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으로 편리하고 안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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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5일 서울 중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2022 공공디자인 페스티벌’에서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4학년 학생들이 ‘서로서로 놀이터’의 시소와 풍선을 체험하고 있다.
‘공공디자인 페스티벌 2022’ 열린 문화역서울284
10월 5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광장에는 흰색, 주황색, 파란색 등 세 가지 색깔의 선이 바닥에 그려져 있었다. 흰색은 서울역, 주황색은 RTO(아르티오), 파란색은 ‘길몸삶터’로 안내하고 있었다. 길몸삶터는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리는 ‘2022 공공디자인 페스티벌’의 주제전시다.
공공디자인 페스티벌은 일상 속 공공디자인의 역할과 발전 가능성 모색을 통해 우리 사회를 안전하고 편리하게 만들기 위한 고민과 그에 따른 실천의 결과물을 모은 행사다. ‘일상에서 누리는 널리 이로운 디자인’이라는 부제처럼 놀이터와 시장, 정류장, 이웃, 도시 등 우리 주변의 공공영역에서 활용될 수 있는 디자인을 고민한 작품이 전시된다. 정부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과 함께 이날부터 10월 30일까지 문화역서울284와 성수동 문화공간 등 전국 80여 곳에서 주제전시와 토론회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우수한 공공디자인 사례를 공유한다.
▶서울역광장에 그려진 색깔 유도선이 ‘2022 공공디자인 페스티벌’ 전시관을 안내하고 있다.
▶㈜두성종이는 종이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투리를 압착한 소재로 의자를 만들었다.
‘처음 관계 맺기’ 놀이터 통해 공공성 조명
공공디자인의 대표 사례인 색깔 유도선(컬러 레인)은 혼란스러운 고속도로 분기점과 나들목 갈림목에서 명확한 차로 유도 안내를 위해 도입됐다. 특정 방향의 주행 차선을 분홍색과 녹색의 선으로 운전자에 경로를 명확히 안내해 갑작스러운 차로 변경 사고를 예방하고 있다.
문화역서울284 중앙홀로 들어서자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4학년 50여 명이 단체로 관람하고 있었다. 주제전시 감독을 맡은 안병학 교수와 큐레이터로 참여한 석재원·김예니 교수가 제자들을 초대한 것이다. 안 교수는 “정부 주도로 공공디자인을 우리 일상에 확산시키기 위한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오랫동안 했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그 성과를 묶어내기 위한 작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석 교수는 “여기 있는 게 공공디자인의 결과물은 아니고 예술가와 건축가, 디자이너들이 공공디자인이라는 개념을 확장해본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앙홀에는 ‘서로서로 놀이터’라는 간판 뒤로 형형색색의 시소와 커다란 풍선이 놓여 있었다. ‘서로 협력을 통해 놀이의 즐거움을 경험하는 체험 공간’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풍선은 한 사람이 밀면 옆 사람이 튀어나간다. 시소는 혼자서는 이용할 수 없는 기구다.
석 교수는 “사람마다 공공디자인에 대해 생각하는 게 다르다. 선입견을 없애고 처음(공공성)으로 돌아가기 위해 가족 밖의 사람을 처음 만나 관계를 맺는 놀이터를 재현했다”고 했다.
‘서로서로 놀이터’의 전시물은 마음껏 만지거나 탈 수 있다. 교수들이 먼저 풍선에 기대며 시범을 보이자 주저하던 학생들도 짝을 이뤄 시소를 타고 풍선에 몸을 부딪쳤다. 교수들은 “풍선을 밀거나 퉁퉁 튀기는 건 괜찮은데 풍선에 올라가면 떨어질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학생들이 낙엽, 나뭇가지, 수피 등 다양한 재료들로 만든 ‘곤충 호텔’을 보고 있다.
이윤·가치 함께 추구한 기업도 참여
‘서로서로 놀이터’ 옆 ‘두루두루 시장’은 벼룩시장 같은 분위기였다. 실제로 여러 기업이 자신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석 교수는 “공공디자인을 관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에 다 공공성이 있다. 이윤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의미도 추구하는 기업을 작가로 초대했다”고 했다.
최근 재화나 용역을 생산·유통·판매하는 일에 친환경, 공정무역, 지속가능성 등의 가치를 담는 기업이 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지속 가능한 생산과 판매로 변화를 만들어가는 28개 기업이 참가했다.
중견기업과 대기업이 작가로 참여한 전시실도 있었다. ‘지구를 위한 더 나은 선택지’는 40년 동안 세계 주요 제지사들의 다양한 종이를 국내에 소개해온 ㈜두성종이 디자인연구소가 기획했다. 친환경 용지의 특징, 자투리 재사용 아이디어, 재활용을 돕는 제작 방식 등 다양한 사례를 연출했다.
‘프로젝트 100: 종이의 여정’ 전시실은 누런 색깔의 둘둘 말린 재생지로 가득했다. 현대백화점에서 발생한 폐지를 수집해 다양한 실험을 거쳐 만든 폐지 함유율 100%의 재생지였다. 석 교수는 “재활용한 종이를 30% 이상만 넣어도 ‘재생지’라고 할 수 있다는데 현대백화점은 자신들이 사용한 종이를 최대한 재활용하자는 목표로 100% 재생지를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기존 쇼핑백 대신 100% 재생지 쇼핑백을 도입한 현대백화점은 연간 약 8700톤의 폐지로 1만 3200그루의 나무를 보호하고 3298톤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공공의 정원’ 전시실에 들어서자 화려한 색상의 선인장들이 눈길을 끌었다. 1990년대 우리나라에서 화훼 수출 작물로 전략 개발했던 ‘컬러 접목 선인장’이다. 이소요 작가의 ‘관상용 선인장 디자인’은 컬러 접목 선인장의 역사, 동식물 접목과 이식 기술, 인간·비인간 생물의 공존에 대해 짚어보는 다큐멘터리 설치 작품으로 인간이 야생에서 식물을 얻어 관상용으로 길들이고 상품화하는 사례를 보여준다.
▶석재원 교수(앞쪽)가 현대백화점이 만든 폐지 함유율 100% 재생지의 가치를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자연과 공존하는 디자인 ‘곤충호텔’
김예니 교수는 “원래 선인장은 초록색밖에 없는데 이 선인장은 수출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빨간색이나 노란색 부분을 접목한 것”이라며 “인간이 어떻게 자연을 이용하고 변경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작은 생명을 위한 디자인’ 전시실에는 낙엽, 나뭇가지, 수피 등 다양한 자연물과 벽돌, 기와 등 인공 구조물이 한 줄로 전시돼 있었다. 이런 재료들로 만든 ‘곤충 호텔’이 집 모양으로 놓여 있었다. 2022년 1월 한반도 남부 양봉 농가에서 월동하던 꿀벌들이 집단으로 자취를 감췄다. 이 사건은 여러 언론에 ‘꿀벌 실종 미스터리’로 보도됐다. 실종 원인은 들쭉날쭉한 이상기온 때문이었다. 심각한 기후위기에 농약과 살충제로 생존을 위협받는 작은 생명이 머물다 갈 수 있는 쉼터가 ‘곤충 호텔’이다.
‘모두의 민원’ 전시실은 주민센터를 재현해놓은 듯한 공간이었다. 가운데에는 각종 민원서류를 작성하는 서식대가 놓여 있고 벽에는 출생부터 사망 신고에 이르기까지 인생 주기에 따라 다양한 민원서류로 가득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민원 서식을 나란히 놓고 보니 통일성 없다는 게 한눈에 들어왔다. 서식마다 글자 크기도 제각각이었다. 어떤 서식은 연락처를 쓰는 칸은 엄청 큰데, 주소 칸은 지나치게 작아 작성하기 불편해 보였다.
▶이경수·신주화 작가가 새롭게 디자인한 서식(위)은 복잡하고 제각각인 현재 서식(아래)을 체계적으로 간결하게 정리했다.
‘모두의 민원’은 가장 인상적인 작품
반면 이경수·신주화 작가가 새롭게 디자인한 서식은 복잡하고 혼란스럽던 양식들을 체계적으로 간결하게 정리했다. 석 교수는 “이 작업이 더욱 멋진 건 레이아웃(배열)이랑 조판만 통일한 게 아니라 일상에서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한자 용어까지 누구나 읽고 쓰기 편하게 생활어로 바꿔놓았다는 점”이라고 했다. 동준모 작가는 수월한 서류 작성을 위해 보다 나은 구조의 서식대를 설계, 제작했다.
심규민(23) 학생은 오늘 본 작품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모두의 민원’을 꼽았다. 그 이유에 대해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지점을 고치겠다는 주제가 명확했다”며 “다른 작품들도 집중한 지점은 다르지만 사람들이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을 위한 주제’를 갖고 한 작업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디자인은 그 자체로 공적 가치 지향의 행동이자 태도”라며 이번 전시가 디자인의 공적 가치와 공공성에 대해 질문하고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희망했다.
글·사진 원낙연 기자
▶한국도로공사의 ‘통합형 다차로 하이패스 갠트리’│ 문화체육관광부
2022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
한국도로공사 ‘선순환 체계’ 수상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과 함께 연 ‘제15회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 공모에서 한국도로공사의 ‘공공디자인 선순환 체계’가 대상(국무총리상)을 차지했다. 선순환 체계는 국민을 대상으로 문제점을 공모하고 고객 디자인단의 의견을 바탕으로 개선사업을 하는 국민참여형 디자인정책이다.
고속도로에서 차량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요금소를 통과하는 ‘통합형 다차로 하이패스 갠트리’(수평 철 구조물 중간에 지지대를 내려 다리 모양으로 만든 구조물), 휴게소에서 효율적 공간 이용을 위한 ‘휴게소 통합 안내 및 동선 유도 디자인’ 등이 대표 사례다.
사업 부문 최우수상은 서울 동작구청의 ‘주민 체감형 도시 틈새 공간 범죄예방디자인 사업’과 서울시 유니버설디자인센터의 ‘유니버설디자인 적용지침 고도화 사업’이 받았다. 우수상에는 건축사사무소 유어예의 여수 구봉초등학교 ‘학교 숲 조성’, 건축사사무소 스튜디오 조조와 당진시 신평면 매산2리 마을회의 ‘마을회관 및 경로당 신축’ 등 6개 사업이 선정됐다.
연구 부문 최우수상에는 팍스아이앤디 신재령 씨의 ‘정서적 적응성 환경 특성 기반 산업유산 재생(IHR) 공간디자인 전략 연구’가 선정됐다. 우수상은 인천가톨릭대 장주영 씨 등 3명이 연구한 ‘서울·경기지역 고령자 서비스 지원주택 유형 특성에 관한 연구’, 특별상은 홍익대 심윤서 씨의 ‘리질리언스 관점의 바이오필릭 공공공간에 관한 연구’가 뽑혔다. 수상작은 공공디자인대상 누리집(publicdesignprize.imweb.me)에서 볼 수 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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