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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터’에서 ‘창신동 풍경’까지 박수근의 그림 속을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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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
주소 | 강원 양구군 양구읍 박수근로 265-15
문의 | (033)480-7228

녹음이 짙어지면 짙어지는 대로, 눈이 오면 오는 대로 계절마다 찾고 싶은 곳이 있다. ‘한반도의 중심’ 강원 양구군에 있는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이하 박수근미술관)이다. 바캉스 다녀와 후유증을 앓고 있다면 문화로 잠시 재충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여름의 녹음이 물러가기 전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지역문화 매력 100선 ‘로컬100’ 여행지인 박수근미술관을 찾았다.



명작 ‘빨래터’ 탄생한 빨래터부터
박수근은 ‘빨래터’ 부근 시냇가에 털썩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미술관과 눈맞춤하고 있었다. 곁에는 그와 평생 함께했던 스케치북과 연필 하나가 놓여 있었다. 박수근미술관에서는 ‘박수근화백상(像)’이 먼저 방문객을 맞는다. 미술관 어귀에서 조각상으로 자리하고 있는 그의 시선을 조용히 따라가보기로 한다.
맑은 물소리에 귀가 시원해지는 조각상 옆 빨래터는 박수근과 부인 김복순 여사의 추억이 있는 곳이다.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시냇가에 삼삼오오 모여 빨래하는 여인들을 그린 명작 ‘빨래터(1950년대 작)’가 탄생한 장소이기도 하다. 2007년 3월 당시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45억 2000만 원이라는 최고 낙찰가를 기록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시냇가 안내판엔 빨래터 그림과 함께 박수근이 결혼 전 김 여사에게 마음을 고백한 편지 중 일부를 소개해놨다.
‘일전에 어머님 점심을 가지고 빨래터에 갔을 때, 빨래하고 있는 당신을 본 후 아내로 맞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입니다. 재산이 붓과 파렛트밖에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승낙하셔서 나와 결혼해주신다면 물질적으로는 고생이 되겠으나 정신적으로는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해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나는 훌륭한 화가가 되고 당신은 훌륭한 화가의 아내가 되어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가난한 화가의 담백하면서도 낭만적인 고백을 엿보고 시내를 건너 미술관으로 들어선다. 한국 근현대미술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화가 박수근은 현대사를 관통한 서민들의 삶을 담아낸 증언과 같은 작품을 남겼다.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자신의 말처럼 일관되게 서민들의 일상을 담은 작품은 익숙함과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생가 터에서 만나는 박수근의 작품들
2002년 강원 양구군 양구읍 정림리에 개관한 박수근미술관은 박수근 생가 터이자 그가 처음 ‘그림’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곳에 조성됐다. 5만여 ㎡ 넓은 부지의 미술관엔 박수근기념전시관 외 현대미술관, 박수근파빌리온, 어린이미술관, 박수근라키비움 등 5개 전시관이 자리한다.
미술관에서는 박수근의 작품 255점과 함께 근현대작가의 작품과 자료 등을 감상할 수 있다. 박수근의 유족이 기증한 미공개 스케치 50여 점과 수채화, 판화 그리고 박수근이 직접 글을 쓰고 그린 동화책까지 다양한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박수근(1914년 2월 21일~1965년 5월 6일) 탄생 110주년을 맞이한 올해 박수근기념전시관에선 소장품 특별전 ‘박수근: 평범한 날들의 찬란한 하루(~2025년 3월 9일)’가 열리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참혹한 시간을 이겨내고 한국인의 정서를 그림으로 가장 잘 표현해 ‘국민화가’로 기록된 박수근의 작품 중에서도 평범한 날들이었지만 찬란한 삶으로 기록해낸 유화, 드로잉, 삽화, 자료들과 함께 박수근이 기록됐던 ‘흔적’을 전시한다. 특히 전시에선 2023년 박수근미술관이 미술품 경매를 통해 구입한 신소장품 ‘가족(1956년)’을 만날 수 있다.
유채화 ‘굴비(1962년)’도 꼭 챙겨보길 권한다. 굴비는 박수근이 “미스 박 시집갈 때 선물한” 작품을 ‘미스 박’에게 다시 기증받아 전시한 것이다. 기증자인 ‘미스 박’은 1950년대 한국 최초의 상업화랑인 반도화랑에서 근무한 박명자 씨로 현재 갤러리현대의 박명자 회장이다. 박 회장이 결혼할 때 박수근에게 선물받아 세월이 흘러 다시 박수근미술관에 기증한 이야기가 특별하다. 고 이건희 삼성 회장 가족이 기증한 ‘농악’, ‘한일(閑日·한가로운 날)’을 비롯해 ‘나무와 두 여인’ 등 어렵게 제자리를 찾아온 작품들도 기다린다.
박수근의 작품세계를 가장 잘 드러내는 단어 중 하나는 ‘나목(裸木)’. 나목은 벌거벗은 앙상한 겨울나무지만 봄을 기다리는 희망을 품고 있다. 소설가 박완서는 소설 ‘나목’에서 “이제 막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 나목이기에 봄은 아직 멀건만 그의 수심엔 봄에의 향기가 애닯도록 절실하다”고 쓰기도 했다. 전시에선 박완서에게 영감을 준 박수근과 나목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1959년부터 1964년까지 ‘장업계’, ‘한국전력’, ‘교통’ 등의 잡지에 실었던 표지화와 삽화도 볼거리다. 박수근미술관 소장의 ‘박수근 삽화첩’과 한국미술기록보존소가 소장한 ‘박수근 ?’의 작품들이 전시관 한쪽을 장식한다. 이 밖에 사진 자료와 신문기사를 비롯해 박수근이 가지고 있던 미술 독학 자료, 김 여사의 일기장 등을 천천히 관람하다보면 박수근의 생이 마치 아는 이웃처럼 친근하게 다가온다.





화가의 그림을 닮은 미술관
박수근미술관 자체도 하나의 작품이다. ‘미술관은 화가와의 만남을 만드는 통로여야 한다’는 모토로 설계된 이곳은 2006년 대한민국 건축상을 받았다. 돌과 콘크리트, 금속 등의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지은 전시관들은 각 자리에서 조화를 이룬다.
박수근기념전시관 입구에서 마주한 오돌토돌 외벽은 박수근 특유의 화풍이 연상된다. 투박한 질감의 담벼락처럼 거친 돌무늬를 살린 것이 인상적이다. 10년에 걸쳐 박수근기념전시관과 현대미술관, 박수근파빌리온을 설계한 이종호 건축가는 박수근기념전시관 돌무늬에 대해 “돌무더기는 30㎝ 정도의 크기로 부순 화강석을 거칠게 쌓아 만들었다. 박수근의 마티에르(질감)를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건축가의 의도대로 관람객의 시선이 미술관의 주변 풍경에서 나선형 통로를 따라 미술관으로 좁혀 들어간다. 이따금 창 너머 펼쳐지는 풍경은 작품 감상에 여백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매표소 앞의 직사각형 네모난 창엔 빨래터와 박수근기념상이 또 하나의 작품처럼 눈에 들어온다.



대표작 실감형 콘텐츠로 만나는 ‘라키비움’
5동의 건물 중 가장 최근인 2021년에 개관한 ‘박수근라키비움’은 도서관(Library)과 기록관(Archives), 박물관(Museum) 기능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이다. 박수근 관련 도서와 함께 박수근 작품을 활용한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 등 실감형 콘텐츠를 경험해볼 수 있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박수근의 대표작이 미디어아트 작품으로 한 벽면을 채운다. 한쪽엔 박수근기념전시관에서 본 작품들이 미디어아트로 되살아나 관람객에게 다가온다. ‘농악’ 속 사내들은 고개를 움직이고 ‘아이 업은 소녀’가 사뿐사뿐 걸어 눈앞으로 지나간다. 박수근이 가장 많은 작품을 그리며 살았던 동네 ‘창신동 풍경’까지 박수근 그림 속 인물과 풍경들이 모여 마치 하나의 작품처럼 펼쳐진다.
현대미술관과 박수근파빌리온은 현재 제8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작가전인 노원희의 ‘출몰무대(~11월 3일)’가 채우고 있다. 어린이미술관까지 관람하고 나면 시간이 훌쩍 지난다. 야외 공간, 언덕에 자리한 박수근 산소와 전망대, 자작나무숲도 지나칠 수 없다.

‘박수근 마을’ 구경은 덤
입장료 6000원을 내면 입장권과 함께 양구사랑상품권(3000원)을 준다. 양구군 내 상품권 사용이 가능한 카페나 식당 등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다. 이를 핑계로 마을 구경도 나서보자. 미술관을 중심으로 ‘박수근로’라 이름 붙여진 마을엔 공예공방, 갤러리, 예술창작촌 등이 들어서 있어 한 바퀴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인근 아파트 담벼락엔 박수근의 작품 ‘농악’, ‘휴식’, ‘귀로’, ‘창신동 풍경’ 등의 벽화도 숨어 있다. 박수근광장을 지나 양구교육지원청 뒤편에 있는 ‘박수근나무’도 올라가볼 만하다. 안내판엔 박수근이 종종 올라 그림을 그렸던 곳이라고 적혀 있다. 미술관 입구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카페 ‘수근수근’에서 시원한 오미자에이드를 마시며 창밖을 내다본다. 온종일 화가 박수근을 만나기에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싶다.

글·사진 박근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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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로컬100
양구백자박물관



강원 양구군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문화 공간인 ‘양구백자박물관’도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과 함께 ‘로컬100’ 지역문화 매력에 선정됐다. 양구백자박물관은 양구의 백자제작 역사 보존, 백자의 중심 원료로 사용된 양구백토의 연구 및 현대적 활용 가치를 모색하기 위해 2006년 개관했다. 양구에 백자박물관이 들어선 것은 이곳이 조선백자의 중심 중 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양구백토는 질이 좋아 조선시대 관요의 왕실백자 생산에 쓰였다고 전해진다.
박물관엔 양구백자실과 도자역사문화실, 도자기 제작 체험장, 개방형 수장고, 백자 카페 등이 들어서 있다. 지속적인 기획전시가 열리며 백자 만들기 체험도 진행한다. 양구백자박물관 도자역사문화실에선 거대한 벽면을 가득 메운 도자기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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