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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짧은햇님’은 진짜 햇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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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쯤이면 틀어놓는 영상이 하나 있다. 바로 2019년 12월 25일에 방송한 입짧은햇님의 몬테크리스토 먹방. 나는 약 2년 전 크리스마스 무렵 이 태양 같은 유튜버를 처음 보았다. 왜 이 영상을 봤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그때까지만 해도 먹방 자체를 본 적이 없는데.
아무튼, 영상을 플레이하자 ‘입짧은햇님’이라는 유튜버는 오늘 몬테크리스토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겠다며 달걀을 열다섯 개 푼 달걀물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식빵을 3층으로 쌓은 몬테크리스토 샌드위치를 다섯 개 구워 세 개쯤 바삭바삭 씹어 먹더니 갑자기 화면에 육회비빔밥과 갈비탕이 등장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전개된다고? 내 생각이 전해지기라도 한 듯 ‘햇님’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지나가는 메뉴예요.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지금이야 햇님이 음식을 얼마나 먹는지, 아니 이 정도 전개에 놀라지 않지만 그날의 나는 햇님이 육회비빔밥을 와앙 먹고 갈비탕을 후루룩 마시는 모습을 홀린 듯 지켜보았다. 그리고 우연히 마우스를 움직였다가 나는 더 놀라고 말았다. 육회비빔밥과 갈비탕을 먹기 시작한 시점이 53분쯤이었는데 이 영상의 총 러닝타임은 2시간 10분이었다. 나는 마우스를 붙잡고 햇님이 무엇을 더 먹었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햇님은 갈비탕 바닥에 남은 당면을 마지막 한 가닥까지 호로록 해치우더니 프레임 너머에서 먹다 남긴 몬테크리스토 샌드위치를 꺼냈고, 몬테크리스토 샌드위치를 바삭바삭 씹다가 하얀 상자를 들고 와 그 안에 있는 마카롱 열 개와 커피를 먹었다. 그리고 김치사발면을 하나 꺼내 양치를 하더니 자메이카 통다리구이를 가볍게 끝내고 매워서 땀이 난다며, 이럴 때 빨리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한다며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가져왔다.
나는 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콘텐츠에 홀랑 넘어가고 말았다. 간식을 먹었는데 본식이 나오고, 본식을 다 먹으면 더 본격적인 본식이 나오고, 이제 슬슬 끝나겠지 생각하면 스트리밍 시간이 한 시간이나 더 남았고! 이때껏 책을 만들었지만 이렇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콘텐츠를 만져본 적이 없다. 이 얼마나 대단한 콘텐츠인가.
그날 이후 나는 한동안 습관처럼 햇님의 영상을 봤다. 물론 처음에는 햇님이 음식으로 어떤 반전을 보여줄지가 궁금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햇님은 그 이름처럼 어둑어둑한 나의 저녁을 밝혀주었다. 온종일 일에 시달린 날 햇님이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음식을 꺼내면 나는 그날 처음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생각만큼 뭔가가 풀리지 않아 입맛을 잃은 날에는 비빔밥에 소주를 마시는 햇님을 보며 나도 밥을 비볐다. 솔직히 말하면 햇님을 만나기 전까지 내게 먹는 행위는 일을 하기 위한 동력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햇님이 행복해하며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면 우울했던 김은경은 그래, 인생 별거 없다며, 근거 없는 희망 회로를 돌리며 냉장고를 뒤졌다. 그렇게 햇님과 저녁을 먹고 나면 온종일 내 어깨를 누르던 고민들이 확실히 작아져 있었다.
입짧은햇님은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예전에는 조금 어둡게 지냈던 시절도 많았다. (…) 그런데 햇살이들이 (내 좋은 점을) 많이 알아봐주었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나도 그 장면을 보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아니에요, 햇님. 햇님이 저를 어둠에서 꺼내주었어요.


김은경 출판 기획 에디터 겸 작가_ 12년 차 에디터.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를 썼다. 2022년에는 ‘성장’과 ‘실행’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해볼 예정이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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