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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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리라
(김소월 시, 서영은 작곡, 유주용 노래, 1968년)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 늦가을 어스름이거나, 찬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는 겨울날. 흐린 주점에 앉아 소주 한 잔 기울이다 취기가 오르면 문득 이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나 노래 하나 해도 될까” 쇠젓가락으로 양철통을 살짝 두드리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부르곤 했다. 이 노래만 부르면 동년배의 주당들은 예외 없이 따라 불렀다. 누군가는 목이 메고 콧잔등이 시큰해지고 소위 감성파는 눈자위가 붉어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는 앵콜이 없어도 내친김에 ‘불효자는 웁니다’까지 부르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서로의 부모님 안부를 묻곤 했다. 아무리 나이가 먹어도 ‘엄마’는 눈물 나는 말이고, ‘아버지’는 목이 메는 말이다.
부모를 생각하는 노래는 대중가요에 아주 많지만, 원조 격인 이 노래만큼 가슴을 시큰하게 적시는 노래가 있을까. 역시 ‘Oldest but Goodest’인가 보다. 노래치고는 아주 짧다. 가사도 몇 줄 안 된다. 제목도 딱 두 글자, 단순하다.
시골 출신의 중장년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정경을 가슴에 품고 있을 거다. 밖에는 함박눈이 소복소복 내리고 등잔불은 어른어른거린다. 아이는 아랫목 솜이불에 해진 양말의 두 발을 넣고 화롯불에 고구마나 밤이 익어가기를 제비 새끼처럼 입 벌리고 기다린다. 하루 바쁜 노동을 마치고 한가해진 엄마는 쉴 틈이 없다. 말똥말똥 눈을 뜬 새끼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니까. 엄마는 이야기의 화수분이었다. 어린 남매가 호랑이에게 쫓기다가 해님 달님이 되고, 무서운 도깨비와 마녀도 등장하고, 콩쥐팥쥐 신데렐라 이야기는 여러 번 들어도 조마조마했다.
그냥 처음부터 노래인 줄만 알았다. 우연히 남의 글을 보고 알았다. 어려운 말은 하나도 없는데도 무언가 범상치 않았던 이 가사가 시라는 것을. 그것도 100년 전 소월(1902~1934)이 쓴 시라는 것을.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이 이야기 듣는가’
영원한 존재론적 질문을 어찌 이리 쉽게도 풀어냈을까. 소월은 부모 되어 알아보리라 했건만, 부모가 된 나는 지금도 그 해답을 모른다. 가장 확실한 답은 부모가 있어 난 당신의 새끼라는 것뿐이다.
어렸을 때 누구나 그런 질문을 했을 거다. “엄마, 난 왜 태어났어?” 엄마는 이런 어려운 질문에 “글쎄, 삼신할매가 점지했나 보지”라고 답했던 거 같다. “다리 밑에서 주워왔지”라고 말하면 어린 마음에도 울었다. 자의식에 눈을 뜬 사춘기 때에는 “왜 날 낳았어요?”라고 대들기도 했다.
시인은 이 철학적 명제에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았다. 그저 ‘묻지 말아라’ 한다. 그게 정답이 아닐까 싶다. 폴 고갱이 1987년 타히티에서 그린 대작 ‘우리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가 자연스레 연상되는 노래다.
시 ‘부모’는 소월의 나이 스물셋인 1925년에 펴낸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에 실렸다. 소월 연구의 전문가인 구자룡 시인에 따르면 대중가요로 작곡돼 불린 소월의 시는 59편이다. 그의 시 10편 중 4편이 노랫말이 된 것이다. 시인 중 압도적으로 가장 많다. (참고 시리즈 2, 3편)
크리스마스 전날인 1934년 12월 24일 아침 서른 두 살의 소월은 평안북도 곽산의 집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전날 사온 다량의 아편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소월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죽어서 한국 대중가요의 큰 축을 이루었다.
소월이 대중가요에 소환된 것은 당대의 빼어난 작곡가 서영은(1927~1989)의 소월사랑 덕분이었다. 여자 이름 같지만 코미디언 고 서영춘의 친형이다. 서영은은 평소 소월의 시를 입에 달고 다녔다고 한다. 소월 시로 무려 39편을 작곡했다. 그가 1968년 낸 두 장짜리 프로젝트 음반 ‘가요로 듣는 소월 시집’은 소월 시가 본격적으로 여러 가수에 의해 노래로 불려진 출발점이다. 1960년 작곡가 손석우도 ‘진달래꽃’(박재란) 등 적지 않은 소월의 시를 노래로 만들긴 했다. 서영은은 소월 시가 아닌 가요로는 ‘고향무정’, ‘충청도 아줌마’(오기택), ‘뜨거운 안녕’(자니리) 등 1000여 곡을 작곡했는데 1989년 도쿄에서 타계했다. ‘부모’는 서영은의 소월 작품 중 대중에 가장 알려진 노래다.
‘부모’를 부른 오리지널 가수는 잘 알려지지 않은 유주용(1939~)이다. 1968년 최정자, 김상희, 오기택, 문주란, 최희준, 봉봉 사중창단 등과 함께 낸 컴필레이션(편집) 앨범에 실렸다. 여기 노래 중 ‘부모’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그의 유일한 히트곡이자 대표곡이 됐다. 서영은은 이 앨범에 이 곡뿐만 아니라 소월의 시노래 4곡을 실었다. 최정자의 ‘진달래꽃’, ‘님에게’와 유주용의 다른 소월 곡 ‘님과 벗’이다.
1963년 미8군 무대에서 데뷔한 유주용은 2년 후 남성 4인조 그룹 포 클로버스(Four Clovers)의 보컬리스트로 활동했다. 그는 경기고-서울대 화학과를 나은 당대 드문 인텔리 가수였다. 공학박사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수려한 용모로 잠시 영화에도 출연했다. 1968년 가수 윤복희와 결혼하고 5년을 살다 이혼한 후 미국에 거주한다.
‘부모’는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명곡이다. 수많은 가수들이 커버를 했다. 소월의 증손녀인 성악가 김상은씨가 할아버지의 시들로 발표한 앨범 ‘소월의 노래’ 속에도 들어있다. 소월은 북에서 활동하고 죽어서 남쪽에 연고가 없는 탓인지 그를 기리는 문학관이 없다. 한국 최고의 시인에게 결례다.
한 해가 저문다. ‘부모’는 요즘 들어야 좋은 노래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사유와 함께 내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다.
◆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언론과 글쓰기를 강의했고, 언론중재위원과 신문윤리위원을 지냈다. hkb821072@naver.com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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