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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상상, 과학과 예술의 절묘한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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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람, ‘URC-2’, 현대자동차 후미등, 금속 재료, 전자장치, 230×170×180cm, 2016 

종종 박물관과 미술관을 혼동하는 사람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이 둘은 다르다. 박물관이 상위개념이다. 영어로 생각하면 좀 더 이해하기 쉽다. 박물관은 ‘뮤지엄(Museum)’, 미술관은 ‘뮤지엄 오브 아트(Museum of Art)’라고 표기한다. 박물관이 뿌리인 셈이고 거기에서 여러 갈래로 뻗은 가지 중 하나가 미술관이다.
박물관은 종류가 많다. 우표박물관, 자동차박물관, 자연사박물관, 우주박물관, 축음기박물관, 화폐박물관 등이 그런 예다. 이처럼 차별화된 수집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박물관 중에서 ‘현대적인 미술작품’을 전문적으로 전시하는 박물관이 미술관이다. 그러니 미술관은 ‘미술품 박물관’의 줄임말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술관은? 자타 공인 국립현대미술관(MMCA)과 리움(Leeum)미술관이 양대 산맥이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간송미술관은 고미술품으로 유명하다. 미술관 기능과 역할은 크게 다섯 가지. 수집, 보존, 연구, 전시, 그리고 교육이다. 따라서 단순히 전시만 하는 미술관은 제대로 된 미술관이라 할 수 없다. 수집한 소장품을 보존하고 연구해 전시하고 교육까지 해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 그리고 리움미술관과 간송미술관은 모두 이 조건에 부합한다.

▶최우람, ‘루미나 비르고’, 금속 부품, 모터, 터치 센서, 전구, 자석, 26×8×3cm, 2002

‘키네틱 아트’의 진수를 보여주다
이 가운데 특히 국립현대미술관에 주목해보자.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은 총 네 곳의 전시 공간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서울 경복궁 옆 서울관, 서울 덕수궁에 있는 서양식 건축물 석조전을 사용하는 덕수궁관,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 근처에 자리 잡은 과천관, 그리고 충북 청주 옛 담배 공장(연초제조창)을 개조한 청주관이 그곳이다.
네 곳이 제각각 다른 역할을 맡고 있다. 덕수궁관은 우리나라 근대미술을 주로 소개하고 과천관은 최근 보수를 마치고 재가동된 백남준의 대표작 ‘다다익선’을 비롯한 소장품을 상설 전시한다. 수장고를 갖춘 청주관은 전시보다 보존과 연구 기능에 중점을 둔다. 마지막으로 접근성이 좋은 서울관은 현대적이고 대중적으로 관심을 끌기 적합한 최신 경향 현대미술 작품을 선보인다. 지금 열리고 있는 최우람 개인전이 좋은 예다. 이 전시는 2023년 2월 26일까지 계속된다.
평일 오후에 방문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한적하게 전시를 보겠다는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기증 이중섭 작품전이 열리는 이유도 한몫했겠지만 로비부터 지하 전시장까지 관람객으로 북적거렸다. 소문난 블록버스터(초대형) 전시장 같았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첫인상은 대부분 관람객이 휴대전화를 들고 촬영하는 광경이었다. 전시장에서 사진 찍는 일이 예사로운 요즘이다. 하지만 이번엔 좀 남달랐다. 짧은 순간 ‘찰칵’ 셔터를 눌러 촬영하는 것이 아니었다. 모두 동영상을 찍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이런 행동을 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작품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 움직임을 담기 위해선 동영상 촬영이 필수. 바로 이런 모습이 여느 미술작품과는 다른 최우람 작품의 특성을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그의 작품은 움직이지 않을 때와 움직일 때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
따라서 감상 포인트도 두 가지. 첫 번째, 움직이지 않을 때 감상하는 것. 순수한 조형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그 자체로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조각작품으로 손색없다. 그리고 작품이 움직이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시간성과 이야기가 담긴 서사(내러티브)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최우람, ‘작은 방주’, 금속 재료, 기계 장치, 전자 장치(CPU 보드, 모터), 폐종이박스, 230×210×1272cm, 2022

국립현대미술관에 나타난 ‘기계 생명체’
고정돼 있던 작품이 움직이면서 다채롭게 변형되는 이미지는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다. 그 속에 담긴 주제와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이 두 번째 관람 포인트다.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개인전 제목이기도 한 대형 작품 ‘작은 방주’는 이런 특성을 잘 보여준다. 재난과 위기에 대처하는 현대인이 처한 상황을 은유적으로 상징하는 내용이다. 예정된 작동시간이 가까워지자 관람객 수백 명이 작품 주위로 모여들었다. 드디어 작품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너 나 할 것 없이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폭 12m가 넘는 이 작품은 검은색 철제 프레임(틀)에 폐종이 상자를 붙여 좌우 35쌍의 노(櫓)를 만든 배 모양이다. 중앙에 ‘등대’가 있고 서로 등을 지고 있는 ‘두 선장’이 각기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화려한 사운드와 함께 등대 조명이 켜지면서 배가 서서히 움직인다. 마치 살아 있는 듯 일사불란하게 작동하는 노의 궤적은 절도 있는 군무(群舞)를 보는 듯하다. 20분 동안 쉬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최신작 ‘작은 방주’는 최우람 작품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1970년 태어난 작가는 중앙대학교 조소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8년 첫 개인전부터 줄곧 움직이는 조각, 즉 ‘키네틱아트(Kinetic Art)’에 천착하고 있다. 실제 유기체의 동작을 모티프로 제작된 작품은 ‘기계 생명체(Anima–Machine)’라고 불린다. 자연과 인공, 현실과 허구적 상상, 과학(기술)과 예술이 절묘하게 결합된 신개념 조각으로 평가받는다.

이준희 건국대 현대미술학과 겸임교수_ 미술대학을 졸업했지만 창작에서 전향해 몇 년간 큐레이터로 일했고, 미술 전문지 기자로 입사해 편집장까지 맡아 18년 8개월 동안 근무했다. ‘저널리스트’로 불리는 것보다 여전히 아티스트에 가까운 ‘미술인’으로 불리기 원한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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