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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낡은 제도로 노동환경 묶는 것은 국민 미래 막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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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노동시장연구회’ 좌장 권순원 교수가 말하는 ‘노동개혁’
3대 개혁 중 노동개혁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공감대는 어느 정도 이뤄져 있다. 반면 노동개혁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도 있다. 노동개혁의 핵심의제를 ‘주 69시간제’라고 부르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 말은 ‘한 달에 한 주만 69시간 근로가 가능한 제도’로 바뀌어야 한다.
근로기준법이 제정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연장근로관리 단위는 ‘주’였다. 기본근로시간은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이다. 여기에 야간·휴일근로 등 연장근로가 가능한 시간을 한주에 12시간으로 규정해놓은 것이 현재 시행되고 있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다. 이 연장근로 단위를 주가 아니라 월이나 분기, 반기, 연으로 자유롭게 선택하자는 것이 이번 노동개혁의 권고안이다.
예를 들어 월 단위로 연장근로시간 한도를 정할 수 있다. 이때 총 연장근로시간은 현재처럼 주당 12시간을 4주 동안 꼬박 채운다는 가정하에 월 52시간이다. 이것을 4주에 걸쳐 나눠 쓰게 되는데 일이 많은 주에는 최장 주 69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다. 한 주에 연장근로 29시간을 일했으니 남은 연장근로시간은 23시간이다. 이것을 나머지 3주에 걸쳐 쓸 수 있다. 만약 다음주에도 할 일이 많아 남은 연장근로시간 23시간을 몰아 썼다면 이달의 남은 업무일에는 아예 야근을 할 수 없다.
이처럼 연장근로 단위를 확대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개혁의 큰 틀을 짜낸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은 모두가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같은 시간에 퇴근하는 전통적인 근로형태를 전제로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70년 동안 모든 것이 변했다. 권 교수는 “이미 근로형태는 매우 다양해졌는데 제도가 현실을 못 따라오고 있다”며 “제도가 현실을 앞지를 수는 없어도 현실에 발맞춰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권 교수가 이 같은 인식을 노동개혁에 반영할 수 있었던 이유는 2022년 7월 발족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이하 연구회)의 좌장을 맡았기 때문이다. 연구회는 2022년 6월 23일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에 따라 노동시장 개혁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구성됐다. 연구회는 5개월에 걸친 집중적인 논의 끝에 12월 12일 권고문을 발표하고 노동개혁의 구체적 방안을 제안했다.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정부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1월 1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연구회가 제안한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권고를 실천해나가겠다”고 밝혔다.
1월 2일 숙명여대에서 만난 권 교수는 이에 대해 노동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왜 지금 노동개혁인가?
크게 네 가지로 설명해보자. 하나는 저출생·고령화 문제다. 사회는 늙어가는데 아이는 태어나지 않는다. 인구가 줄어드는 이 상황을 두고 ‘침묵의 살인자’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생산가능인구가 계속 줄어드는 상황이다. 우리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다. 고령화로 인한 고령자 노동 문제도 심각하다. 노후에 받는 연금이 원래 소득의 몇 퍼센트인지 따지는 소득대체율이 22%에 머무른다. 그러니 계속 노동시장에 머물러야 할 수밖에 없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도 노동개혁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나라는 ‘기업복지’ 국가다. ‘사회적 임금’은 가장 낮은 수준이다. 사회복지를 기업이 대신 해준다는 말인데 다시 말하면 취업을 하느냐 못하느냐, 어떤 기업에 취업하느냐가 개인 후생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크고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임금 격차가 크다. 남녀 간 임금 격차도 여전하다.
디지털·탈탄소·친환경이라는 키워드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왔다는 것도 중요하다. 이제는 기업별로 탄소배출량이 정해진다. 한 자동차 회사가 계속해 내연기관차를 만들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얘기다. 문제는 내연기관차를 만들 때 100명 필요하던 인력이 전기차를 만들면 엔진을 제작하는 공정이 줄어들어 40명 감축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소멸되는 일자리가 많은데 새로운 대응책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된다.
글로벌화도 노동개혁의 필요성을 절감케 한다. 미국의 경우 삼성이든 LG든 미국 내에서 생산하기만 하면 제품에 관세를 부여하지 않고 보조금도 준다. 이것을 ‘리쇼어링(reshoring)’이라고 하는데 생산설비를 미국에 만들어 일자리를 창출하게 만드는 정책이다. 이미 한국에는 생산설비가 없는 글로벌 브랜드가 많은데 국내 노동시장을 살리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노동개혁의 의제 중 왜 근로시간 개혁과 임금체계 개혁이 먼저 추진되는지도 궁금하다.
중요한 것은 과거 제도들을 현재 근로환경에 부합하게 하고 미래 변화에 대응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제도가 시장을 앞지를 수는 없다. 최소한 시장의 변화는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것이 1953년이다. 70년 전에 제정된 이 법은 기본적으로 하루 8시간, 주 40시간 근무 체제에 맞게 구성돼 있다. 그런데 지금 근로환경은 그때와 너무나 다르다. 이 근로환경을 반영하기 위해서 살펴보면 근로계약에서 가장 중요한 두 축이 바로 근로시간과 임금을 정하는 것이다. 두 가지와 관련된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현재 근로시간제도는 어떤 점에서 문제가 있나?
요즘 강조되는 단어로 ‘시간 주권’이라는 말이 있다. 근로자가 시간에 대해 자율권과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다. 지금의 근로시간제도는 누구나 같은 시간에 일을 시작하고 같은 시간에 퇴근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현재 사회근로자의 근무형태는 제각각이다. 미국 주식시장에 맞춰 밤에 일하는 사람이 있고 출산·육아 문제로 단축근무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
저출생 문제를 비춰봐도 근로시간은 탄력적으로 조정돼야 한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등원시키고 10시에 출근하는 사람, 아이를 돌보기 위해 일찍 퇴근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를테면 여성의 경력단절은 큰 문제다. 육아를 하면서도 직장을 유지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이건 다양한 근로시간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연장근로시간 단위 확대가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하는 것과 어떤 관련이 있나? 일각에서는 연구회의 권고안을 ‘주 69시간제’라고 부르면서 근로자가 더 많은 노동을 하게 만든다고 비판한다.
지금은 근로자가 연장근로가 가능한 시간을 주 단위로 따진다. 한 주에 12시간 이상은 연장근로를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직업의 일은 월초에는 한가한데 월말에는 몰아치듯 바쁠 수 있다. 업종마다 다 상황이 다른데 연장근로시간을 주 단위로만 정할 수 없다.
연장근로시간 단위를 확대한다는 것은 노사가 합의해 지금처럼 주 52시간으로 하거나 아니면 월 단위나 분기, 반기, 연 단위로 각자 업종에 맞게 연장근로시간을 정하자는 것이다.
연장근로시간은 단위가 늘어날수록 줄어든다. 연 단위로 연장근로시간을 조정할 경우 주 52시간제에서 1년치 연장근로시간은 625시간인데 70% 440시간으로 줄어든다. 주 평균으로 따지면 한 주에 8.5시간만 연장근로를 할 수 있다. 오히려 근로자가 일을 덜하게 되는 셈이다.
임금체계는 왜 개편해야 하나? 연공서열식 호봉제는 왜 문제가 되나?
연공형 임금체계는 연차가 올라갈수록 임금을 더 받는 구조다. 장기적으로 연차를 쌓을 수 있는 사람에게 유리하다. 그리고 그 사람은 ‘대기업 정규직 남성’밖에 없다. 여성은 출산과 육아로 연차가 손실된다. 비정규직은 연차를 쌓을 수 없다. 중소기업은 장기재직하기 어렵다.
또 연공형 임금체계는 고도성장기를 전제로 만들어졌다. 지금 희생하면 계속해 성장할 회사가 보상해준다는 개념이다. 2~3% 성장하는 지금 시기에는 맞지 않다.
게다가 최근 청년세대는 자발적으로 회사를 옮겨 다닌다. 재직기간이 짧은 청년들에게 연공형 임금체계는 능력만큼 보상받지 못하기 때문에 불합리하다.
중·고령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중·고령자에게 더 많은 임금을 줘야 하는 기업들은 고령자 채용을 꺼린다. 계속 고용하고 있기도 꺼려 명예퇴직이 일상화된 직종도 많다. 새로운 임금체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업종에 따라서, 직무에 따라서, 직군에 따라서, 본인이 일한 만큼 보상받아야 한다. 그게 곧 공정성 문제와도 연결된다.
노동개혁을 통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
현재 노동조합에 가입된 근로자는 15%가 안된다. 대부분 대기업·공공부문에 집중돼 있다. 나머지 85%의 근로자는 노동조합을 조직하지 못한 취약계층이다.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들을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 근로자를 주로 대변하는 노조를 중심으로 한 현재 제도는 취약계층 근로자를 대변해주지 못한다. 정부가 노조를 대신해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근로조건과 환경을 반영한 제도를 만들어 근로자를 보호해줘야 한다.
임금체계 개편을 예로 들면 대부분 중소기업은 임금체계가 없다. 기업을 대신해 정부가 임금체계를 마련해줄 것이다. 원·하청 임금격차를 해소할 수 있도록 사회적 대화 모델도 만들어야 한다.
권고문에 담긴 방안들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
현행 제도는 아주 무거운 모래주머니가 국민과 국가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과 같다. 모래주머니를 떨쳐내려면 국민적 지지가 필요하다. 노동개혁은 단지 제도 몇 개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삶과 국가의 미래를 바꾸는 것이다. 이런 정당성을 바탕으로 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지면 입법 차원에서 제도개혁이 이뤄질 수 있다.

김효정 기자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란 노동시장이 두 개의 격차가 있는 시장으로 구분돼 있다는 의미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복지, 사회보험 가입률 등에 큰 격차가 있다. 대기업 내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좁혀지지 않는 격차가 크다. 정규직 내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는 확연하게 벌어진다. 이중구조 아래에서는 어떤 기업에, 어떤 형태로 종사하느냐에 따라 근로자의 삶이 완전히 달라진다. 이중구조를 해결하지 않는 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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