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팅 공연장에 양복 입고 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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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이런저런 책무와 완수해야 할 계약, 잊으면 안될 약속의 연속이 됐다. 미리암과 폴은 일로 정신이 없다. 그들은 그렇게 일에 치인다는 것이 곧 성공을 알리는 징표라도 되는 듯 끊임없이 “정신이 없다”는 말을 한다. 그들의 삶은 용량을 초과해서, 남은 자리는 겨우 잠을 자기 위한 것일 뿐 무언가를 응시할 자리는 전혀 없다.
위에 인용한 글은 레일라 슬리마니의 콩쿠르상 수상작 ‘달콤한 노래’에 나오는 도시 직장인 커플 미리암과 폴의 모습이다. 끊임없이 “정신이 없다”는 소리를 하고 사는 그들은 얼마 전까지 직장에 다니던 내 모습이기도 하다. 광고회사에 다녔던 나는 신입사원 시절부터 실장으로 근무하던 2년 전까지 거의 매일 야근을 하며 그야말로 ‘정신없이’ 살았다. 주말에도 나가서 혼자 아이디어를 내거나 팀원들과 모여 회의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고 인정받는 광고인이 되는 줄 알았다. 가끔 천재들이 나타나기도 했으나 알고 보니 그들은 남들이 안보는 곳에서 더욱 열심히 하는 ‘노력의 천재’였다.
그나마 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은 영화나 연극, 공연을 볼 때였다. 스마트폰도 끄고 일이 스며들 틈이 없는 극장이나 공연장에 앉아 있으면 비로소 숨이 쉬어지고 왜 사는지에 대해서도 잠깐 생각할 수 있었다. 아내가 비싼 돈을 들여 영국의 뮤지션 스팅 내한공연 티켓을 예매해줬다. 그런데 빨간불이 들어왔다. 공연하는 날 저녁에 갑자기 ‘1박 2일 워크숍’이 잡혀버린 것이다. 광고주의 광고팀장이 갑자기 결정한 일이었는데 말이 워크숍이지 그런 자리는 밤새도록 광고주를 접대하거나 싫은 소리를 열두 시간 이상 몰아 듣는 시간이었다. 실제로 팀장은 워크숍 일정을 알리면서 “광고주가 이런 맛이라도 있어야죠”라고 말했으니까.
위기였다. 아무리 회사 일이 중요하다지만 그렇다고 스팅 공연을 놓치고 워크숍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할 순 없지 않은가! 고민을 하던 나는 ‘제사 알리바이(부재 증명)’를 생각해냈다. 마침 그날이 제사인데 나는 종손이라 절대 그 자리에 빠져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사실은 제삿날도 아니고 나는 종손도 아니었다. 광고주에게만 그렇게 말하면 비밀이 샐 염려가 있으므로 나는 회사에도 거짓말을 했다. 하루 종일 정장을 입고 근무하다가(광고회사 사람들은 여간해서 정장을 입지 않는다) 칼퇴근해서 제사를 지내러 갔다. 사실은 서울 잠실에 있는 스팅 내한 공연장이었지만. 그렇게 해서 무사히 스팅 공연을 봤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극장에 잘 가지 못하는 이유가 두 시간 이상 스마트폰을 끄지 못해서라는 얘기를 들었다. 안타깝다. 행복은 멀티태스킹(다중 작업)이 아니다. 스마트폰을 끄고 영화나 연극, 콘서트에 집중할 때 진짜 행복이 온다. 바쁘고 힘들 때일수록 극장에 가고 콘서트장에 가자. 그게 잘사는 거다.
편성준_ 유머와 위트 넘치는 글로 독자를 사로잡은 작가.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를 썼다. 현재 다양한 채널에서 글쓰기와 책쓰기 강연을 하고 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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