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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를 제외한 전 세계 모든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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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을 필두로 케이팝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팝 음악’으로써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다 다양한 장르로 케이팝의 확장이 필요하다. 정책브리핑은 케이팝의 발전과 음악감상의 이해를 돕기 위해 대중음악의 다채로운 장르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이제는 ‘월드 뮤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지양되고 있는 상황인데 확실히 이 단어는 생명력을 다한 듯 보인다. 그간 월드 뮤직으로 손쉽게 분류되어 왔던, 말하자면 다양한 세계 각국의 음악들이 별개의 고유의 장르로 불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월드 뮤직이라는 단어 사용 자체의 석연치 않음 때문에 그렇기도 할 것이다. 월드 뮤직이라는 단어가 작동하는 방식이 서양의 자문화 중심주의를 내포하고 있다.

1960년대 무렵 미국의 민속 음악 학자 로버트 에드워드 브라운을 중심으로 월드 뮤직이라는 용어가 퍼져 나갔다. 이는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발칸반도, 켈트 등 세계 각지역과 민족의 다양한 음악을 포괄하는 목적으로 사용됐다.

또한 로버트 에드워드 브라운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연주자들을 직접 초대해 일련의 월드 뮤직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한편 1980년대에는 유럽의 음악학자 브루노 네틀이 비 유럽권 지역에서 만들어진 음악을 두고 월드 뮤직이라 칭했다. 그는 기존의 월드 뮤직의 범위에다가 종교음악이나 소수파 민속음악 등을 포함하는 형태로 월드 뮤직의 범위를 확장시켰다.

월드 뮤직은 1960년대 무렵 히피 운동과 더불어 힌두교, 명상, 선, 불교 등이 서구권에서 관심을 받게 되면서 활발하게 뻗어 나갔다. 특히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 등의 뮤지션들이 직접 인도에 방문하면서, 그리고 자신들의 음악에 인도 악기들을 활용하면서 대중들에게 더욱 익숙해졌다.

인도의 시타르 연주자 ‘라비 샹카’의 경우 저 유명한 1969년도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출연하면서 낯선 지역의 음악들이 미국 대중문화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09년 인도 뉴델리에서 시타르의 거장 라비 샹카가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EPA/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비틀즈나 롤링 스톤즈 이후 1980년대부터 서구의 팝과 록 아티스트들이 전세계의 다양한 음악, 혹은 악기들을 자신의 음악에 접목시키는 행위를 하는데, 이를 ‘월드 비트’라 칭했다.

월드 비트는 월드 뮤직과 분리됐고 보다 현대적인 소리와 텍스처를 지니고 있었다. 몇몇 혁신적인 하이브리드가 있었고 서구 아티스트들은 마치 전세계 각지의 음악들을 자신의 실험 도구인 냥 활용하면서 흥미로운 결과물들과 해석들을 왕성하게 쏟아냈다.

80년대 무렵 그려진 월드 비트에 관한 흥미로운 삽화가 하나 있었다. 그림은 울창한 숲 속에서 사냥꾼 옷을 입은 피터 가브리엘과 데이빗 번, 그리고 폴 사이먼이 수풀을 헤치며 돌아다니는 광경을 묘사했다. 서구의 뮤지션들이 마치 사냥꾼처럼 제3세계의 음악들을 탐구-혹은 착취-한다는 의미로 이 삽화는 해석 가능할 것이다.

제네시스 출신의 피터 가브리엘은 전세계 각지의 다양한 음악들을 자신의 음악에 흡수해왔다. 거기에 더해 영국에서 ‘워마드(WOMAD, World of Music, Arts and Dance)’라는 페스티벌을 직접 사비를 털어 주최하면서 세계 각지의 음악들을 영국 관객들에게 전파하기도 했다.

그의 솔로 앨범 들에서도 물론 복합적인 월드 비트를 확인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의 사운드트랙에서 유독 이런 색채가 두드러졌다.

데이빗 번의 경우 밴드 토킹 헤즈 해체 이전부터 이미 라틴 음악을 적극 활용해왔다. 그는 자신의 음악은 물론 ‘루아카 밥’이라는 월드 뮤직 전문 음반사를 설립하면서 월드 뮤직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남미와 카리브해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그 지역 뮤지션들과 교류했고 영미권에 발굴 및 소개를 꾸준히 진행해 나가기도 했다. 데이빗 번 또한 피터 가브리엘처럼 사운드트랙에서 이런 움직임이 빛을 발했다.

특히 류이치 사카모토, 그리고 중국의 공수와 함께 작업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음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곡상을 수상하면서 결실을 맺는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한 축이었던 폴 사이먼 또한 ‘월드 뮤직’이라는 용어를 널리 퍼뜨린 인물이다. 사이먼 앤 가펑클 시기에도 페루의 작곡가 다니엘 알로미아 로블레스의 ‘El Condor Pasa’를 번안해 불러 페루의 음악을 전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이어 1972년도 솔로 앨범 중 ‘Mother and Child Reunion’ 같은 곡에서도 그 당시 백인 뮤지션으로서는 드물게 자메이카의 레게를 본격적으로 도입해냈다. 꾸준히 월드 뮤직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폴 사이먼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일부 녹음한 1986년 작 를 통해 월드 비트에 관한 실험과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이뤄내면서 월드 뮤직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됐다.

‘월드 뮤직’이라는 단어가 통용되던 이전 시대에 비해 지금은 다양한 민족들이 보다 다양한 장소로 흩어져 정착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시간으로 지구 반대편에서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까지 감지 가능할 정도로 서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제는 ‘월드’라는 단어 자체가 새삼스러운 시대가 됐다.

게다가 우리가 월드 뮤직으로 분류해온 것들은 보사노바, 레게, 아프로비트, 라가, 플라멩고 등 보다 세분화된 명칭들로 불리고 있다. 극동 아시아 작은 나라의 아이돌이 빌보드 차트를 점령하는 작금의 시대에서 서구인들이 자신들의 음악을 제외한 것 정도로 분류하던 ‘월드 뮤직’이란 단어는 얼마나 무의미한가.

인도계 영국인들에 의해 결성된 그룹 ‘코너샵’은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한 밴드 ‘스미쓰’의 보컬 ‘모리씨’의 포스터를 시위하듯 길거리에서 불태웠던 적이 있다.

코너샵은 90년대 무렵 ‘월드 뮤직’을 두고 서구가 제3세계의 음악을 편의대로 정의내린 것이 아닌, 다른 국가들로부터 서구를 향해 날아가는 음악이라 언급한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이것이 역 발상처럼 보였지만 2020년대를 살아보니 그것이 꼭 역 발상만이 아닌 것이 됐다.

영미권의 대중매체는 점점 시시해져가는 중이며 전세계는 너무나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새롭고 흥미로운 것들은 국가를 불문하고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중이다. 불과 20년, 아니 10년 전만 같았어도 ‘강남스타일’을 비롯한 K-팝 역시 그저 ‘월드 뮤직’ 정도로 분류되었을지도 모른다. 

한상철

◆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다수의 일간지 및 월간지, 인터넷 포털에 음악 및 영화 관련 글들을 기고하고 있다. 파스텔 뮤직에서 해외 업무를 담당했으며, 해외 라이센스 음반 해설지들을 작성해왔다. TBS eFM의 음악 작가, 그리고 SBS 파워 FM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록밴드 ‘불싸조’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samsicke@hanmail.net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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