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를 관통하는 자학과 반항의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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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을 필두로 케이팝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팝 음악’으로써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다 다양한 장르로 케이팝의 확장이 필요하다. 정책브리핑은 케이팝의 발전과 음악감상의 이해를 돕기 위해 대중음악의 다채로운 장르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무렵 청춘을 보낸 세대를 아우르는 용어 ‘X세대’는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자주 언급되곤 했다.
한국의 X세대 경우 개성을 추구하는 양상을 보였고 미국에서는 MTV와 함께 성장한 세대였는데, 그러니까 베이비붐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 중간에 걸쳐 있었다.
그 무렵 미국은 세금 감면을 비롯 학교 졸업 이후 노동 시장의 진출이 수월했기 때문에 경제 호황과 실업 회복의 시기이기도 했다. 때문에 개인적 취향을 우선시하는 젊은 인텔리들이 등장했고, 이를 ‘여피(yuppie) 족’이라 칭했다.
한편으로는 베이비붐 세대에 아낌없이 쏟아진 지원 이후 X세대에게 남겨진 것이 별로 없었다.
당시 MTV에서 방영했던 애니메이션 <비비스와 벗헤드>처럼 특정한 삶의 목표없이 게으르게 소파에 엎어져 MTV나 시청하는 이들은 사회에 불만을 가지거나 혹은 무관심했으며, 진지한 어른이 되는 것을 부정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는 영화 <청춘 스케치>, 그리고 <점원들>에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시대적 성향들은 결국 음악으로 표출되곤 했다. 암울하고 냉소적이었던 이들이 성장하면서 지켜 봐왔던 팝송들은 지나치게 낙천적이거나 한심해 보였고 무표정한 한낱 광고 쪼가리에 지나지 않다.
마냥 행복한 척하는 대중음악들이 바보 같아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X세대는 사촌의 펑크 컬렉션, 그리고 형의 메탈 컬렉션을 뒤지기 시작했고 그것들을 뒤섞어냈다.
X세대는 단순히 70년대 펑크의 소비자가 아닌 새로운 창작자가 됐고 이후 랜시드, 오프스프링, 그린 데이 등의 펑크 밴드들이 새롭게 주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곡에 개인적인 내용을 다루거나 혹은 격렬하고 파괴적인 밴드들 또한 그 무렵 인기를 끌었다. 라디오헤드와 너바나의 일련의 자학적인 곡들이 인기를 얻었고 이것들은 표면적으로는 X세대를 대표하는 음악들인 냥 지정됐다.
90년대에 가장 기발한 예술가 벡(Beck)의 널리 알려진 히트곡 역시 ‘패배자 찬가’가 되어버린 노래 ‘Loser’였다. 정작 밴드 당사자들은 한 세대를 대표한다는 꼬리표가 붙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사이프레스 힐의 우드스탁 94 페스티벌 실황을 들어보면 인트로에서 사람들이 자신들을 X세대라 부르는 것에 대해 강하게 거부하는 코멘트를 남기기도 한다.
이 노래들은 개인의 문제를 꿰뚫어보는 한편 타락한 기성세대에 대한 리서치가 가능할 정도로 절망적이고 민감한 주제들을 다뤄내고 있었다.
너바나를 비롯 시애틀 구석구석에서 자기파괴적 성향의 곡들이 탄생했다. 앨리스 인 체인스는 인간의 고통스러운 삶과 감정에 대해 일관되게 노래했고 펄 잼은 부모 세대를 부정했다.
이 음악들은 바로 이전 세대를 대표하는 메탈만큼 공격적이었지만 메탈의 화려한 테크닉과 치장은 제거됐고 보다 현실적이며 섬세하고 절망적인 내용들이 두드러졌다.
시애틀 사운드가 한참 절정의 시기를 지나고 있을 무렵,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은 자살했고 이 열기가 조금은 수그러들었을 때 앨리스 인 체인스의 레인 스탤리가 약물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십 수년이 지나 어느덧 X세대가 중년이 됐을 무렵에는 불현듯 사운드 가든의 크리스 코넬이 자살했다.
시애틀의 일련의 흐름과는 별개로 90년대에 접어들면서 공격적이고 반사회적인 음악들이 메인스트림의 수면 위로 떠오르곤 했다. 이는 아마도 X세대의 기본적인 기질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와 정부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밴드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 그리고 인간 혐오를 기반으로 내면의 공격성을 적나라하게 끄집어냈던 나인 인치 네일스 모두 아이러니하게 대형 음반회사에서 앨범을 발매했다.
이들이 만든 곡들은 반사회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어쨌든 X세대들을 대상으로 한 비지니스는 쏠쏠했기 때문에 윗 세대들에게 있어 이는 팔아먹기 수월한 썩 괜찮은 상품이었다.
새로운 1000년이 시작되기 직전의 뒤숭숭함, 그리고 점차 빨라지는 사회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절망에서 비롯된 비관적 성격이 분명 있었지만 의외로 X세대는 집단 총격에 대한 심각한 두려움 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마지막 세대이기도 했다.
90년대는 이제 30년 전의 일이 되어버렸고 X세대로 정의되는 것들은 모조리 유물 취급을 받고 있다. 물론 펄 잼과 나인 인치 네일스는 여전히 대규모 투어를 진행하고 있으며, 2010년대 이후부터 너바나의 티셔츠는 하나의 레트로 상품으로써 꾸준히 팔려 나가고 있다.
이는 모든 세대에게 적용되는 말이겠지만 자신과 다른 세대를 이해하는 일이 어려울 수는 있어도 적어도 다른 세대의 음악을 즐기는 것은 매우 쉽고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X세대의 불씨가 점차 꺼져갈 무렵에는 마치 이런 어두운 음악들에 대한 반작용처럼 예쁘게 꾸민 외모의 보이 밴드, 아이돌 그룹의 수가 점차 증가하기 시작했다.
항상 자신들을 피해자라 생각해온 X세대는 새로운 시대에 등장한 보이 밴드들을 보고는 다음 세대를 낙담하기 시작했다. 기성질서를 거부해온 이들이 다음 세대 또한 마찬가지로 거부하고 있는 셈이다.
X세대는 베이비붐 세대들에 비해서는 인구 수가 적었고, 밀레니얼 세대들에 비해서는 정보가 적었다. 어느 X세대가 이렇게 한탄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우리는 언제나 약자였고, 항상 약자가 될 것입니다. 불공평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아는 전부입니다”
◆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다수의 일간지 및 월간지, 인터넷 포털에 음악 및 영화 관련 글들을 기고하고 있다. 파스텔 뮤직에서 해외 업무를 담당했으며, 해외 라이센스 음반 해설지들을 작성해왔다. TBS eFM의 음악 작가, 그리고 SBS 파워 FM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록밴드 ‘불싸조’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samsicke@hanmail.net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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