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스, 그리고 록의 영원한 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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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미시시피에서 태어난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은 두 차례에 걸쳐 녹음한 단 29곡으로 블루스와 로큰롤, 더 나아가 전세계 대중음악을 영원히 바꿔 놓았다.
27세라는 젊은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고 공개된 사진은 두 세 장 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로버트 존슨의 삶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생전에 확립시킨 블루스의 문법과 독특한 기타 주법은 시대를 앞서간 것이었고, 이는 로큰롤과 소울의 토대가 되면서 길을 닦아 놓는 역할을 했다.
로버트 존슨 사후 20년이 지난 60년대에 그의 음악이 급부상하게 되고 로버트 존슨은 소울과 로큰롤의 개척자 중 한 사람이 됐다.
롤링 스톤 매거진에서 꼽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연주자 100명 중 5위에 꼽혔던 로버트 존슨은 1989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얼굴 사진이 공개됐지만 블루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 막대한 영향력은 60년대 당시 블루스와 록을 연주하는 기타리스트들 모두에게 영향을 미쳤다.
롤링 스톤즈는 로버트 존슨의 ‘Love in Vain’과 ‘Stop Breaking Down’을 녹음해 앨범에 수록했고, 에릭 클랩튼은 아예 그의 곡으로만 구성된 앨범 을 발표했다.
롤링 스톤즈의 키스 리차드는 “블루스가 얼마나 좋은 지 알고 싶으면 로버트 존슨을 들으면 된다”고 말했고, 에릭 클랩튼은 “인간의 목소리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외침”이라 평하기도 했다.
밥 딜런은 로버트 존슨을 두고 “가장 창의적인 천재 중 한 명이며 우리는 아직도 그를 따라잡지 못했다”고 언급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전설들이 전설로 추앙하는 인물에 다름 아니었다.
처음에는 하모니카로 음악을 시작한 로버트 존슨은 기타를 연주하고 싶었지만 기타를 잘 연주하지는 못했다. 당시 그가 기타를 연주할 때면 라이브 하우스의 관객들이 로버트 존슨에게 기타를 만지지 말라며 야유를 보내곤 했다.
델타 지역 일대에서 활동하던 로버트 존슨은 이후 뉴욕과 세인트 루이스, 디트로이트 등을 떠돌아다니며 공연했다.
그리고 2년 후 다시 자신이 야유를 받았던 라이브 하우스에 돌아와 연주를 시작하자 그의 능숙한 퍼포먼스에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과연 2년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짧은 시간 내에 갑자기 연주 실력이 향상된 것에 대해 로버트 존슨이 십자로(Crossroads)에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델타 지역 일대에서 오랫동안 전해지는 전설 중에는 달이 뜨지 않은 밤 인기척 없는 십자로에 블루스 맨이 서있으면 악마가 나타나 기타를 조율해준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바로 그때 로버트 존슨이 악마와 거래를 했다 믿었다. 로버트 존슨의 ‘Me And The Devil Blues’ 같은 곡에서도 그는 악마에 대해 언급하곤 했다.
‘십자로’를 제목에 활용하고 있는 그의 대표 곡 ‘Cross Road Blues’는 사실 인생에서의 선택의 필요성에 대해, 보다 근본적으로는 선악의 분별에 대해 노래하고 있었다.
80년대 무렵 기타 붐을 일으켰던 영화 <랄프 마치오의 십자로> 또한 로버트 존슨의 전설을 인용하면서 이 전설은 시대를 넘어 구전된다.
로버트 존슨은 선술집과 파티회장 등을 돌며 활동하던 와중 1938년 무렵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사망 진단서에는 ‘No Doctor’라고만 기재되어 있었다.
당시의 수명을 생각해도 그의 인생은 짧은 편이었다. 로버트 존슨의 미스테리한 행적 때문에 사망 원인이 분분했는데, 하나는 노래하던 술집 주인의 와이프에게 눈길을 줬다가 독살당했다는 것이었고 매독에 의한 동맥류로 사망했다는 의견 또한 있다.
그의 매장 장소 또한 수수께끼로 남겨져 있는데, 그가 사망한 미시시피의 그린우드 지역에는 세 곳에 제각각 로버트 존슨의 묘비가 세워져 있다.
정말로 악마가 계약에 의해 로버트 존슨의 영혼을 가져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자신의 영혼과 바꿔낸 결과물들은 수많은 이들을 매료시켰고 영감을 줬다.
그는 처음으로 부기 워킹 베이스 리프를 사용하면서 혁명적인 기타 주법을 개척해 나갔고 당시 피아노로만 연주되던 것을 기타로 구현해내면서 기타라는 악기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러한 테크닉은 피터 그린, 지미 페이지를 비롯한 수많은 록 기타리스트들에게 수혈됐고 그러면서 로버트 존슨의 영향력은 60년대 록 음악의 중요한 도약점이 된다.
그리고 이후의 음악계 흐름 또한 상당히 달라졌다. 자신이 만든 노래들이 이후 로큰롤의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아마 본인도 크게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로버트 존슨의 비범한 작품과 인생사가 전설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순리였다. 음악적인 부분을 차치하고서 이 비즈니스가 어떻게 새로운 시대에 신화와 전설을 만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청사진을 로버트 존슨은 제시하고 있었다.
악마와의 거래가 사실이던 아니던 간에 로버트 존슨의 음악은 불멸이 되었고 그는 자신의 음악이 불멸이 될 것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죽었다.
◆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다수의 일간지 및 월간지, 인터넷 포털에 음악 및 영화 관련 글들을 기고하고 있다. 파스텔 뮤직에서 해외 업무를 담당했으며, 해외 라이센스 음반 해설지들을 작성해왔다. TBS eFM의 음악 작가, 그리고 SBS 파워 FM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록밴드 ‘불싸조’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samsicke@hanmail.net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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