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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 항암제 대신 항생제로 암세포만 공격 세계 최초로 치료제 없던 3형 유방암 치료 길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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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한국과학상’ 수상한 김종승 고려대 교수

고려대 화학과 김종승 교수는 논문 피인용 횟수로 전 세계 상위 1%에 든다. 글로벌 학술정보 데이터베이스 분석 업체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 조사 결과 2014년 이후 9년 연속 세계 상위 1% 연구자(HCR)에 이름을 올렸다. 김 교수의 연구 줄기는 크게 세 갈래다. ▲항암제 대신 항생제를 활용해 암 진단과 치료를 동시에 하는 신개념 ‘테라노스틱스’ ▲무독성 광감각제로 부작용을 줄인 광역학치료제 ▲알츠하이머병(치매) 원인으로 알려진 ‘아밀로이드 베타(Aβ)’ 감지 플랫폼 개발 등이다.
김 교수의 연구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표적치료다. 암 치료 과정에서 탈모, 구토, 체중 감량 등의 부작용이 따르는 건 항암제가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세포도 공격하기 때문인데 그는 치료제가 암세포에만 도달하도록 한다. 심지어 독성이 강한 항암제 대신 ‘마이신’ 수준의 항생제를 사용하면서. 전 세계 최초 연구다. 이 연구는 치료제가 전혀 없던 삼중음성유방암에 치료의 길을 열어줄 전망이다. 임상을 거쳐 상용화된다면 국내외 신약 개발 시장도 주도할 수 있게 된다.
인터뷰와 동시에 그는 짧은 강연을 시작했다. 전문용어 없이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설명은 문과생 눈높이에 맞춤형이었다. 연구자의 날카로운 눈빛은 어느새 호기심 가득한 소년의 눈빛처럼 변해 반짝반짝 빛났다. 김 교수는 연구 과정을 설명하는 도중 벅찬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기도 했다. 세계 1% 과학자의 순수한 열정이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한국과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신개념 테라노스틱스가 선정에 주효하게 작용했다고요, 테라노스틱스 개념이 생소한데 문과생의 시선으로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주세요.
테라노스틱스(Theranostics)는 치료(Therapy)와 진단(Diagnostics)을 동시에 하는 의학기술입니다. 암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항암제가 암세포만 없애야 하는데 정상세포도 공격하는 바람에 탈모, 생식기 이상, 체중 감량 등 엄청난 부작용이 따릅니다. 투입한 약이 암세포에만 가는 방법을 학계에서는 꾸준히 연구해왔습니다. 문제는 치료제가 암세포에만 정확히 도달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제한적이라는 거죠. 조직검사를 하거나 컴퓨터단층촬영(CT)으로 종양 크기가 줄었는지 확인하는 수밖에요. 제가 추구하는 건 색 변화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거예요. 약이 암세포에 도달하면 색이 변하고 정상세포에 닿으면 아무런 변화가 없게 해 진단과 치료가 동시에 가능하게 만든 것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이때 신개념은 어떤 의미를 갖죠?
항암제는 독약에 가깝습니다. 암세포를 죽이는 과정에서 정상세포도 죽이죠. 그래서 독한 항암제 대신 항생제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염증이 생겼을 때 마이신(항생제) 한두 알 더 먹는다고 큰일이 생기진 않잖아요. 반면 항암제는 한두 알 더 먹으면 엄청난 영향을 미치죠. 독성 자체가 다르니까요. 변형 항생제를 만들어 사용해봤더니 정상세포는 건드리지 않고 암세포만 공격했습니다.
실제 적용한 사례가 있습니까?
여성 유방암 사례가 있죠. 유방암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뉩니다. 1형과 2형은 치료제가 있지만 3형은 치료제가 없습니다. ‘삼중음성유방암’이라고 하는 3형은 에스트로겐·프로게스테론·표피성장인자 세 가지 어떠한 수용체도 없어 약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3형이 유방암 환자의 15%를 차지하는데 손도 쓰지 못했죠. 병원에서는 아무것도 안할 수 없으니 1형과 2형의 치료제를 투약해보지만 결국 치료는 되지 않습니다. 앞서 얘기한 항생제 같은 치료제를 3형 유방암 환자에게 적용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암세포만 골라 건드리고 부작용도 상당히 줄었습니다. 약이 없던 3형 유방암에도 치료 기회가 생겼죠. 폐에 전이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 기술을 적용하니 전이도 없었습니다. 해당 연구를 국제학술지 <켐(Chem)>에 게재했고 논문 인용이 많이 됐습니다.
암 환자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겠네요. 유방암 외 다른 암에도 적용할 수 있는 건가요?
대장암, 위암, 간암 등에도 효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암들은 치료제가 있고 삼중음성유방암은 치료제가 아예 없는 상황이었으니 파급력이 다르죠.
최근 ‘산소 비의존성 광역학치료제’ 연구도 결실을 맺게 됐다고 들었습니다. 10년 이상 연구한 분야라고요?
아까 말씀드렸듯 항암제는 독약입니다. 암을 치료할 수는 있지만 부작용이 따르죠. 그렇다면 아예 독성이 없는 물질로 치료할 순 없을까 생각했습니다. 빛을 흡수한 어떤 물질이 활성산소를 발생시키는데 약간의 독성을 가진 활성산소의 산화력으로 암세포를 죽이는 학계 연구가 있었습니다. 그 물질이 광감각제고 암세포를 죽이는 게 광역학치료법입니다. 제 연구는 무독성 광감각제에 암 추적자를 달아 광감각제가 정상세포로 가지 않고 암세포에만 가도록 한 광역학치료법이에요. 이 역시 일종의 표적치료로 전 세계에 유례가 없었습니다.
이 모든 연구가 임상을 거쳐 상용화 승인을 받으면 국가에도 엄청난 자산이 되겠군요.
맞습니다. 아이디어부터 최종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모두 특허 등록이 돼 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삼중음성유방암 치료제는 이전까지 약이 없었으니 얼마나 반응이 뜨겁겠습니까. 해외에서도 연구하고 있지만 독성 없는 항생제로 치료제를 개발하는 건 상상도 못하고 있죠.
이런 과정을 통해 어떤 세상을 꿈꾸는지요.
암 정복이란 말이 있잖아요. 호기심이 있습니다. 누군가 학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걸 제가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요. 사람을 천년만년 살게 하는 게 아니라 고통을 덜 받으며 자연적으로 수명을 다하도록 추구하는 거예요.
그래서 치매 연구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는 건가요?
현재까지 치매는 진단과 치료는 물론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피검사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문진을 통해 진단할 뿐입니다. 그동안 전 세계에서 치매 연구에 수백조 원은 투자했을 텐데 말이죠. 저 역시 10년 넘게 치매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데이터를 보면 70대 이상 치매환자는 뇌가 손상돼 약이 있어도 치료 효과를 보기 어렵습니다. 발병 15~20년 전부터 검사해서 치매를 일으키는 인자를 역추적해 없애야 하죠. 소위 조기진단입니다. 이때는 치료가 가능하고 발병을 늦출 수 있습니다만 20년 뒤 치매에 걸린다고 하면 누가 검사를 받겠어요. 건강검진할 때 정기적으로 치매 검사를 받게 해야죠. 40~50대부터 훗날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알려만 줘도 엄청난 효과가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현재 치료 연구는 어느 수준까지 와 있나요?
뇌 신경세포 표면에 단백질 Aβ가 있습니다. 이 Aβ가 종종 끊어지는데 정상적이라면 끊어진 Aβ가 몸 밖으로 배출돼야 하지만 여러 개가 뇌 속에서 엉키면 문제가 되죠. 엉킨 Aβ가 시냅스를 손상시켜 치매를 일으킨다는 게 학계 정설로 알려져 있습니다. 쉽게 비유해 엉킨 머리카락이 뇌 신경세포에 손상을 줘 신경 활동을 방해하는 거예요. 연구자들은 여러 치료법을 궁리했습니다. 먼저 엉킨 머리카락(Aβ)을 제거하려고 했죠. 이 방법은 동물실험에 성공했지만 사람에겐 효과가 없었습니다. 다음으로 아예 머리카락(Aβ)이 엉키지 않는 방법을 떠올렸지만 이 역시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또 처음부터 머리카락(Aβ)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시도도 해봤지만 실패했습니다. 지금까지 수십 년간의 그 어떤 연구도 사람에게 효과가 없었던 거죠.
교수님은 어떤 방법을 고안한 건가요?
저 역시 치료까지는 자신 없으나 Aβ가 엉키기 전 몇 가닥 있는 상태를 알아내려 합니다. Aβ가 엉켰다면 이미 치매에 걸린 상태고 몇 가닥만 있다면 치매 발병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겠죠. 완전히 엉킨 상태보다 몇 가닥 있을 때 제거하는 건 좀 더 쉽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 시기는 치매에 걸리기 대략 15~20년 전으로 치료는 Aβ를 아예 없애는 겁니다.
우와, 이렇게 쉽게 설명이 가능하군요. 교수님 눈도 소년처럼 반짝반짝 빛납니다.
휴…. 제가 너무 흥분했죠?(웃음) 연구할 때는 더 쏙 빠져듭니다.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면 엔도르핀이 돌아 잠도 못자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연구자들에겐 그런 희열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 연구한 결과를 전 세계에서 인정받을 때의 뿌듯함도 굉장합니다. 그 맛에 연구를 계속하나 봅니다.
실험실을 살짝 보니 색이 변한 가운과 유리병이 수없이 있던데 그동안의 노고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겠더군요.
그렇죠,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닙니다. 저희 연구팀 전에도 무독성을 활용한 시도는 많았습니다만 추적자를 만들어 암에 도달하게끔 표적 치료한 게 처음이죠. 그동안 연구팀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토론하는 지난한 과정이 있었고요. 끝까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밀고 나간 거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없었나요?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지원이 필요합니다. 요즘은 운이 좋아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지만 오래전 연구 지원비가 끊겼을 때는 참 힘들더군요. 연구진 인건비도 줄 수 없고 약을 만드는 데 드는 장비나 재료 비용도 적지 않게 들거든요. 그러다 보면 연구가 중단되기도 합니다. 제가 가진 실력 이상의 연구비를 받은 덕분에 지금까지 이어져올 수 있었습니다. 한국연구재단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처럼 느껴지는데 힘들 때면 어떤 방법으로 마음을 다잡았습니까?
고려대 아산이학관(이과대학 건물)에 이런 말이 써 있습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아산 정주영 회장의 어록입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어쩜 이렇게 제 마음을 잘 표현했을까 싶어 좌우명으로 삼았습니다. 연구 과정에서 실패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걸 실패로 보기보다 시련으로 보는 거죠. 힘들 때면 한번씩 되뇌면서 마음을 정화합니다.

궁극에는 성공할 수 있다는 그 믿음이 김 교수가 지난한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힘이었다. 한 가지 연구 분야에 보통 10년씩 매달려야 비로소 작은 결실을 볼 수 있었지만 김 교수는 실패한 적이 없다. 그 시간들은 성공에 이르는 시련일 뿐이니까. 결국 끈기와 호기심이 세계 1%의 과학자를 길러냈다.

선수현 기자

한국 과학계를 밝히는, 한국과학상·공학상은?

한국과학상·공학상은 세계 수준의 연구 업적을 이룩한 공로자에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주관해 수여한다. 국내 기초과학 연구 활동의 진흥을 도모해 창의적이고 의욕적인 연구개발 활동을 고취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2022년 한국과학상·공학상에는 김종승 고려대 교수 외 3명이 선정됐다. 이론적으로만 예측됐던 2차원 자성물질 연구를 세계 최초로 수행한 정현식 서강대 교수, 국내 최초로 인간형 로봇인 ‘휴보(Hubo)’를 개발한 오준호 한국과학기술원 명예교수, 전기·화학적 방법으로 이산화탄소를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에틸렌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 민병권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본부장이 그 주인공이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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