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시선으로 풍경을 그리다 > 정책소식 | 정보모아
 
정책소식

철학자의 시선으로 풍경을 그리다

작성자 정보

  • 공감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btn_textview.gif




한병철이란 인물이 있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철학자다.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독일로 건너가 독일 문학과 가톨릭 신학, 철학을 공부했다. 1994년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하이데거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0년엔 스위스 바젤대학에서 자크 데리다에 관한 논문으로 교수 자격을 얻었다. 독일 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학 철학·미디어학과, 베를린예술대학교 철학·문화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2010년 펴낸 <피로사회>라는 책이 유럽 전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12년엔 우리말로 번역돼 소개됐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시간의 향기>(2013), <투명사회>(2014), <에로스의 종말>(2015), <권력이란 무엇인가>(2016), <타자의 추방>(2017), <땅의 예찬>(2018) 등을 연이어 펴냈다. 2022년 9월엔 신간 <사물의 소멸>이 발간됐다. 부제는 ‘우리는 오늘 어떤 세계에 살고 있나’. 이 책에서 저자는 재난과 질병이 일상이 된 세상, 거짓과 우울증이 지배하는 시대를 진단한다.
저자는 “우리는 탈사물화한 세계, 정보가 지배하는 유령 같은 세계에 살고 있다”며 “현재의 지배적인 삶 꼴이 아닌 새로운 삶 꼴, 새로운 지각, 새로운 이야기를 개발하는 과제를 예술에 맡기고 싶다”고 말한다. 디지털화한 세상에서 우리가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그의 철학적 통찰과 주장에 공감되는 대목이 많다. 철학자와 예술가의 사유가 다르지 않음을 실감한다.


부분과 전체라는 명제를 탐구
홍순명이란 화가가 있다. 한병철처럼 1959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부산대학교 미술교육학과와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를 졸업했다. 오래전부터 경기도 파주에 있는 ‘하제창작마을’ 스튜디오에서 작업하고 있다. 그림뿐 아니라 설치와 조각 등 다채로운 형식을 선보인다.
최근(9월 23일~11월 20일) 사비나미술관에서 개인전이 열렸다. 타이틀은 ‘비스듬히 떨어지는 풍경–재난, 가족’. 이번엔 회화작품으로만 전시장을 꾸몄다. 특히 주목되는 작품은 가로 길이 10m가 넘는 초대형 ‘풍경’ 시리즈. 50~60cm 크기 캔버스 100여 개를 이어 붙여 완성시킨 그림이다. 언론에 소개된 보도사진을 참고해 그렸다. 여객기 테러로 화염에 휩싸인 맨해튼 무역센터 빌딩, 가뭄 때문에 발생한 산불로 잿더미가 된 화재 현장, 태풍으로 인한 거대한 해일이 덮친 해운대 모습이다. 자연 혹은 인간에 의해 벌어진 재난의 풍경이다.
실제로는 전혀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장면이다. 그렇게 볼 수도 없는 광경이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재난의 고통과 미의 예찬이라는 상반된 상황이 공존하는 불편한 풍경이 나의 미학적 호기심을 자극했다”고. 이 진술은 눈에 보이는 세상 너머 그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포착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철학자 못지않게 날카로운 화가의 시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관객은 재난 장면이 담긴 대형 그림 앞에서 장엄함과 숭고미를 체험한다. 풍경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중심이 아닌 주변에 주목
홍순명이 20년 넘게 천착한 주제는 ‘사이드 스케이프(Side Scape)’. ‘가장자리, 변두리, 비주류, 언저리’를 뜻하는 ‘사이드’ 개념이 핵심이다. 그는 대부분 사람들이 바라보고 지향하는 ‘중심-중앙-주류’에 별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것을 의심하고 비딱하게 바라본다. 대신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주변’에 집중한다. 중심과 주변의 구분을 통해 형성된 이분법적 대립, 양자택일적 사고, 위계와 차별의 경계를 해체하려는 시도다. 주류-중심 관점이 아닌 비주류-외곽의 관점이다. 그는 맹목적으로 중심을 열망하지 않는다. 주류 권력에 의문을 제기하고 대항한다. 철학자 태도와 같은 화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새롭게 인식하는 시각 혁명이다.
철학자 한병철의 책을 읽는 맛은 각별하다. 특유의 짧은 문장을 이어가며 글을 완성시키는 솜씨가 탁월하다. 문장 하나하나가 군더더기 없이 간단명료하다. 불필요한 접속사도 없다. 그래서 난해한 철학책이라기보다는 아름다운 시처럼 읽히기도 한다.
화가 홍순명 그림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부분이 모여서 전체를 이루는 방식이어서 그렇다. 작은 크기 캔버스를 따로 떼어놓고 보면 전체와는 전혀 다른 그림으로 보인다. 구상과 추상의 경계가 흐려진다. 전체와 부분의 구분은 모호하다. 관람객의 시선은 멀찍이 물러나는 동시에 가깝게 끌어당겨진다. 홍순명 그림의 매력이다.


이준희 건국대 현대미술학과 겸임교수_ 미술대학을 졸업했지만 창작에서 전향해 몇 년간 큐레이터로 일했고, 미술 전문지 <월간미술> 기자로 입사해 편집장까지 맡아 18년 8개월 동안 근무했다. ‘저널리스트’로 불리는 것보다 여전히 아티스트에 가까운 ‘미술인’으로 불리기 원한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최근글


  • 글이 없습니다.

새댓글


  • 댓글이 없습니다.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