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로 꿈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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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임경식 ‘꿈을 꾸다22’
임경식 작가는 실업계고등학교 3학년 때 취업했다. 보통 3학년 2학기에 취업이 되는데 그해는 1학기부터 취업이 돼 18세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95년 9월 회사 선배가 군에 입대하게 돼 송별회를 마치고 친구 집으로 가기 위해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달리고 있었다. 친구 집에 거의 다 왔을 무렵 급커브 골목에 자동차가 주차돼 있는 것을 발견하고 짧은 순간이었지만 갈등했다. 자동차를 박으면 돈이 많이 깨질 것이고 자동차를 피해 오토바이를 쓰러뜨리면 뒤에 탄 친구가 다칠 것 같아서 친구를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자동차를 선택했다. 부딪히고 난 후 정신이 가물가물해졌다.
그 후 무의미한 시간이 속절없이 흘렀다. 19세 청년은 33세가 되기까지 세상과 완전히 단절돼 살았다. 옛날 친구들과는 만나지 않았다. 위로의 말이 상처가 됐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근사하게 발전하고 있는데 자신은 얼굴만 살아남아 나무토막처럼 꼼짝도 못하고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구필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발견한 그는 입에 붓을 물고 그대로 흉내 내봤다. 뭔가에 몰두하며 생기는 마음의 안정감이 좋아서 동영상을 스승 삼아 매일 그리고 또 그렸다. 1년 정도 됐을 즈음 그림 한 점이 완성됐다. 그림을 제대로 그리고 싶어서 경기도 안양에 있는 장애인 화실 소울음아트센터에 가서 그림 공부를 했다. 그는 바깥세상이 그리워서 그런지 주로 풍경을 그렸는데 화실의 그림 지도 선생님이 그에게 말했다.
“그림에 자기 자신을 표현해보세요. 관객은 작품을 통해 작가의 메시지를 읽거든요.”
우리 미래 도시의 설계도
자기를 표현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 바로 ‘꿈을 꾸다’ 시리즈다. 임경식 작가는 사고 후 자신이 어항 속에 혼자 남은 금붕어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항 속에서 금붕어를 밖으로 꺼내 자기의 꿈을 표현하기 시작하자 그림 소재가 다양해졌다. 2014년 드디어 첫 번째 개인 전시회를 열었다. 진짜 화가가 됐다는 자존감에 도전의식이 생겼다. 그 결과 2016년 그의 목표였던 세계구족화가협회 회원이 됐다.
아들의 사고 4년 전 어머니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아들을 간병할 수 없었다. 간병인을 둘 형편이 못돼 어린이집 교사였던 누나가 자신의 꿈을 접고 어머니와 동생을 보살피는 희생을 감수했다. 어머니는 20년 동안 투병하다가 눈을 감았고, 누나는 결혼을 했다. 그래서 임 작가는 아버지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아버지는 붓을 긴 막대기에 붙여 헝겊으로 단단히 묶고 물감을 짜서 동그란 접시에 간격을 맞춰 가지런히 배열한다. 그리고 아들의 붓질 높이에 맞춰 이젤 높이를 조절한다. 아들은 이 모든 과정에 끊임없이 잔소리를 한다. “너무 높아요”, “붓이 헐렁거려요. 꽉 좀 묶어요” 등등. 82세 아버지, 이제 아버지도 힘이 빠진 것이다.
그림을 1시간 정도 그리면 입술에 감각이 없어지고 목이 굳는다. 하지만 그는 붓을 놓지 않는다. 적어도 4시간은 작업해야 그리고 싶은 것을 화폭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임 작가는 올해 45세로 장애를 안고 산 세월이 더 길다. 전신마비로 누워서 천장만 볼 때는 죽음을 생각했지만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자 꿈이 생겼다. 그는 그 누구보다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 ‘가치 없는 삶은 없다’는 것이 그가 창작 활동을 통해 세상에 보내는 메시지다.
지구 환경문제가 심각해 새로운 삶터를 찾아 우주로 향하고 있는데 임 작가의 ‘꿈을 꾸다22’는 바다 시대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파란 물속에서 커다란 금붕어 등 위에 서너 살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엎드려 잠을 자고 있다. 금붕어가 아이를 재우고 있는 모습이 아주 평화롭다.
바다 중간쯤 초록 띠가 연결돼 그 위에 예쁜 집들이 있고 큰 나무들이 집들 사이사이에 놓여 있는데 초록색 나무도 있지만 빨간색 나무가 인상적이다. 한 가지 신기한 것은 금붕어 사이사이에 구름 같은 것이 있는데 그 구름 위에 집도 있고 돼지도 있고 이정표도 있다. 임 작가의 이 그림이 우리 미래 도시의 설계도는 아닐까?
방귀희 한국장애예술인협회 대표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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