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영향력의 천사 ‘대구 키다리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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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간 꾸준하게 기부와 나눔을 실천한 사람이 있다. 중년 남성이란 것만 알려졌을 뿐 그가 누군지는 아무도 몰랐다. 이름도 성도 직업도 밝히지 않고 계속된 그의 나눔은 켜켜이 쌓이는 세월 속에 점점 커져갔다.
“처음엔 현금 몇만 원을 들고 직접 찾아갔어요. 그러다 나눔 통장을 만들게 됐고 10년간 10억 원을 기부하겠다는 약속을 저와 했습니다.”
2012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해마다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거액을 내놓고 사라진 그는 2020년 12월까지 10억 3500여만 원을 전달했다. 자연스럽게 그는 ‘대구 키다리 아저씨’로 통했다.
대구 키다리 아저씨의 꾸준한 익명 나눔은 지금까지 모두 합쳐 20억 원이 넘는다. 30년 나눔 인생,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대구 키다리 아저씨를 만나러 갔다.
“나눌수록 나눔의 마음 점점 커져”
대구 북구 검단공단로. 대구 키다리 아저씨가 운영하는 사업체가 이곳에 있다. 골목 어귀에 현수막이 걸려 있다. 11월 초에 치러진 2022년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에서 최고 훈격에 해당하는 ‘국민훈장 동백장’의 수상을 축하한다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박무근(73) 미광전업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첫 나눔의 손길을 아이들에게 내밀었습니다. 더는 저처럼 돈 없어 못 배우는 일이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5만 원, 10만 원 형편이 닿는 대로 모아 나눴죠. 그렇게 10년 가까이 했어요. 나눌수록 나눔의 마음이 점점 커졌습니다. 좀 더 체계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2000년부터는 나눔 전용 통장을 개설했습니다. 이 나눔 통장이 벌써 23개가 됐어요.”
나눔 통장의 사용처는 한국장학재단과 북한인권시민연합, 안중근의사기념관, 대한적십자사,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월드비전, 종합복지관 등 20여 곳에 이른다. 박 대표는 그동안 남모르게 나눔을 실천했다. 의도가 왜곡될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다.
“우선은 더 많이 나누고 사는 분도 있는데 과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혹여 회사나 가족들에게 삐딱한 시선이 보내질까 봐 걱정도 됐습니다.”
박 대표의 익명의 나눔은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고 선한 영향력의 천사가 됐다. 특히 2012년부터 2020년까지 해마다 이어진 거액 나눔은 소외된 이웃들에게 힘이 됐고 익명으로 크고 작은 나눔을 실천하는 여러 명의 키다리 아저씨를 등장시켰다.
사연을 듣고 있자니 박 대표의 나눔 철학이 보였다. 무뚝뚝한 경상도 아버지는 말 대신 ‘서로 나누고 보태면서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남편과 아버지를 가족들은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고 응원을 보냈다. 이것이 박 대표가 30년 가까이 나누는 삶을 실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모두가 아내의 지지 덕분입니다. 가난한 집에 시집와 고생도 많이 했는데 평생을 절약하면서 검소하게 생활해주었기에 가능했지요.”
뒤늦게 사무실에 도착한 박 대표의 아내 김수금(70) 씨가 10년간 거액 나눔에 관한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두 번째 나눔을 할 때 눈치챘는데 1년간 붙은 이자까지 더해져 1억 2000만 원이 넘더라고요. 큰 금액에 놀랐는지 ‘100만 원만 빼서 나 주면 안돼요?’라는 말이 툭 튀어나왔어요. 그랬더니 남편이 ‘내가 벌었다고 다 내 돈이 아니에요’라며 딱 잘라 말하는데 어찌나 부끄럽던지요. 나눔 통장에서 발생하는 이자 1원까지도 모두 나누고 있더라고요.”
부창부수라고 했던가. 아내 김 씨는 박 대표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자 동반자다. ‘먼저 이야기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남편을 보며 아내는 그저 웃었다고 했다. 그렇게 웃고 넘기면서 부부는 세 번째부터 나눔을 함께했다.
‘10년간 10억 원의 나눔’ 실천
2022년 2월에는 부부가 함께 2억 222만 2220원을 기부하면서 대구 지역 ‘아너 소사이어티’ 200호·202호 회원이 됐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운영하는 1억 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이다.
스스로에게 약속한 ‘10년간 10억 원의 나눔’을 실천한 박 대표는 2022년 초에 얼굴을 공개했다. 나눔 문화를 우리 사회에 더 확산시키고 싶은 이유에서다.
“금액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 손에 만 원이 있다고 했을 때 1000원은 힘들지라도 100원은 아낄 수 있잖아요.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필요한 곳이 있습니다. 적다고 망설이지 말고 시작해보세요. 선한 마음이 찾아옵니다.”
박 대표는 그러기 위해 필요한 제도적 뒷받침을 신신당부했다. “특히 기부금을 모금해 나눠주는 단체들이 좀 더 투명하게 운영됐으면 좋겠어요. 투명하게 운영될수록 사람들이 신뢰하고 작은 돈이지만 나눔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실천된 금액들이 모이고 또 모이면 좀 더 많은 나눔 문화가 확산될 수 있을 테니까요.”
박 대표는 은퇴를 5년 뒤로 미뤘다. 나눔 문화에 좀 더 힘을 보태기 위함이다. 그의 일상에 달라질 것은 없다. 늘 그래 왔듯이 그는 오늘도 내일도 세상의 온도를 높이는 데 자신의 온 마음을 다할 것이다.
“나눔 열차는 남녀노소 누구나 탈 수 있어요. 잘생기거나 못생기거나 상관없습니다. 1원이나 10억 원이나 차이도 없답니다. 타면 다 같이 갈 수 있습니다. 정부는 나눔 열차가 잘 운행되도록 탄탄한 여건을 만들어주면 좋겠어요. 그렇게 더 많은 사람이 나누며 부족한 것을 서로 채워가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글 심은하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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