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후’ 앞마당 휘젓는 ‘태권’ 전도사 중국서 태권도 박사 되고 대학에 학위과정 만들어 > 정책소식 | 정보모아
 
정책소식

‘쿵후’ 앞마당 휘젓는 ‘태권’ 전도사 중국서 태권도 박사 되고 대학에 학위과정 만들어

작성자 정보

  • 공감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btn_textview.gif



중국 대학에 태권도 학위과정 만든 서원식 박사
“태권도를 알리겠다는 목표 하나로 왔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어요. 중국어요? 처음엔 한마디도 못했죠.”
‘쿵후’ 앞마당에서 태권도를 알리고 있는 서원식 박사가 처음 중국 땅을 밟은 것은 16년 전인 2008년이다. 서울에서 태권도장 6곳을 운영할 만큼 잘나가던 시절이었다. 그런 그가 가족까지 남겨둔 채 혈혈단신 중국에 간 이유는 단 하나, 태권도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인맥도 자본도 없었다. 기본적인 소통조차 되지 않을 만큼 중국어는 한마디도 못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우선 말부터 배워야 했다. 그다음 사업을 하려면 현지 네트워크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학위 취득에 도전했다. 국내에서 이미 태권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던 그는 중국 칭화대에서 다시 태권도로 박사과정을 밟았다. 나이는 1등, 체력은 꼴찌, 언어는 유치원생 수준이었지만 열정만은 우등생이던 그는 기어코 박사학위 취득에 성공했다. 중국에 온 지 8년 만이었다. 칭화대 104년 역사상 최초의 태권도 체육학 박사의 탄생이었다.
이후 그는 ‘재중 한국 태권도 시범단’을 만들고 베이징에 프리미엄 태권도 도장을 설립하는 등 중국 내 태권도 확산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했다. 특히 지난해 중국 대학 최초의 태권도학위 과정 설립을 이끌어낸 것은 그간의 노력을 증명하는 최고의 ‘사건’이었다. 중국 수도체육대학 무술 및 민족전통스포츠학과 안에 태권도국제인재전문반을 개설하기로 업무협약(MOU)을 맺은 것이다. 수도체육대학은 베이징 내 시립대학 중 유일한 체육대학으로 숱한 중국 국가대표 스포츠 선수를 배출한 명문이다. 중국 무술의 본거지에서 태권도국제인재전문반을 설립한 것은 중국에서 태권도를 전공할 수 있는 길이 생겼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2025년부터 정식 수업이 개설된다.
이외에도 서박사는 한국 대학과 교류 프로그램을 만들고 국제 태권도 시범단을 창설하는 등 하고 싶은 일이 많다. 머릿속에 ‘전 세계 태권도 지도’를 그리는 동안 그의 꿈도 진화했다. 태권도를 알리는 것에서 나아가 태권도로 세계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는 태권도가 한중 양국의 우정을 돈독히 하는 것은 물론 세계평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처음 중국 진출을 결심한 계기가 뭔가?
한국에서 태권도 도장을 여섯 곳이나 운영할 만큼 안정적으로 사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TV를 봤는데 미국에서 태권도를 알리고 있는 이준구 씨의 모습이 나왔다. 1956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워싱턴에 첫 태권도 도장을 차린 ‘태권도계의 대부’다. 그분이 미 하원에까지 태권도 도장을 여는 것을 보면서 무릎을 쳤다. 다른 나라에 가서 태권도로 국위선양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그 순간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이후 미국을 오가며 시장을 살폈다. 국내 도장 운영을 병행하기엔 미국은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러던 중 TV에서 2008 베이징올림픽 이후 중국이 경제적으로 크게 부상할 거라는 뉴스를 봤다. 미국 대신 중국에 가야겠다고 생각을 틀었다.

당시 중국에선 태권도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나?
태권도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정식종목이 됐다. 당시 중국 천중 선수가 2000년, 2004년 연속으로 금메달을 따면서 중국 내에서 태권도 열기가 불기 시작했다. 하지만 선수 육성 중심으로 태권도가 발전한 것이었고 아직 대중적으로 보급되진 않았을 때다. 미개척의 땅이었기에 오히려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

중국에 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뭔가?
처음 중국에 간 것이 마흔한 살 때다. 일단 가긴 했는데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무엇보다 중국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 ‘니하오(안녕)’조차 쓸 줄 몰랐으니까. 일단 언어부터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해 대학교 랭귀지 속성반에 등록했다. 학생 중 나이가 제일 많았다. 밥 먹고 자는 시간 빼고 공부만 했다. 8주 정도 지나니 조금씩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속성반을 졸업하고 다른 수업을 계속 들었다.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해진 이후부턴 사업에 대해 고민했다. 당시만 해도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선 ‘?시(관계)’가 중요하다는 얘기가 팽배했다. 중국 내에서 네트워크부터 구축해야겠다 싶었다.

박사과정을 밟은 것 역시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고?
맞다. 인맥을 쌓기 위해 칭화대 체육부에 들어갔다. 칭화대에서 박사과정에 외국인 학생을 받은 것이 개교 역사상 처음이라고 했다. 외국인을 위한 교육 시스템이 전혀 갖춰지지 않았다. 3년 내 학위 취득을 목표로 잡았는데 한 달 만에 고비가 왔다. 특히 토론수업이 힘들었다. 토론주제조차 이해를 못하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하겠나. 담당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내 사정을 말하고 주제를 미리 받았다. 내가 할 말을 적어놓고 달달 외웠다. 15분이면 끝날 발언이 30분 이상 걸렸다. 토론이 아니라 그냥 종이를 읽은 수준이었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교수와 학생들은 끝까지 내 말을 들어줬고 발표가 끝난 이후엔 박수를 쳐줬다. 더 눈물이 날 것 같았다(웃음).

이후엔 좀 편해졌나?
그럴 리가. 중국을 떠나야 하나 생각이 들 만큼 학위를 따는 건 쉽지 않았다. 현지인들조차 5~6년 걸리는 일을 3년 만에 하려니 지도교수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한다’며 꾸짖었다. 그러다 어렵게 논문을 발표할 기회를 얻었는데 또 지도교수의 말을 안 들었다. 한중 간 체육에 관한 비교연구를 하라는 조언을 무시하고 태권도에 관해 논문을 쓴 거다. 교수가 태권도에 대해 아는 게 없어 도와줄 수 없다고 했지만 태권도의 세계화 방안을 주제로 한 논문을 발표했고 결국 박사학위를 받았다. 칭화대 104년 역사상 첫 외국인 학생의 체육학 박사학위 취득이었다.

학업 중에도 태권도를 알리는 데 힘썼다고.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칭화대 본과생과 석·박사 연구생을 대상으로 1년간 태권도를 가르쳤다. 외국인 학생이 태권도 강의를 한 것도 이 학교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학위를 취득한 이후엔 베이징대에서 겸임교수로 태권도를 가르쳤다. 3년간 강의를 했는데 두 학교에서 가르친 학생만 총 1000명에 이른다.

중국에서 태권도 시범단을 만든 것(2021년)도 최초다.
시범단 창설은 오랫동안 꿈꾸던 일이다. 중국에선 연중 한중 문화교류 행사나 중국 내 한국문화 행사가 무척 다양하게 열린다. 그때가 태권도를 알릴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다. 그런데 한중문화협회에서 활동하면서 내가 본 모습은 K-팝 공연이나 마술쇼가 대부분이었다. 기회를 날리는 것 같아 너무 아쉬웠다. 월세를 못내 전기가 끊기는 상황에서도 사비를 털어가며 태권도 시범단을 운영해온 이유다.

중국에서 태권도 학위과정을 만든 이유는 뭔가?
태권도 시범단이 코로나19 기간에 와해됐다. 단원들의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조직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주중한국대사관, 태권도진흥재단, 세계태권도연맹 등에 시범단 창단을 요청했지만 지원해주는 곳이 없었다. 단원들의 미래를 보장해주면서 시범단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 끝에 생각한 것이 태권도 학위과정을 만드는 거였다. 이를 위해 내가 대표로 있는 북경원식국제문화유한공사와 수도체육대학 간 업무협력을 맺고 태권도국제인재전문반을 만든 거다. 정식 학과는 아니지만 졸업 후 학사는 물론 석·박사학위도 취득할 수 있다. 수도체육대학의 특기 장학생으로 선정된 학생들은 학비 및 기숙사 비용을 전액 지원받는다. 태권도학과를 통해 태권도 인재를 육성하고 이들을 주축으로 전 세계인으로 구성된 태권도 시범단을 만드는 게 궁극적 목표다.

어떤 학생들이 들어왔나?
지난해 처음 선발한 학생은 18명이다. 몽골, 파키스탄, 카자흐스탄, 네팔, 베트남, 태국, 인도 등 국적이 다양하다. 중국어를 먼저 배우고 내년에 정식으로 학기에 들어간다. 전 세계에서 태권도 인구가 가장 많은 중국에서 누구보다 태권도를 잘 알릴 수 있는 이들이 되는 것이다. 나아가 각자의 모국에서 태권도 전도사로 활동하게 될 것이다. 학생들은 중국어 수업이 끝난 뒤엔 매일 왕복 세 시간 거리의 태권도장을 오가며 훈련을 하고 있다. 태권도로 자신의 삶을 꾸리고 태권도를 더 널리 알리겠다는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다. 태권도를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세계태권도연맹 가입국이 213개국인데 213개국의 태권도 인재를 끌어들이는 것이 내 꿈이다.

태권도가 그렇게 좋은가?
평생 태권도를 통해 삶의 좋은 경험들을 쌓았다. 중국에서도 태권도로 많은 인간관계를 맺고 사람들을 가르치고 존중을 받았다. 버릇없는 아이들도 예의바르게 만들어주고 신체를 튼튼하게 단련시켜주고 자신감까지 심어주는 것이 태권도다. 외국에선 태권도를 고급 스포츠, 신사적인 운동으로 생각한다. 그만큼 예의, 극기, 절제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태권도를 하면 자세가 달라지고 생각이 변한다. 태권도는 나를 바꾸고 관계를 바꿀 수 있는 스포츠다.

큰 이익이 따르지 않는 일에 많은 걸 바쳤다.
한중 우정을 도모하는 데 태권도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시작은 중국이지만 전 세계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국가 간 우정을 다지고 세계평화를 도모하는 자리에 태권도가 중심에 설 수 있다는 건 무척 가치 있는 일이다. 당장 돈이 되지 않더라도 전 세계인이 태권도를 보며 즐거워하고 태권도를 즐기는 상상을 하면 행복하다. 중국에서 활동하면서 책임감까지 더해졌다. 태권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끝까지 해볼 생각이다.

조윤 기자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최근글


  • 글이 없습니다.

새댓글


  • 댓글이 없습니다.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