 설레는 거예요. 연습실이나 공연장에 빨리 가고 싶고. 어떤 일이든 절실한 사람이 잘하겠지만 즐기는 사람까지 이길 순 없다고 생각해요. 제 모든 작업 중에 가장 즐긴 순간이 뮤지컬이었어요.”
그의 뮤지컬을 볼 때면 과거 개그맨으로서 이력이 전혀 떠오르지 않을 정도다. 정성화는 한국뮤지컬어워즈 남우주연상, 서울문화예술대상 뮤지컬 대상, 대구뮤지컬어워즈 남우신인상·올해의 스타상·올해의 뮤지컬 스타상 등을 휩쓸며 연기력과 티켓파워를 동시에 입증하는 주역이 됐다. 영화 <영웅> 역시 최근 관객 수 200만 명을 넘으며 극장가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마치 누군가 나에게 상을 준 것 같아요. 제 인생의 청사진을 놓고 봤을 때 뮤지컬은 본진 같은 존재지만 저도 나이를 먹고 무대에 서는 게 버거운 시기가 왔을 때 영화를 번갈아가며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면 무한한 영광일 거예요. 황정민 선배도 영화와 연극 무대를 오가잖아요. 영화 <영웅>
이 한국에서 통용될 수 있고 관객에게도 믿음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고요.”
고막고어자시(孤莫孤於自恃). “스스로 잘난 체하는 것보다 외로운 것은 없다”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이다. 작은 역할을 맡더라도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보다 내실을 다지겠다는 정성화의 다짐이기도 하다. 뮤지컬과 영화를 오가며 안중근 의사를 연기하는 동안 정성화는 안중근 의사로부터 많은 귀감을 얻었다. 배우로서 가슴속에 자신만의 영웅을 키워가는 시간이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를 보며 영웅의 불꽃을 피울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찾고 평범함 속 드러나지 않았던 비범함을 꺼내는 이들이 많아지길.
선수현 기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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