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체험 하니 위기 대응에 자신감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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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매안전체험관을 가다
이태원 사고 이후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각종 재난·재해 상황을 미리 준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를 위해 전국 곳곳에서는 시민들의 재난 대응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종합재난체험관을 운영하고 있다. 지진, 태풍, 화재 등 자연재해, 인위적인 재난 상황을 시민들이 직접 체험하고 안전수칙을 배울 수 있는 서울시 보라매안전체험관을 방문했다.
“아이들을 관리하고 교육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안전교육이 필수적인데 재난 체험을 해보니 진짜 상황처럼 느껴졌어요. 혹시 실제로 이런 일이 닥친다면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가을 하늘이 푸르던 11월 어느 날 서울시 보라매안전체험관에는 각계각층의 방문객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재난 체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초등학생 아이를 둔 학부모, 지적장애인 시설에서 온 지도교사와 장애인들, 영어 키즈 클럽의 직장인 등 20여 명이었다.
100분이 소요되는 재난 체험 첫 번째 코스는 재난영화 4D 상영관이었다. 1995년 6월 29일 서울 한복판에서 10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끔찍했던 삼풍백화점 붕괴 영상이 상영됐다. 특수 안경을 착용한 관람객들은 영상이 실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특수효과로 인해 의자에 앉아 있는 몸이 위아래로 요동치고 거대한 굉음, 희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삼풍백화점이 와르르 무너지자 “으악!” 하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설계·시공·유지관리 부실의 대표적인 참사로 기억되고 있어 영상을 본 관람객들에게 ‘안전관리’의 중요성을 상기하도록 만들었다. 이날 안내를 도와준 최형수 소방관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보며 우리 생활 속에서 안전수칙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유아교육과 관련된 회사에 다닌다는 한 직장인은 “아이들을 관리하기 때문에 비상사태 대응법, 응급처치법 등 안전수칙을 배우기 위해 왔다”면서 “현장에서 아이들 안전관리 시 오늘 배운 내용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상황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재난 체험 두 번째 코스는 ‘지진 체험’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관측된 가장 강력한 지진은 23명의 부상자와 1118건의 재산 피해를 입힌 2016년 9월 발생한 리히터 규모 5.8의 경주 지진이다. 최근에는 10월 29일 충북 괴산에서 규모 4.1의 지진이 발생한 바 있으며 지진 빈도수가 높아지면서 한반도 역시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날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규모 7.0의 강진을 체험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규모 7.0의 지진은 교량이 뒤틀리고 벽이 파괴되며 사람들이 놀라서 밖으로 뛰어나갈 정도의 강력한 흔들림을 느낄 수 있다.
지진 체험을 안내한 이성환 소방관은 “집과 회사에서 지진의 흔들림이 느껴질 때는 ‘지진이야’를 외치고 재빨리 탁자 아래로 들어가 머리를 보호하고 지진이 멈추면 가스 밸브와 전기를 차단한 후 안전한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건물 바닥의 진동이 시작되자 흔들림과 함께 굉음, 요란한 사이렌이 울리면서 정신이 혼미해졌다. “지진이야!”라고 외친 참가자들은 예상보다 격렬한 흔들림에 깜짝 놀라 우왕좌왕했고 탁자 밑으로 빨리 피하지 못하는 모습도 보였다.
지진이 잠시 멈추자 참가자들은 건물을 빠져나오기 위해 정전 상태의 좁은 복도를 한 줄로 이동했다. 이날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한쪽 벽이 지진으로 붕괴된 상태에서 왼손으로 불빛 없는 컴컴한 복도의 벽면을 짚고 오른손으로 머리를 보호하며 자세를 낮추고 천천히 밖으로 탈출하는 체험이 진행됐다. 암흑의 복도를 지나가면서 벽이 추가로 무너지고 땅이 푹 꺼지는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참가자들 사이에서 비명이 잇따라 터지기도 했지만 뒤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발밑을 조심하세요”라고 주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 여성 참가자는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장애물이 나오자 긴장하고 당황해 너무 무서웠다”면서 “실제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건물 밖으로 무사히 나온 이후에는 여진의 낙하물이 떨어지지 않는 넓은 공터로 이동해 끝까지 신변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
어린이와 장애인에게도 꼭 필요한 체험
재난 체험 세 번째 코스는 ‘태풍 체험’이었다. 2002년 8월에 발생한 ‘루사’는 250여 명의 사상자와 5조 1497억 원의 재산 피해를 입혔고, 2003년 9월에 발생한 ‘매미’는 130명의 인명 피해와 4조 2225억 원의 재산 피해를 입힐 만큼 강력한 태풍이었다. ‘매미’의 풍속은 초속 ‘60m’로 사람이 날아가고 건물이 붕괴될 정도의 수준이었다.
이날 프로그램은 초속 30m의 강풍을 뚫고 걸어 다니는 체험이었는데 30m의 강풍은 성인이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균형도 제대로 잡을 수 없는 강력한 바람이다. 이성환 소방관은 “태풍은 지진과 달리 예고를 통해 미리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대처 요령을 알고 있는 게 좋다”며 “태풍이 올 때는 폭우가 퍼붓고 쓰레기 등이 날아다녀 위험하므로 집 안에 있어야 하고 창문이 깨지지 않도록 덜컹거리는 창틀을 흔들리지 않게 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과 체험 프로그램을 찾은 학부모들은 “엄마들 사이에서 좋은 체험 프로그램이라고 입소문이 나서 예약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아이들과 꼭 참여하고 싶어 3개월 전부터 예약해 겨우 올 수 있었다”면서 “막상 경험해보니 아이들에게 꼭 필요하고 유익한 교육”이라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재난 체험 네 번째 코스는 ‘교통안전’ 체험이었다. 대중교통 이용 시 ‘안전벨트’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버스 내 화재가 발생했을 때 대피하는 요령을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참가자들을 태우고 달리던 대형 버스가 갑자기 장애물을 만나면서 급브레이크를 밟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있어 다행히 자리에서 튕겨나가거나 다친 사람은 없었다.
최형수 소방관은 “버스 사고가 발생하면 밖으로 탈출해야 하는데 사고 여파로 버스 문이 열리지 않을 경우가 있다. 이때는 차량 내 비치된 비상용 망치로 창문을 깨야 한다”며 “이때 주의할 점은 창문의 중앙이 아닌 모서리 부분을 강하게 내리쳐야 빨리 창문을 깰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적장애인 시설에서 장애인과 함께 방문한 지도교사는 “장애인의 재난 체험 실습이 필수 교육이기 때문에 매년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면서 “학생들이 처음에는 체험을 두려워했는데 반복적으로 오다 보니 익숙해졌다. 이런 체험을 하고 나면 평소 생활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체험의 마지막은 건물의 화재 발생 대처 요령이었다. 갑작스럽게 화재가 발생한다면 초기에는 소화기로 직접 불을 끄려고 시도하게 된다. 따라서 소화기 사용법을 정확하게 익혀두는 게 가장 중요하다. 소화기 사용 요령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 같지만 막상 화재가 발생하면 당황해 우왕좌왕하기 쉽다. 소화기를 사용할 때는 손잡이 사이에 있는 안전핀을 빼고 호스를 뽑은 다음, 불에 최대한 가까이 가서 손잡이를 누르면 분사가 된다.
소화기 사용법을 알려준 최형수 소방관이 관람객들을 향해 “소화기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물이 들어 있을까?”라고 질문하자 참가자들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최 소방관은 “물이 아니라 가루가 들어 있다. 이 가루를 이불 덮듯이 뿌려 불을 끄는 것”이라며 “소화기 한 통의 분사 시간은 10~15초이기 때문에 불이 작게 났을 때만 사용해야 한다. 만약 불을 다 끄지 못하면 안전한 곳으로 빨리 대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태원 사고 이후 응급조치 교육 문의 급증
화재 현장에서 대피할 때는 유독가스가 포함된 연기를 마시지 않기 위해 젖은 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고 이동해야 한다. 만약 물이 없다면 탄산음료, 커피 등도 위급 시에 수건을 적시는 데 사용이 가능하며 알코올 종류는 피해야 한다. 또한 화재가 난 건물에서 밖으로 이동할 때는 비상 유도등을 따라 이동하며 문을 발견했을 때는 문밖 화재에 대비해 손잡이가 뜨겁지 않은지 확인하고 대피한다.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으로 이동하고 1층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불이 있을 때는 옥상으로 가야 하며 옥상에도 불길이 있을 경우 창문과 베란다가 있는 곳에서 옷을 흔들며 구조를 요청해야 한다.
다섯 가지 코스의 재난 체험 프로그램이 끝난 후 참가자 중 일부는 ‘심폐소생술’ 실습에 참가하기도 했다. 최근 발생한 이태원 사고 등을 보며 심폐소생술을 꼭 익혀둬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어 키즈 클럽을 운영하는 회사에 다니는 민경민 씨는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위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게 됐다. 특히 심폐소생술의 경우 평소에 잘못 알고 있던 부분을 정확하게 알 수 있었고 자세도 제대로 교정받을 수 있었다”면서 “나중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이런 교육을 받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위기 상황 시 당황하지 않고 대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체험 소감을 밝혔다.
보라매안전체험관 김영도 소방관은 “이태원 사고 이후 응급처치와 심폐소생술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전화 문의가 급증했다. 하지만 오프라인 교육의 인원수가 정해져 있어 참여하지 못해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았다”면서 “심폐소생술 온라인 교육을 긴급 편성해 시민들이 온라인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시민들도 심폐소생술을 미리 배워두면 위급 상황에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
김민주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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