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 돈도 안돼요” 직종·직군 무시한 노동시간 불만 목소리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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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 현장에서는
“지게차, 굴착기 같은 건설기계를 정비하는 저희 업종에서는 야간작업이 매우 잦습니다. 보통 건설현장은 새벽부터 일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장비 하나가 고장나면 현장이 다 멈춰야 합니다.”
한국건설기계정비협회장인 김창웅 카라인종합정비공장 대표는 근로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주 52시간제가 지켜지기 어려운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펌프차라는 장비가 있습니다. 콘크리트를 타설 장소까지 올려다주는 기계인데 최대 68m 높이입니다. 일반 승용차야 문제가 생기면 렌터카도 있으니 다음날 정비를 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펌프카는 대체재가 없습니다. 이걸 고치려면 새벽 2시라도 작업해야 합니다. 야근의 양을 주 단위로 정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김 대표에 따르면 대부분의 건설기계 정비 업체는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운영된다. 기계를 정비하려면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상당수의 근로자가 숙련된 기술자로 연령대가 높은 편이다.
“일각에서는 사람을 더 고용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숙련 기술자를 만들려면 수년이 필요한데 무거운 기계를 다루는 직종이다보니 유입도 없는데 가능한 일일까요? 현장에서는 사람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인데 일은 해야 하는 사면초가의 상황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만 손해인 것이 아니다. 근로자 입장에서도 임금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았다.
“다른 숙련 기술자와 마찬가지로 건설기계 정비 업종도 봉급은 센 편입니다. 그런데 주 52시간제로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다 보니 받는 임금이 감소했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기술자가 50cc 스쿠터를 50만 원에 빌려서 배달 일을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를 분석한 바를 보면 2022년 부업을 하는 가장은 36만 8000여 명이었다. 부업자 수는 2020년부터 계속 증가했는데 이는 원래 직장의 근로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전경련은 이에 대해 “근로시간 단축으로 줄어든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근로자들이 부업을 병행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근로시간을 단축한 주 52시간제가 근로자의 경제상황을 악화시켰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가 2021년 9월 시행한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근로자의 76%가 주 52시간제 도입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97%가 ‘잔업 감소로 임금이 줄어들어 생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답했다. 임금 감소 폭은 월 평균 65만 8000원으로 분석됐다.
중소기업 42.4% ‘주 52시간제 힘들어’
전 세계적으로 봐도 각 직종과 직군의 업무형태를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연장근로시간을 정한 주 52시간제 같은 제도를 시행하는 곳은 드물다. 주 52시간제는 연장근로시간 단위가 주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프랑스는 12주, 영국은 17주, 독일은 24주 단위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대개 노사의 자율적 합의로 연장근로시간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법정근로시간을 노사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영국 역시 근로계약을 맺을 때 반드시 연장근로시간에 대한 규칙에 합의해야 한다. 양옥석 중기중앙회 인력정책실장은 “한국처럼 근로시간 연장 한도가 경직돼 있고 징역형 등 위반 시 처벌이 강한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 52시간제 실시의 어려움은 전방위적으로 나타난다. 중기중앙회는 2022년 5월 중소제조업체 555곳을 대상으로 주 52시간제 시행 실태를 조사했다. 이중 42.4%는 주 52시간제 시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더 어렵다고 대답했다.
대부분 기업은 구인난을 제일 큰 이유로 꼽았다. 원청이나 발주처의 주문 예측이 어려워 유연근무제 활용이 어렵다는 응답도 상당수에 달했다. 업종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일률적인 제도 시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어려움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응답에 추가인력을 채용해 주 52시간제를 보완한다는 응답은 22%에 불과했다. 마땅히 대책이 없다는 응답이 비슷하게 나왔다. 처음 주 52시간제가 도입될 당시 기대했던 효과인 일자리 창출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주 52시간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먼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2022년 6월 23일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을 발표하면서 주 52시간제를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급격하게 줄이면서 기본적인 제도의 방식은 그대로 유지해 수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기업별·업종별 경영여건이 복잡·다양해지는 만큼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12월 12일에는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에서 연장근로시간 단위를 현행 주에서 주·월·분기·반기·연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권고했다. 단위가 확대되면 장시간 노동하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연장근로시간의 총량도 줄어든다. 분기 단위는 월 단위의 90%, 연 단위는 70% 수준으로 감소한다. 이를 계산해보면 주 52시간제에서 분기에 총 가능한 연장근로시간은 156시간이지만 연장근로시간 단위가 확대되면 140시간으로 줄어든다.
연구회는 이에 대해 “업무의 특수성과 근로자의 선호를 다양하게 반영해 일하는 방식을 선택함에 있어 노사의 자율성을 확대하고자 하는 취지”라며 “집중적으로 연장근로를 할 필요가 빈번하지만 기간이 짧은 경우에는 월 또는 분기 단위로, 계절적 수요가 있어 특정시기에 비교적 길게 연장근로가 필요한 경우에는 분기 또는 연 단위로 활용하는 등 다양하게 조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효정 기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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