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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코코 시대 화려한 장식 유럽 귀족 생활상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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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수도 런던은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와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지명도가 높은 도시다. 정치, 경제의 중심지이자 국제금융의 도시인 런던은 또 문화예술의 거점도시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런던에는 인류 4대 문명의 자취를 간직한 세계 최대 규모의 박물관인 대영박물관을 비롯해 내셔널 갤러리, 런던 자연사박물관,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미술관, 테이트 브리튼 등 굴지의 뮤지엄들이 즐비하다.
20세기가 시작하는 첫해 초여름 영국 런던 맨체스터 광장에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나는 또 하나의 국립미술관이 설립됐다. 12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월리스 컬렉션이다. 월리스 컬렉션은 영국의 명문 귀족 가문인 하트퍼드 후작 집안의 고택인 하트퍼드 하우스에 설립된 국립미술관으로 1900년 6월에 개관했다.
하트퍼드 가문의 컬렉션과 저택을 상속받은 4대 후작의 사생아인 리처드 월리스 경(1818~1890)의 개인 수집품을 더한 5500여 점에 이르는 월리스 컬렉션이 바탕이 됐다. 월리스 경은 하트퍼드 하우스와 컬렉션 전체를 국가에 기증해 줄 것을 유지로 남겼으며 1897년 월리스 경의 미망인이 사망하면서 기증 절차가 마무리됐다.


17~18세기 프랑스 로코코 미술의 보고
하트퍼드 후작 가문이 대대로 수집한 17~18세기 프랑스 로코코 시대 회화와 가구, 보석, 도자기 컬렉션 등 유럽 귀족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화려한 장식 응용미술품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프랑스 로코코 미술의 전성기를 이끈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1732~1806)와 프랑수아 부셰(1703~1770), 앙투안 와토(1684~1721)를 비롯해 플랑드르 바로크 미술의 거장 프란스 할스(1581년경~1666)와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 빛의 마술사 렘브란트(1606~1669), 스페인 궁정 화가로 한 시대를 풍미한 벨라스케스(1599~1660) 등 미술사를 빛낸 정상급의 화가들 그림도 월리스 컬렉션의 명성을 뒷받침하는 핵심 자산들이다.
또한 소장품 중 빼놓을 수 없는 무기와 갑옷 컬렉션은 리처드 월리스 경이 손수 수집한 것들이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 중국 등 다양한 국가들의 병기와 갑옷이 포함돼 있는데 특히 기능성과 장식성에다 예술성까지 두루 갖춘 갑옷 컬렉션이 유명하다. 중세 및 르네상스 미술품과 청동상, 18세기 프랑스 고급 자기의 대명사 세브르 자기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마졸리카 도자기도 주요 소장품이다. 월리스 컬렉션에 등록된 프랑스 로코코 시대의 회화와 도자기, 명품가구들은 영국 왕실과 영국 귀족들이 프랑스 대혁명 때 대거 사들인 것들이다.
1776~1788년 사이에 귀족풍으로 건축된 하트퍼드 하우스의 원래 이름은 맨체스터 하우스였다. 원주인은 영국의 정치가이자 외교관인 4대 맨체스터 공작 조지 몬태규(1737~1788)였다. 1797년 하트퍼드 가문의 프랜시스 잉그램 세이모어 콘웨이 2대 후작(1743~1822)이 소유권을 사들인 뒤 스페인 대사관(1791~1795)과 프랑스 대사관(1836~1851)으로 사용되다가 1852년부터 하트퍼드 가문의 컬렉션을 보관하는 장소로 활용됐다.
아일랜드 총독을 지낸 하트퍼드 가문의 초대 후작 프랜시스 세이모어 콘웨이(1718~1794)가 그랬던 것처럼 그의 아들인 2대 후작도 미술품 수집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하트퍼드 가문의 미술품 컬렉션은 3대 후작 프랜시스 찰스 세이모어 콘웨이(1777~1842) 때 비로소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고 4대 후작 리처드 세이모어 콘웨이(1800~1870)가 사실상 컬렉션의 골격을 완성했다. 평생 독신이었던 4대 후작은 예술적 안목이 뛰어났으며 19세기 유럽에서 알아주는 미술품 수집가로 활동했다. 사생아인 리처드 월리스를 개인비서로 고용하면서 회화에서부터 도자기, 가구, 갑옷 등에 걸쳐 폭넓은 컬렉션을 구축했다.




하트퍼드 하우스의 구조와 소장품 유형
파리에서 거주하던 리처드 월리스는 아버지가 사망하고 2년이 지난 1872년 상속받은 컬렉션을 런던으로 옮겨와 하트퍼드 하우스 개조공사에 들어갔다. 1875년부터 하트퍼드 하우스에 정착한 리처드 월리스는 1882년까지 외벽 리모델링과 갤러리 공간 확보를 위한 확장 공사를 이어나갔다.
약 250년 전에 런던 중심부 맨체스터 광장에 들어선 하트퍼드 하우스는 3층 규모의 단아하고 정갈하면서도 귀족이 살았던 저택의 품격이 느껴지는 우아한 인상이 매력적인 미술관이다. 1층 프런트 홀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대리석 계단에 깔린 화려한 레드카펫과 황금 조각상으로 장식된 눈부신 난간, 난간 바깥 양쪽으로 수호신처럼 우뚝 솟은 진갈색 대리석 기둥에 더해 좌우 벽과 정면 벽에 걸린 대형 그림들을 보노라면 눈이 호사를 누리는 기분에 우쭐해진다.
총 25개의 갤러리에 서양 명화 700여 점에다 로코코 양식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500점이 넘는 호화로운 가구 컬렉션, 투구, 갑옷, 각종 무기 등 전투용 도구라 하기에는 예술성이 탁월한 병장기들, 최고급 도자기와 시계, 보석 컬렉션으로 넘쳐나는 풍경은 월리스 컬렉션의 가치와 역사성을 증언하고 있다.
현재의 하트퍼드 하우스 형태를 완성한 리처드 월리스는 1875년 부인과 함께 이곳으로 와 죽을 때까지 15년 동안 거주했다. 월리스가 사망한 뒤에도 미망인은 1897년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곳을 지켰다. 하트퍼드 하우스는 1887년~1890년 3년간 마구간 등 저택 내 시설을 전시공간으로 꾸미는 리모델링을 끝내고 1900년 6월 22일 국립미술관으로 대중에게 공개됐다. ‘ㅁ’자 구조로 이뤄진 건물 내부 중앙에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다.
1층은 장식미술품, 2층은 서양 명화 컬렉션으로 디스플레이 돼 있으며 갤러리마다 벽지 색이 다르게 꾸며져 있는 것도 감상 포인트.




대표 소장품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그네’
프라고나르는 쾌락 지향적인 귀족들의 성향을 반영한 외설적인 장르화와 연애 풍경을 다룬 그림으로 후기 로코코 미술의 절대강자로 군림했다. 그가 35세 때 그린 ‘그네’는 장식성이 강하고 유쾌 발랄하면서도 에로틱한 기운이 넘쳐 로코코 회화의 화룡점정으로 불린다. 프라고나르가 이 그림을 완성한 1767년, 프랑스 사회는 도덕적으로 타락에 찌들어 있었다. 지배계층인 귀족들은 사치와 향락의 가속페달을 밟고 무한 질주를 계속했다.
지배계층의 위선적이고 도덕적 일탈을 고발한 작품이기도 한 이 그림의 주문자는 프라고나르의 후원자인 귀족, 그림 왼쪽 덤불 속에 눕다시피 숨은 남자다. 관음증적인 시선을 한 남자가 그네 타는 여인의 드레스 속을 훔쳐보다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공중으로 올라가는 탄력을 이용해 하이힐 한쪽을 벗어 던지며 성적 도발을 부추긴 여자는 자신의 계획된 의도에 포획된 남자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의기양양한 모습이다. 오른쪽 나무 아래에서 밧줄을 잡고 열심히 그네를 밀고 있는 후줄근한 차림새의 남자는 하인으로 짐작되는데, 여자의 정부(情婦)인 덤불 속 정장 차림 신사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신사와 여자의 사랑이 불륜임은 화면 왼쪽 가운데의 큐피드 석상이 증명하고 있다. 큐피드는 왼손을 입에 댄 채 발설하면 큰일 나니 ‘쉿’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로코코 회화의 특징을 유미주의적으로 발산한 가운데 당대 귀족들의 도덕적 해이와 비뚤어진 애정행각을 꼬집은 월리스 컬렉션의 대표 소장품이다.



프란스 할스의 ‘웃고 있는 기사’
할스는 17세기 네덜란드 바로크 미술의 정상급 초상화가로 이름을 날렸다. 인물들의 순간 동작과 표정, 감정을 전광석화처럼 포착해 스케치 없이 일필휘지의 붓놀림으로 자유분방하게 캔버스에 옮기는 속도전에 능한 화가였다. 그러면서도 인물의 자세와 심리상태, 입고 있는 의상의 사실성과 생동감을 정교한 세부 묘사로 극대화하는 한편, 검은색과 흰색을 다루는 솜씨가 신기에 가까워 네덜란드 초상화의 전성기를 이끈 화가로 평가된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한결같이 낙천적이다. 이 그림도 마찬가지다. 제목처럼 그림 속 남자는 웃고 있다. 그런데 엷은 웃음기를 띤 얼굴을 다시 보면 자신감이 넘쳐흘러 도도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꽉 다문 입, 카이저수염, 몸을 약간 옆으로 비튼 자세에서 정면을 응시하는 시선, 챙이 크고 넓은 모자와 함께 흑백의 강렬한 대비에 더해 섬세하게 수놓은 레이스 카라와 소매 끝 밑동인 커티스, 섬세하고 복잡하고 호사스러운 소매 장식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할스 이전에 네덜란드에서 이런 식으로 초상화를 그린 화가는 없었다.
이밖에 프랑수아 부셰가 프랑스 왕 루이 15세(1710~1774)의 애첩이었던 마담 퐁파두르(1721~1764)를 그린 ‘퐁파두르 부인’(1759)과 렘브란트의 ‘예술가의 아들, 티투스’(1657), 앙투안 와토의 ‘생의 환희’(1718년경)도 월리스 컬렉션이 내세우는 명작들이다.
로코코 시대의 장식미술품으로는 18세기 프랑스의 금속공예가 피에르 고티에르(1732~1813)가 1771년에 제작한 아비뇽 시계와 장 앙리 리세네르(1734~1806)가 1782년에 마호가니 베니어합판에 보석을 상감 세공기법으로 새긴 서랍장이 유명하다.


박인권 문화 칼럼니스트_ PIK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전 <스포츠서울> 문화레저부 부장과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팀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와 사랑에 빠진 그림> <미술전시 홍보, 이렇게 한다>, 미술 연구용역 보고서 ‘미술관 건립·운영 매뉴얼’ ‘미술관 마케팅 백서’ 등이 있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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