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식’이라는 심연에 눈을 뜬 예술가들 > 정책소식 | 정보모아
 
정책소식

‘자의식’이라는 심연에 눈을 뜬 예술가들

작성자 정보

  • 칼럼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btn_textview.gif

“우리는 과연 무엇인가?”

모든 철학과 신학자 그리고 과학자와 예술가들에게 이 질문은 평생을 함께하는 주제다.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는 존재론적 문제는 ‘어디로부터 왔는가’로 시작되며 또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로 귀결되고 있다.

마치 폴 고갱 작품의 제목과도 같은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신학자는 우리의 근원을 ‘신’에게서 찾고 있고, 철학자는 ‘인간의 이성’에 의지해 질문에 대한 답을 내어놓고 있다.

기술과 물질문명의 발달은 찰스 다윈(Charles Darwin)으로 시작된 ‘우리의 근원 찾기 프로젝트’에 도화선이 되었으며, 우리의 몸이 전체 118개의 원자 중 몇 개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에까지 이르고 있다.

예술가들 역시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는 현대 과학적 사고가 생기기 이전부터 본능적이며 필연적인 테마였다.

그 중 ‘우리’라는 공동체적 의식을 떠나 ‘자의식’이라는 심연에 눈을 뜬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 이런 본질적 문제에 접근하고 있었다.

베토벤과 미켈란젤로는 자의식의 탄생과 확장을 통해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유산을 인류에 남겨주었다.

철학과 사상이 결합된 베토벤의 음악과 신학과 이성이 융합된 미켈란젤로의 작품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공통된 화두를 던지고 있는 걸까.

◆ 저항과 열정

작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자신의 에세이에서 무거운 돌을 계속 밀어야 하는 형벌을 받은 그리스 신화 속 시지프스를 부조리한 삶에 내던져진 인간의 삶에 빗대어 말하고 있다.

그는 세상에 던져진 자아가 망각과 도피, 내세에 대한 희망에 빠지지 않고 삶을 직시하며 명징한 의식 속에서 저항의 열정을 품고 끝까지 살아내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베토벤과 미켈란젤로에게 삶의 목적은 이런 저항과 열정을 자신의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에 있었다. 베토벤의 음악세계에서 느껴지는 저항정신은 시대를 관통하고 있었고 열정은 그것의 원동력이었다.

그의 음악이 열정으로 가득 차 있는 것에는 베토벤 자신이 품고 있는 ‘시대정신(Zeitgeist)’이 밑바탕 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18세기말 시민의식과 계몽사상의 등장은 부조리한 세상에 눈을 뜨게 만들었고 자신의 자아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작곡을 하기까지 그는 오랫동안 악상과 생각을 품고는 했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부분을 바꾸고 수정하면서 만족할 때까지 작업을 했다. 실제 그의 작곡 원본을 보면 지웠다 다시 쓰기를 반복한 흔적이 굉장히 많이 나타난다.

이는 모차르트처럼 직관적인 작곡을 했다기 보다는, 많은 사상과 생각의 이미지를 조각가가 작품을 다듬듯이 작품에 투영하고자 한 그의 의지와 열정이 드러난 결과로 볼 수 있다.

미켈란젤로 또한 작품에 대한 열정과 타협하지 않는 정신은 당대 최고의 권력자인 교황도 꺾지 못했다.

그는 커다란 대리석을 보고 그 속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작품을 보았으며 자신만의 상상력과 확고한 신념으로 완벽을 추구했다.

그래서 바티칸의 피에타와 다비드상을 비롯한 그의 조각작품들은 공포감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극한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를 ‘테리빌리타(terribilita)’라고 한다.

미켈란젤로의 미학을 정의하는 단어인 ‘테리빌리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의 완벽주의적 열정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는 귀족과 성직자에게 종속되어 자유롭지 못하던 예술가의 한계 역시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획일화된 예술상에서 벗어나 당시 주류였던 기법과 화법에 저항해 자신만의 작품을 완성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였다.

작품의 관점을 사람이 아닌 신의 시점에서 표현한 바티칸의 피에타, 앳된 미소년의 모습으로 표현됐던 기존 다비드와 달리 강인하며 강렬한 눈동자를 가진 다비드상은 그런 그의 예술세계를 잘 보여준다.

특히 작품 <저항하는 노예>는 삶의 의지를 표현하며 저항과 열정적인 삶을 추구한 미켈란젤로 자신의 모습이라 볼 수 있다.

미켈란젤로의 천장 프레스코화가 그려진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내부 천장. (사진=저작권자(c) EPA/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고뇌와 역경

아인슈타인은 “위인은 항상 범인의 반대에 부딪혀왔다”고 했다. 물론 비범한 그들의 고약한 성미가 원인일 수도 있다.

테플리츠 광장을 함께 산책하던 베토벤과 괴테는 멀리서 대공일행을 마주쳤는데 기다리며 정중하게 인사한 괴테와는 달리 베토벤은 인사를 먼저 받고 무시하며 떠나버렸다.

시스티나성당의 천장화를 그리던 미켈란젤로 또한 최고권력자인 교황과 언쟁 후 로마를 떠나려 했다. 괴테와 율리우스2세 교황 모두 베토벤과 미켈란젤로의 성격을 못마땅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교황은 미켈란젤로에게 일을 맡기려 30년을 기다렸다고 언급했고, 괴테는 베토벤과의 만남 이후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 “나는 지금까지 그보다 더 집중력이 강하고 더 정력적이며 더 내면적인 예술가는 한 명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이들의 에피소드는 자의식 강한 성정을 잘 드러내고 있는데, 그들 삶의 인간적인 고뇌와 역경 또한 성격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작품을 통해 그 완고함이 드러나고 있다.

어린 시절 베토벤은 모차르트 같은 신동으로 만들고 싶어했던 아버지의 욕심 때문에 혹독한 연습에 시달렸다. 성년이 되어서는 어머니와 동생의 죽음, 자식같이 여기던 철없는 조카와의 관계, 사랑하는 여인과의 이별 등으로 슬픔과 고뇌에 빠졌다.

특히 음악가로서 치명적인 귀가 서서히 안 들리기 시작하던 시기, 자살을 생각하며 적었던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에는 그의 고독함과 절망감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몰락한 귀족집안의 소년가장이었던 미켈란젤로 또한 많은 인생의 부침을 겪었다. 산 로렌초성당의 지하 비밀의 방에는 숯으로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드로잉을 볼 수 있다.

당시 그가 살던 피렌체는 내전으로 찢겨진 상황이었고 그는 자신을 키워준 메디치가와 공화국 사이에서 공화국을 택했다. 그것이 화근이 되어 사형 당할 위기에 처해 산 로렌초 성당의 지하묘지 공간에 숨었던 것이다.

또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은 그가 동생들에게 보낸 비통과 노여움으로 가득 차있는 편지 속에서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고뇌와 역경은 그들에게 오히려 더욱 빛나는 예술혼을 심어주었다.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직후 작품인 교향곡 <영웅>이나 피난생활 이후 작품인 <최후의 심판>은 이전보다 깊어진 그들의 예술성이 잘 드러나는 작품들이다.

오스트리아 빈의 베토벤 동상. (사진=저작권자(c) EPA/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합창과 천지창조

베토벤의 <합창>과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는 그들 예술세계의 정점을 보여주는 명작이다. 아홉 번째 교향곡과 구약성서의 아홉 가지 장면을 연출한 천장화라는 의미에서 두 작품은 숫자 ‘9’라는 상징적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외에 작품이 가지는 몇 가지 유사점들이 있는데, 먼저 ‘리드미컬함’은 이들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는 중요한 요소다.

베토벤의 음악은 숨쉴 틈 없이 매우 촘촘하게 직조되어있는 느낌을 준다. 이는 느린 템포의 멜로디에서조차 숭고함과 엄숙함을 요구하기에 더욱 집중력을 요구 받는다.

베토벤은 포르데(f)와 피아노(p)의 차이를 극대화시켜 리드미컬함으로 음악의 긴장감을 유지시켰다. 특히 교향곡 <합창>의 2악장 도입부와 4악장 도입부 그리고 환희의 송가 합창부분 등은 이러한 요소를 잘 보여준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역시 중앙의 9개 프레스코화를 바탕으로 작은 그림과 큰 그림을 번갈아 배치해 리드미컬함을 주고 있다.

또한 중앙을 둘러싼 주변에는 12명의 예언자와 무녀들이 배치되었는데 이들 사이 사이에 조각상을 그려 넣어 입체감있는 구획을 나누었다.

또 다른 유사점은 합창교향곡의 1, 2, 3악장은 모두 기악으로 편성되어있으며 마지막 악장에 이르러서는 성악과 합창을 아우르는 사고의 확장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베토벤은 자신의 교향곡 10번에 합창형식을 기획하고 있었다고 한다.

천지창조 역시 입구부터 그린 그림이 마지막 <노아의 방주> 프레스코화에 이르러서는 사고와 공간에 대한 이해도가 커짐으로 인해 역동성이 작품에 나타나고 있다.

이 두 작품은 오랜 시간이 걸려 완성됐다. 베토벤이 실러의 시에 곡을 붙이고 싶다고 생각한 건 20대 초반이었지만 <합창>이 완성된 건 청력을 상실하고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낸 후인 30여년 뒤였다.

미켈란젤로 또한 높은 천장에 서서 고개를 젖히고 작업했는데, 물감으로 피부병과 시력저하가 생긴 그는 친구와의 편지에 ”내 목덜미는 뒤통수에 달라붙고 허리는 창자 속을 파고들었네”라고 전했다.

이러한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를 완성하기까지 장장 5년동안 쉴 수 없는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 혁신(Innovation)

펜실베니아 와튼스쿨의 애덤 그랜트 교수는 그의 저서 <오리지널스>에서 “합리적인 사람은 자신을 세상에 맞추고 비합리적인 사람은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려고 애쓴다. 하지만 우리의 진보는 전적으로 비합리적인 사람 손에 달려 있다”고 했다.

그랜트 교수에 의하면 베토벤과 미켈란젤로는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려고 한 비합리적인 사람이었다.

그들의 저항과 열정, 고뇌와 역경이 우리를 멈추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게 해주었으며 세상을 혁신으로 이끌어 준 것이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와 ‘우리는 무엇이고 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디로 향하는가?’에 대해 우주의 티끌도 안 되는 존재인 우리는 동시에 우주를 품고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 본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그 무엇도 창조할 수 있는 존재’ 즉, 그것이 우리다.

칼 구스타프 융(Carl Jung)은 그의 저서 <레드북>에서 이러한 질문의 답을 한 듯하다.

“앞으로 도래할 미래는 당신 안에서, 당신 자신으로부터 창조될 것이다. 그러니 내면을 바라보라. 비교하지도, 평가하지도 말라. 타인의 길은 당신이 갈 길이 아니다. 타인의 길은 당신을 속이고 유혹하겠지만 당신은 자기 내면에 있는 길을 걸어야 한다”

☞ 추천음반

베토벤의 교향곡은 올드레코딩으로 푸르트뱅글러(W.Furtwangler)와 오토 클렘페러(Otto Klemperer)를 추천한다. 현대적 레코딩으로는 무티(Muti), 아바도(Abbado), 카라얀(Karajan)등을 추천하겠다.

피아노 연주곡으로는 개인적으로 에밀 길렐스(Emil Gilels)와 빌헬름 캠프(Wilhelm Kempff), 박하우스(Wilhelm Backhaus), 리히터(Sviatoslav Richter)등 20세기를 빛낸 올드레코딩 연주자들의 연주를 선호한다.

빛나는 실내악작품은 알반베르크 현악사중주단(Alban Berg Quartett)의 연주를 권한다.

김상균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 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최근글


  • 글이 없습니다.

새댓글


  • 댓글이 없습니다.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