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고 진실한 역사 기록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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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국민메신저 카카오톡 서비스가 먹통이 돼 엄청난 사회적, 경제적 피해를 낳았다. 사고 원인으로 카카오의 부실한 데이터 백업시스템이 지목됐다. 카카오는 현재 수도권에 데이터센터 네 곳을 사용 중인데 비용 문제로 메인인 판교 센터만한 규모의 공간을 다른 센터 세 곳에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조선왕조실록도 화재 등을 대비해 네 곳에 나눠 보관했는데 정작 21세기 정보기술(IT) 최첨단 국가에서 조선시대에서도 지킨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누리소통망(SNS)에서는 뜬금없이 조선왕조실록이 화제로 떠올랐는데 국가의 핵심 기록물을 보존하려고 했던 조선시대 재난 대응 체계가 새삼 소환된 것이다.
철저한 분산 보관으로 훼손 방지
우선 조선왕조실록의 역사부터 한 장씩 넘겨보자.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시대 역대 왕의 행적을 연대기 순으로 정리해 편찬한 공식 국가기록이다. 1392년부터 1863년(제1대 태조~제25대 철종)까지 조선왕조 472년의 역사가 정치·경제·사회·외교·군사·예술 등 영역별로 담겨 있다. 왕과 신하의 지시와 보고, 관청의 업무 내용 등이 일일 단위로 꼼꼼히 기록돼 있다.
사실의 기록에 더해 사관의 평가도 더해졌는데 ‘사신은 말한다’로 시작하는 대목에서 사건이나 인물 관련 사관의 평가도 넣었다. 특히 사관은 외부 입김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필할 수 있도록 보호했다. 왕조차도 조선왕조실록을 열람할 수 없게 한 이유다.
또 훗날 조선왕조실록 일부를 수정 및 개정할 때 앞선 기록도 고스란히 남겨 객관적으로 비교·평가할 수 있게 했다. 어느 특정인에게 유리하게 사실을 왜곡하는 부작용을 방지하려는 조처였다.
조선왕조실록은 총 1893권 분량으로, 책 한 권 높이가 1.75㎝로 전체 실록 높이만 32m, 아파트 13층 높이에 이른다. 글자 수만 해도 천자문 6만 4000권 분량에, 매일 100쪽씩 읽어도 무려 4년 3개월의 시간이 걸리는 방대한 기록이다. 여기에는 왕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백성의 생활상까지 포함돼 있다.
그럼 조선왕조실록의 문서 보관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길래 이번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 사건으로 재조명받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바로 분산 보관이다. 북방의 침략이 잦았던 고려시대에 실록을 그대로 베낀 복본을 해인사에 뒀는데 조선시대에도 전쟁과 재난 등 국가적 위기에 대비해 중요 기록을 여러 지역에 나눠 보관했다. 수도 한양에는 국가 중요 서적을 보관하는 내사고인 춘추관 사고를, 지방에는 외사고를 따로 설치해 분산 배치한 것이다.
실록 편찬이 마무리되면 춘추관본 1부와 외사고본 4부 등 5본을 춘추관에 봉안했다가 날을 정해 춘추관과 외사고 4곳으로 각각 보내 봉안했다. 관리도 철저했다. 사관은 2~3년마다 정기적으로 사고를 찾아가 습기가 찬 실록을 볕에 쬐거나 바람을 쐬게 해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게 했다.
객관성·공정성·진실성 바탕 기록
실제 조선왕조실록의 이런 ‘백업시스템’이 빛을 발하기도 했다. 바꿔 말하자면 분산 보관하지 않았을 경우 반쪽짜리 조선왕조실록만이 빛을 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원래 조선시대 초기 조선왕조실록은 춘추관과 충주 사고 2곳에 보관했다. 1445년에 이르러서야 성주와 전주 사고에도 추가로 보관했다. 그런데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전부 소실되고 전주 사고에 있던 조선왕조실록만 남았다.
결국 이를 기초로 4부를 다시 만들었고 전주 사고에 있는 실록은 강화도 마니산에, 새로 편찬한 실록 4개는 각각 묘향산과 오대산, 태백산 사고에 봉안했다. 전쟁이 나더라도 외세가 접근하기 어려운 깊은 산골에 분산 보존한 것이다. 이후에도 여러 전란을 겪으며 조선왕조실록 일부는 불타 없어졌지만 다른 곳에 보관된 버전으로 오늘날 우리 품에 남아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1997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어떤 점에서 가치를 인정한 걸까? 조선왕조실록은 단일왕조 472년이라는 기간도 길지만 사관이 객관성과 공정성, 진실성이란 역사 기록 정신을 바탕으로 왕의 곁에서 국사를 관찰하며 빠짐없이 기록했다.
수백 년 시간이 흘러도 조선왕조실록은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 힘은 공정하고 진실한 사관의 역사 기록 정신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조선왕조실록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또다른 교훈은 바로 이 지점이 아닐까?
김정필 <한겨레> 기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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