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시골이 청년들로 북적북적 불가능에 도전한 청년마을 성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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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문을 연 한산 디지털노마드센터 앞에 김혜진 공동체장(왼쪽부터), 김수영 디자이너, 이동관 개발본부장이 섰다. 오른쪽 건물은 한산유림회관 커뮤니티호텔H의 공용 주방
‘청년마을’로 변신한 충남 서천 한산면
행정안전부는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 충청남도·서천군과 함께 한산면에 ‘삶기술학교’ 한산캠퍼스를 조성했다. 2018년 도시 청년 32명을 지역에 정착시킨 전남 목포 ‘괜찮아마을’의 후속 사업으로 취업난으로 힘들어하는 도시 청년들이 인구유출로 고민하는 지역에 정착할 수 있게 지원함으로써 청년도 살리고 지역도 살리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계획이었다.
버려진 여관 고쳐 마중물 공간으로
9월 27일 한산면의 ‘커뮤니티호텔H’에 들어서자 따뜻한 조명 아래 감각적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라운지와 공용 주방이 나타났다. 한때 한산모시를 거래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상인들로 북적였던 여관이었지만 10년 넘게 방치되다 호텔로 재탄생해 2020년 말 문을 열었다.
버려진 서광장여관을 주민들과 함께 직접 고쳐 호텔로 개조한 이들은 삶기술학교를 운영하는 청년들이다. 삶기술학교 출신 청년들이 머물 거주공간과 숙박시설이 부족하자 행안부의 ‘지역자산화 지원사업’을 통해 청년들이 한달살이하는 임시 거주지와 한산면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숙박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삶기술학교 한산캠퍼스 김혜진(31) 공동체장은 “2017년부터 한산모시문화제 청년기획단으로 활동하다 행안부의 ‘청년마을 사업’을 알게 됐다”며 “천연섬유 모시와 전통명주 소곡주 같은 한산면의 다양한 전통 기술이 청년 기획자 입장에선 새롭고 매력적으로 느껴져 주민들과 함께 삶기술학교를 제안했는데 감사하게도 선정됐다”고 말했다.
▶커뮤니티호텔H의 공용 주방
배출한 200명 중 20여명 정착 시도
삶기술학교에 입학한 청년들은 버려진 빈집을 고쳐 살면서 모시와 소곡주를 비롯한 지역 자원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실험을 이어왔다. 3년 동안 배출한 204명 가운데 20여 명이 지역 정착을 시도했다. 사진관 겸 기억공간 ‘기억상사’와 마을 그림교습소 ‘그림한담’을 열었고 인근 국립생태원에 취직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15명만 남아 있다.
김 공동체장은 “그 친구들이 정착할 집이 없었다. 가게도 임대는 거의 없고 대부분 매매로 나오는데 도시와 비교해도 싼 편이 아니었다. 10여 곳의 공간을 임대하기 위해 마을을 100번 정도 왔다 갔다 했을 정도”라고 했다.
삶기술학교 사무실도 구하지 못해 시작도 못 해보고 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한산향교의 유림들이 만든 한산유림회관의 문을 두들겼다. 며칠을 설득한 끝에 ‘공간을 쓰는 대신 한산면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일을 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복도 한쪽을 쓸 수 있었다.
김 공동체장은 “청년들이 생활하면서 활동할 마중물 역할의 공간이 필요한데 없으니까 우리가 직접 호텔을 짓게 됐다. 저희만의 공간을 가지면서 주민들도 ‘얘네들이 진짜 오래 있을 생각이구나’ 인정해주셨다”고 말했다.
1인실 7개와 2인실, 6인실 등 모두 9개의 숙박공간은 주말에는 손님이 꾸준하지만 평일이 문제다. 그는 ‘한산 디지털노마드센터’와 연계한 ‘휴가지 원격 근무’(워케이션) 프로그램에 기대를 걸고 있다. 충남벤처협회와 협약(MOU)을 맺고 10월부터 충남 지역 벤처기업 직원들이 4박 5일 동안 커뮤니티호텔H에서 머물며 한산 디지털노마드센터에서 일하는 워케이션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10년 넘게 방치된 충남 서천군 한산면의 서광장여관을 삶기술학교 청년들이 직접 고쳐 2020년 말 문을 연 ‘커뮤니티호텔H’
▶커뮤니티호텔H의 1인실
디지털노마드센터 워케이션에 기대
올해 7월 문을 연 한산 디지털노마드센터는 유림회관 바로 옆에 있었다. 서천군이 2021년 10월 행안부 ‘지역사회 활성화 기반 조성사업’에 뽑혀 유림회관 리모델링과 함께 새롭게 지은 공간이다.
1층은 디지털 노마드(유목민)를 위한 스마트 공유 사무실로 접이식 문(폴딩 도어)을 개방하자 황금색 들녘이 펼쳐졌다. 2층에는 디자인실, 미디어실, 프로듀싱실 등 여러 작업 공간에 영상과 음악 등 멀티미디어 제작과 화상회의가 가능한 장비가 갖춰져 있었다.
디지털노마드센터뿐 아니라 마을 어디에서나 공공 무선 인터넷망(와이파이)을 이용할 수 있어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업무가 가능했다. 디지털노마드센터장을 겸하고 있는 김 공동체장은 “삶기술학교에 오는 청년들 대부분 디지털 노마드 친구들인데 유림회관에서는 인터넷도 안 됐다. 이번에 스마트타운 사업을 통해 한산면 전체에 공공 와이파이를 설치했다”
디지털 노마드 청년뿐 아니라 주민들도 이 공간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도시재생 사업을 위한 한산면 주민자치회 세미나와 청년마을 사업 설명회도 여기에서 열렸다. 한산면 거리에는 ‘한산 디지털노마드센터 그랜드 오픈’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청년들이 불어넣는 변화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가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었다.
▶한산 디지털노마드센터 1층에는 스마트 공유 사무실, 2층에는 디자인실, 미디어실, 프로듀싱실 등 여러 작업 공간이 있다.
1500년 전통 가양주에 매력 느껴
한산 디지털노마드센터 1층에는 술병들이 전시돼 있었다. 언뜻 보면 와인처럼 생겼지만, 주민의 전통주 제조 기술과 청년의 아이디어가 만나 새롭게 탄생한 한산소곡주였다.
김 공동체장은 “청년들이 한산면에 가장 큰 매력을 느꼈던 게 1500년 역사를 가진 전통주 메이커 도시라는 점”이라고 했다. “마을 주민 대부분 가양주 방식으로 소곡주를 집에서 담그시거든요. 한산면에만 68개의 허가된 양조장이 있어요. 여기 와서 소곡주라는 술을 처음 접하고 ‘되게 매력적이다’, ‘한번 도전해봐도 좋겠다’고 생각했죠.”
예로부터 뛰어난 맛과 품질로 앉은뱅이 술이라고도 불린 한산소곡주는 역대 대통령들이 국빈을 위해 만찬주로 대접했다. 청년들은 지역의 전통자원을 단순하고 담백한 현대 감각을 중심으로 시대적 흐름에 맞게 재해석하기 위해 노력했다. 생주, 숙성주, 멸균주, 증류주 등 네 가지 소곡주를 각각 다른 색깔의 병에 담아 ‘화이트’, ‘블랙’, ‘골드’, ‘블루’ 등으로 명명했다. 가격도 2만~7만 원대로 다양하게 구성해 어르신뿐 아니라 최근 전통주에 관심을 갖는 젊은 층의 수요까지 노렸다.
“저희가 2017년 한산면에 처음 왔을 때 주민이 2800명 정도 살고 계셨는데 지금 2500명이에요. 5년 만에 300명이 줄어들 정도로 저출생 고령화된 사회인 거죠. 한산소곡주의 매력과 우수성을 알려 쇠퇴하고 있는 지역 산업의 발전을 이루는 게 목표입니다.”
▶한산 디지털노마드센터 1층에는 스마트 공유 사무실, 2층에는 디자인실, 미디어실, 프로듀싱실 등 여러 작업 공간이 있다.
▶김혜진 공동체장이 각각 다른 색깔의 병에 담은 4가지 소곡주를 설명하고 있다.
주민과 소곡주 유통 법인 창업
2021년 5월부터 1년 동안 온라인으로 소곡주를 판매한 매출이 3억 원에 이른다. ?특히 추석, 설날 등 명절에 네 가지 와인을 여러 구성으로 기획한 선물 세트가 잘 나간다.
이런 반응에 확신을 갖게 된 주민과 청년들은 최근 소곡주 전국 유통을 위한 농업회사법인 ‘슬로커’를 만들었다. 이날 한산 디지털노마드센터 2층에서 슬로커 개발·디자인 회의가 한창이었다.
기술 책임자인 이동관(45) 개발본부장은 서울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사업을 하다 2년 전 서천으로 귀촌했다. 올해 7월 한산면에서 청년들을 우연히 만나 슬로커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그는 “소곡주가 이곳에서만 생산하고 소비되는 정도인데, 온라인 납품을 통해 전국으로 직배송하는 서비스를 목표로 삼고 있다. 새로운 맛을 추구하고 새로운 가치를 형성하는 젊은이들이 전통주를 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산 양조장을 바탕으로 기업 이미지(CI)와 브랜드 이미지(BI) 작업 중이라는 김수영(49) 디자이너는 “젊은 층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전 직장 동료였던 김 본부장으로부터 이곳 이야기를 계속 전해 들었다는 그는 “디지털노마드센터가 새롭게 생겼고 좋은 취지의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해서 한 달 전 한산면으로 왔다. 예술가나 창작자는 시골에서 할 수 있는 게 훨씬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글·사진 원낙연 기자
▶ 인스타그램
청년마을 27곳 운영
2018년 처음 시작한 ‘청년마을 사업’은 올해 신규 12곳을 포함해 전국 27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올해 선정된 12개 청년마을은 전국 133곳이 지원했으며 11:1의 경쟁률을 뚫고 최종 선정됐다. 사업비 2억 원이 지원되고, 이후 사업성과 등을 평가해 최대 2년 동안, 연 2억 원씩 추가 지원된다.
올해 선정된 청년마을을 살펴보면 개성 있는 지역 자원과 특색 있는 소재를 가진 청년사업이 집중 발굴됐다. 경남 함양군 청년마을 ‘고마워 할매’는 노인 증가와 청년 이탈이라는 함양의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해 할머니와 청년이 함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할머니의 음식 비법을 지역관광 콘텐츠로 발전시키고 청년과 지역민을 연결하여 세대 간 공감을 돕는다.
강원 영월군은 자급자족하는 삶과 마을,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지속 가능한 농업’(퍼머컬처)을 도입하고, 경주시 감포읍 ‘가자미 마을’은 대표 자원인 가자미로 식당을 운영하며 청년들이 직접 메뉴를 만들고 홍보·디자인하는 과정을 제공한다.
근대문화가 살아있는 전북 군산시는 양조장이 있던 말랭이 마을에 청년이 주도하는 ‘술 익는 마을’을 만들고, 전남 강진군 청년마을은 외지 청년과 현지 청년을 모집해 빈 점포를 재구조화하고 지역 자원을 새롭게 해석하는 활동을 펼친다.
강원 태백시와 경남 하동군의 청년마을은 지역의 문화콘텐츠를 정보통신(IT) 기술과 접목해 기록으로 남기고 지역 살이 경험을 관광자원으로 만드는 사업을 추진한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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