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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윤리, 사람이 문제인가? 환경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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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다연 극동대학교 교수
임다연 극동대학교 교수

같은 상황, 다른 결정

‘스포츠윤리’가 낯설게 들렸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스포츠계 성폭력 사건뿐만 아니라 승부조작, 도핑, 음주운전, 폭행, 불법도박 등 도덕적 해이와 관련된 스포츠계의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면서 스포츠윤리는 대중에게 흔한 말이 되어버렸다. 사실 스포츠윤리라는 용어의 유행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역설적으로 그만큼 스포츠계에 윤리가 결핍되어 있다는 것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스포츠계 불미스러운 사건·사고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함에 따라 스포츠계는 선수와 지도자의 윤리의식 제고를 위해 그동안 제도적·교육적 차원의 다양한 지원과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비윤리적 사건과 인권침해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다. 이처럼 반복되는 스포츠계 사건·사고를 접한 대중들은 ‘또 터졌네…’, ‘스포츠계는 왜 그러냐!’, ‘결국은 자기 인생 망치는 거 모르나!’ 등의 반응을 보이곤 한다.

이제는 스포츠계의 윤리적 문제가 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지 진지하게 따져봐야 한다. 이러한 문제가 반복되는 원인은 스포츠공동체 구성원 즉, 선수, 지도자, 체육단체 관계자 등 개인의 도덕성이나 윤리의식에 있다고 지적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들 개인의 도덕성과 윤리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스포츠 자체의 문제로 시선을 돌려볼 수 있다. 이 말이 얼핏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다음 가상의 상황을 살펴보자.

만약 당신이 D라면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 주운 10만 원을 할머니 병원비에 사용하라고 어린아이에게 줄 것인가? 아니면 아이의 간절한 부탁을 거절하고 분실물센터에 가져다줄 것인가? 2021년 임다연·박성주의 <스포츠선수의 윤리적 의사결정과 환경적 특성 연구>에 따르면 이 질문에 대해 일반인(대학생 200명) 집단과 스포츠선수(대학생선수 200명) 집단이 다소 다른 답변을 내놓았다. 일반인 집단의 61.3%는 가여운 아이에게 10만 원을 주겠다고 답하며 주운 돈이라도 남의 물건은 돌려줘야 한다는 원칙보다 주운 돈이 곤경에 처한 할머니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결과를 더 선호하는 양상을 보였다. 반면, 스포츠선수 집단의 37.3%만이 주운 돈을 아이에게 주겠다고 답하며, 결과보다는 원칙에 더 큰 중요성을 두고 판단을 내렸다. 같은 대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윤리적 의사결정에 있어 이런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또한 2020년 국민대학교 스포츠윤리연구소에서 대학생 여자 수영선수와 유도선수 각각 100명을 대상으로 성인지 감수성 실태를 조사한 결과 수영선수들의 성인지 감수성은 굉장히 높게 나타난 반면, 유도선수들의 성인지 감수성은 매우 낮게 나타났다. 같은 대학생 여자 운동선수이지만, 성인지 감수성이 종목에 따라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이렇게 판단 성향이 다르게 나타날까? 무엇이 이들의 판단 성향을 다르게 만드는 것일까?

윤리적 판단과 사회적 직관주의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수많은 선택과 결정을 내린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선택과 결정은 어떤 과정과 작용을 통해 내려지는 것일까? 우리는 어떤 판단의 상황에 봉착했을 때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과정을 거쳐 최종적인 결정에 이르기도 하지만, 우리의 판단은 그러한 사고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고 즉각적으로 직관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직관(intuition)이란 추론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즉각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것을 말하는데, 논리적인 사고의 과정이 생략되기 때문에 자동적이고 신속한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최근 인간의 윤리적 의사결정은 추론보다 직관에 의존한다는 도덕심리학 연구들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 대표적인 연구로 조나단 하이트(Jonathan Haidt)의 사회적 직관주의 이론을 들 수 있다. 조나단 하이트는 대부분의 윤리적 판단은 즉각적인 정서적 반응과 함께 직관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조나단 하이트의 저서 「The Righteous Mind」에는 여러 가지 행동실험이 나오는데, 필자는 그의 실험 대본을 각색해서 실제로 대학생 200명을 상대로 실시해 보았다.

200명의 대학생에게 위처럼 각색한 대본을 보여주고, ‘L양의 행동은 잘못된 것인가?’라고 질문하였다. 대학생의 90.4%가 잘못된 행동이라고 답했고, 이와 같은 답을 한 대학생들에게 L양의 행동이 왜 잘못되었는지 그 이유를 요구해 보았다. 다들 이런저런 이유를 제시했고, 필자가 그 이유가 타당하지 못함을 반박하자, 대학생들은 자신의 판단을 바꾸지 않았지만 말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현상을 조나단 하이트는 ‘도덕적 말막힘(moral dumbfounding)’이라고 정의했으며, 도덕적 말막힘 현상의 원인에 대해 주목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도덕적 의사결정을 내릴 때, 이성과 합리성에 기반을 두고 심사숙고하여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정서나 감정, 즉 직관에 의해 즉각적으로 판단을 내리고, 자신의 판단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성적 추론을 사용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조나단 하이트는 우리가 어떤 윤리적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 상황을 인식하고, 판단의 잣대를 정해 최종적인 결정에 이르게 하는 것은 이전까지 우리가 쌓아온 사회문화적 경험이나 관습을 통해 내재화된 규범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하였다. 즉, 인간의 윤리적 의사결정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개인의 정서적 직관이며, 이 정서적 직관은 개인이 경험하는 사회문화적 맥락에 기반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직관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최근 많은 도덕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직관은 개인이 속한 사회 및 조직의 문화나 기풍 속에서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스포츠에서의 경험은 선수들의 윤리적 직관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스포츠선수의 윤리적 판단 성향

오늘날 스포츠에서는 수많은 윤리적 문제들이 발생하며 스포츠선수들은 매 순간 윤리적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스포츠선수는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어린 시절부터 일반사회가 아닌 스포츠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성장한다. 모두가 일반사회에서 가정이나 학교로부터 도덕규칙을 배우지만, 스포츠 속의 현실은 일반사회와는 분명 구별되는 다른 영역이기에 스포츠선수는 가정이나 학교에서 습득한 도덕규칙이 모순되는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가령 ‘남을 속이지 말라.’는 일반사회에서 요구되는 기본적인 윤리원칙이지만, 스포츠에서의 속임수는 칭찬받고 장려되는 하나의 기술이 된다. 일반사회에서는 폭력에 해당하는 공격행위들도 스포츠상황에서는 적극적으로 수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까닭에 스포츠선수의 선택이나 판단이 때로는 일반사회의 보편적 도덕규범에 부합하지 않고, 다른 사회구성원들의 도덕적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2021년 임다연·박성주의 <스포츠선수의 윤리적 의사결정과 환경적 특성 연구>에 따르면 스포츠선수의 윤리적 판단 성향을 일반인과 비교·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스포츠선수는 스포츠상황이 아닌 일반상황에서 대체로 원칙을 강조하는 의무론적 윤리관을 드러냈으나, 스포츠상황에서는 반대로 원칙보다는 결과에 중점을 두고 판단을 내리는 결과론적 윤리관을 드러냈다. 달리 말해 스포츠선수는 윤리적 판단에 있어 이중적 의식구조를 보이고 있다. 스포츠는 규칙과 공정성이 강조되고, 또 그것을 강요하기에 스포츠선수의 의식에는 원칙의 중요성이 구조화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스포츠를 시작하는 어린 시절부터 경쟁에서 이기는 것, 즉 승리추구와 같은 스포츠의 본질적 가치 또한 내재화되어 있기 때문에 스포츠 선수들은 직관적으로 결과지향적이고 목표지향적인 판단을 내린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둘째, ‘우리가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일반인의 63.5%가 ‘공동체가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서’라고 답변한 반면, 스포츠선수의 72.0%는 ‘인간의 당연한 도리’라는 이유를 제시했다. 이러한 결과는 스포츠선수가 일반인보다 유교적 윤리관, 즉 윤리를 당위규범으로 강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스포츠선수의 윤리적 의사결정에 있어 합리주의보다 의리와 정을 중요시 하는 온정주의가 비교적 강하게 작용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셋째, ‘논쟁적 상황에서 다수가 결정하는 것이 나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한 비율이 일반인은 48.0%, 스포츠선수는 78.3%였다. 이는 스포츠선수의 집단주의 성향을 나타내며,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에 있어서도 집단주의 성향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집단주의 성향은 스포츠계 내부고발 비율이 낮게 나타나는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되며, 스포츠계의 고질적인 연고주의를 조성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넷째, 일반인은 훌륭한 스포츠선수를 뛰어난 실력과 더불어 좋은 인성을 갖춘 선수로 인식하기 때문에 선수의 경기력만큼이나 도덕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반면, 스포츠선수는 자신의 성공 여부에 있어 도덕성보다는 경기력을 더욱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달리 말해, 선수들은 본인의 경기력과 성적으로 평가받는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도덕성은 자신의 성공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여기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스포츠선수의 윤리적 판단 성향의 특징은 목표지향성, 유교적 윤리관, 온정주의, 집단주의로 정리할 수 있다.

윤리적 스포츠를 통한 윤리적 선수 만들기

스포츠는 복잡하고 다양한 관계 속에서 수많은 선택과 판단을 요구한다. 스포츠선수의 윤리적 의사결정은 그들이 어린 시절부터 스포츠 속에서 경험하는 관습적 규범과 문화에 의해 형성된 직관에 엄청난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이렇게 경험과 학습에 의해 내재화된 그들의 직관은 스포츠조직 속에서 도덕적 믿음으로 공유되기에 쉽게 바뀌지 않으며, 그러한 믿음에 부합하지 않는 정보에 대해서는 다소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스포츠계 윤리적 문제를 단지 선수 개인의 문제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선수들이 실제 몸담고 생활하는 스포츠조직 문화와 풍토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즉, 스포츠선수의 비윤리적 판단과 행동은 구조화되어 있는 스포츠 자체로부터 비롯되는 면이 있다. 특히 결과와 승리를 강조하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스포츠선수들은 경기결과와 성과에 대한 스트레스를 늘 안고 있다. 이러한 승리 지상주의 풍토는 스포츠선수들의 목표지향성을 강화하고 결과론적 윤리관을 형성하며, 이는 윤리적 의사결정의 편향성으로 이어져 때로는 자신들의 비윤리적 판단과 행동을 합리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스포츠선수 개개인의 윤리의식 증진을 위한 스포츠윤리 교육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스포츠 자체를 윤리적인 판단과 실천이 가능한 구조로 창출해냄으로써 그러한 문화와 풍토 속에서 윤리적인 선수로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 병행되어야 한다. 스포츠선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윤리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스포츠선수의 윤리성을 이끌어 내고자 하는 스포츠윤리 교육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스포츠계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사고 발생 이후, 개인에 대한 처벌과 제재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윤리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개인의 직관은 도덕적인 직관일 수도, 혹은 비도덕적인 직관일 수도 있다. 그것은 그 개인이 어떠한 환경 속에서, 어떠한 경험을 통해, 어떻게 형성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스포츠선수들의 바람직한 윤리적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스포츠선수의 직관을 윤리적으로 형성시킬 수 있는 올바른 문화와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스포츠가 변해야 선수도 변할 수 있다.

*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이 발행하는 <스포츠 현안과 진단> 기고문 입니다.

* 이번 호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과학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님을 밝힙니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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